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리뷰

원작 없는 극본만의 에너지

by 당첨자

본문 내 스포일러 주의


모완일 감독의 서스펜스 연출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오픈 전부터 김윤석·고민시 주연과 모완일 감독의 연출작으로 세간의 기대를 모았다. 직전 작품이 <부부의 세계>인 모 감독이 스릴러를 연출한다? 쫀쫀한 텐션은 보증된 셈이었다. 믿음 가는 배우인 김윤석과, 살인마로 연기 도전을 한 고민시가 함께했다면, 과연 그 드라마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예고편으로 보여진 고민시의 연기가 충격적이기도 했다.

 1화 감상은 '예쁘다'가 다였다. 평화로운 펜션의 모습을 부각해야 하기에, 수상한 기류를 기저에 깔되 평화롭고 아름다운 숲속 모습을 충실히 담고 있다. 그리고 전영하(김윤석 분)와 유성아(고민시 분)의 불편한 텐션을 겹겹이 쌓아나가는 데에 집중한다. 그게 섹슈얼 텐션이라고 할 순 없지만, 딱 잡아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불쾌함'을 자아냈다. 애초에 부부의 세계 연출가니 전문 분야시고, 의도한 것임을 알아서, 일단 그 불쾌함을 고분고분히 참고 당했다.

 화려하고 노출이 많은 성아의 옷차림이나, 영하의 죽은 와이프와 닮은 것 같다며 이웃 펜션 사장이 굳이 사족을 다는 등 관계를 계속 불안하게 증폭시켰다. 그러나 그게 2화, 3화까지 길게 이어지니 머릿속에 의문이 피었다. 이건 2시간 안에 끝날 영화도 아니고, 8화까지 끌고 가야 하는데. 펜션과 성아의 패션을 아름답게 부각하는 미술만 주야장천 나오니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 시리즈, 그냥 예쁜 것에만 최선을 다한 속 빈 강정이면 어떡하지?



출발선이 다른 네 가지 서사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주연은 윤계상과 이정은이고, 숨겨진 주조연에는 박찬열까지 있다. 총 세 가지 서사가 출발선이 다른 채 내달리다가 서로 부딪히면서 엮인다. 이 지점이 의아하면서도 흥미롭다. 굳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보는 도중 스스로 퍼즐을 맞춰가야만 한다.


 1. 현재: 전영하와 유성아의 갈등 (1화부터 시작)

 2. 과거: 레이크뷰 모텔 살인사건 피해 실황 (1화부터 시작)

 3. 과거-현재: 레이크뷰 모텔 사건으로 인해 강력 사건 재능을 깨닫고 발휘하는 윤보민 형사의 서사 (3화부터 시작)

 4. 현재:레이크뷰 모텔 사건 피해자 가족의 복수 서사 (6화부터 시작)


 솔직히 각 서사 간의 유기성이 완전하다고 볼 순 없었다. 편집으로 영상이 달라붙어 있으니 보고 있긴 하다만, 이 이야기들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심지어 모텔 살인사건 피해 실황은 시점이 과거라는 것도 도중에 알아서 깨달아야 한다.

 그만큼 극본은 불친절하다. 하지만 각 서사 안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만은 굉장히 섬세하다. 서사의 유기성은 부족하나, 캐릭터를 잘 키워놨기 때문에 그 캐릭터들끼리 붙는 장력이 제법 세다는 인상이었다. 이 시리즈의 리뷰 중 어떤 서사는 굳이 넣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글도 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는 이해가 가는 바이다.

 그러나 이 극은 전영하에게 동력이 되어주는 캐릭터들이 적극 필요하기에, 네 서사를 억지로 뜯어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기둥 서사는 1번이되 2번, 3번, 4번이 참전하여 전영하를 번갈아가면서 찔러야 한다. 전영하는 굉장히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살인마 유성아와 맞붙으려면 자극적인 과거를 지닌 사람들을 도처에 깔아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숲속 동네의 자영업자 연대

 이 시리즈에는 학연, 지연, 혈연도 아닌 자영업자 연대가 강하게 드러난다. 한 동네에서 상부상조하며 지내는 세탁소 사장이나, 근처 펜션 사장, 그리고 심지어 과거 그 동네에서 모텔을 운영하다가 망한 사장님까지.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25%로 높은 국가에 속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연대가 얼렁뚱땅 설명하려는 노력도 없이 묶여있다. 캐릭터 빌딩에 공들이던 작가가 이 점은 당연히 넘어가는 게 나는 굉장히 웃겼다.

서로 의심하지도 않고 정이 너무 끈끈해. 저 사람의 불행 서사가 곧 나의 미래가 될 것 같음. 저 형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해칠 사람은 아니에요.

왜 자문 구하고 도와주는지 묻지 마 한국에선 당연함 알잖아



정의롭진 않지만 본분에 충실한 경찰

 윤보민(과거 하윤경 분, 현재 이정은 분) 형사는 여러 콘텐츠에 묘사된 형사와는 결이 좀 다르다. 정의에 불타오르거나, 법과 규칙에만 집착하지도 않는다. 촉이 비상하고 범죄자를 의심하고 찔러보는 재능이 있다. 게다가 본인 자체가 강력 범죄를 추적하는 업무에 재미를 느낀다. 재능이 있는데 재미까지 느끼는 일이 있다? 다른 직업군에서는 언제나 하늘이 내린 천직으로 묘사될 속성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이 달린 '고귀한' 사안이다 보니 형사 일을 재밌어서 하는 캐릭터는 많이 볼 순 없었다. 심지어 그게 여성 형사이고, 주니어 때 깨달아 보직을 변경한 뒤, 짬이 차 파출소장이 된 중년의 모습으로 극 속에 계속 살아있다. 이 캐릭터의 직업 찾기 여정이 전체 극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이런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는 것 자체가 잠재된 파급력이 크다.

 나는 이 시리즈가 윤 형사를 설명하고 존중하는 방식이 좋았다. 알게 모르게 터부시 하던 금기와 편견을 깬 시도였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매 화마다 각 배우들의 내레이션으로 강조되는 대사다. 이는 경험론 철학자 조지 버클리의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를 설명하는 유명한 말이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듣거나 본 사람이 없다면, 그 일은 일어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평생 모르고, 앞으로 모를 사람들의 삶은 내게 고려되거나 존재하지도 않듯이.

 이를 알고 유성아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치고 웃음이 나온다. 유성아는 펜션을 강제 점거하여 본인의 힘으로 펜션 곳곳에 화분을 두고, 식물을 심고, 벽에는 식물 그림을 그려 덩굴에 뒤덮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본인조차 식물이 뒤덮인 드레스를 입고 있다. 유성아는 이 펜션 자체를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있었던 일은 존재하지도 않은 일이 될 테니까.

 펜션을 푸릇한 식물로 그렇게 다 덮고 나면, 과연 '쿵' 소리가 안 날까?



원작 없는 극본만의 에너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원작이 없다. 그런데 네이버 검색창에는 자동 완성으로 '원작'이 따라붙는다. 요즘엔 소설, 웹툰 원작 작품이 너무 많다. 좀 그럴싸한 이야기만 보면 다 원작이 따로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이 극은 JTBC 신인작가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손호영 작가의 순수 창작 극본이다. 이를 안 뒤 배우 김윤석이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극 자체가 애초에 흥미롭기도 하지만, 분명 신인 작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다. 다른 장르에서 이야기를 빌려와 형식만 변형한 것과, 애초에 영상화를 위해 제작된 이야기는 분명 한계와 정성, 에너지가 다르다. 나는 이 시리즈에서 그 정성을 본 것 같다.

 이 시리즈를 다 보고 나니 손호영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단막극 <모두 그곳에 있다>까지 연달아 시청하였다. 이 작가님은 분명 엄청난 이야기를 앞으로 더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도 작가님의 차기작을 기대하기로 하였다. 신인 작가가 첫 장편 시리즈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까지 표출하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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