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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起) 1. 특이(特異)하다는 것, 좋거나 나쁘거나

나는 ADHD 약사다.

by 당김약사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여러 가지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남들이 다 했었다는 것들 뿐 아니라 보통은 흔히 하지 않을 만한 것들, 예를 들면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 성악 레슨, 러시아 문학사 수업 듣기, 명리학 공부 등이 있다. 한두 달 하고 그만둔 것들을 모두 꼽자면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흥미를 가지는 속도만큼 그만두는 것도 빨랐다. 내가 생각한 이런 나의 성향의 장단점은 다음과 같다.


다방면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데 도움이 되었다. 조용한 성격의 아이였음에도, 어느 마이너 한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라포(rapport) 형성이 빨랐다. 경험상 남들이 다 알거나 하는 보편적인 취미나 관심분야보다 특수할수록 더욱 그랬다. 이는 약국에서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여러 잡지식들로 주변 사람들에게 맥가이버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이는 자존감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절되지 않은 ADHD 증상들로 인해서 주변에 여러 민폐를 끼쳤었다. 한 번 호기심이 일면 쉬지 않고 질문을 해댔다. 물론 강의실에서 하는 일반적인 수업에서는 흥미를 못 느꼈기 때문에 질문도 없었고 조용히 대부분의 시간을 잠과 싸웠다.

이런 나 자신에 대한 묘사를 나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다음과 같은 클리셰를 떠올릴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딴짓하지만 성적은 훌륭한 소위 영재과 학생'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간신히 낙제를 면하는 저공비행과. '잠과 싸웠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루함을 인지하기도 전에 나의 뇌는 마치 컴퓨터가 예약된 절전모드에 들어가는 것 마냥 잠에 빠졌다.




약학대학 3학년 2학기에 실습과정이 시작되면서 나는 수업 참여에 열정적인 학생으로 변모했다. 모든 시간들이 새롭고 재밌었다. 그때 느낀 것이 현재 약대 교육과정을 개편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까지는 교내에서만 수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졸업 후 직업의 전공 연계성이 매우 높은 학과 특성상 배운 지식을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실제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텍스트 위주의 지식은 학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특히 나 같은 학생들.


약학대학 현장 실습은 제약공장, 병원, 지역 약국, 제약회사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학교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한데 보통 각 분야별 필수 실습시간 수료 후 심화 실습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때도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졸업 후 제약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학교와 연계된 회사가 없었다. 그래서 교외활동으로 알게 된 모 제약회사의 임원 출신이었던 분에게 메일을 썼다. 배움에 대한 열의를 표하는 진심이 통했던지 그렇게 제약회사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다.




내 아들이 너 같으면 걱정이 많을 것 같다~

모 병원 실습 때였다.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약사님의 해당 발언은 또렷이 생각난다. 지금 떠올리면 기분 나쁠 모욕적인 말 일지라도, 당시에는 주변 분위기로나 느꼈던 감정은 나에게 타격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 하지만 종종 ADHD 증상과 관련된 일화들을 꼽을 때 그날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나의 무의식은 상당히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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