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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챗쏭 Oct 21. 2019

'플롯'의 세계사, '줄거리' 세계사

[서평]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신상목 지음




플롯과 줄거리의 차이

주말 한가한 시간에 일부러 찾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얻어걸린 '방구석1열'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빠져들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 스토리에 대한 김탁환, 윤태호, 정서경 작가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중 "플롯과 줄거리"의 차이를 묻고 답하는 부분이 있었다.


김탁환 작가가 말하기를, 줄거리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라면 플롯은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이 사건이 왜 일어났고 어떤 원인을 이유로 발생하였는지, 인과관계가 중심인 이야기가 플롯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플롯'이라는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한 말이 아니었나 싶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는 '추구의 플롯'에 관한 내용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플롯이고 주인공이 뭔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김영하, 여행의 이유, 19쪽) '여행의 이유'와 '추구의 플롯'이 완전하게 부합하는 이유를 나는 김탁환 작가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여행기가 있다.

오전 9시에 집을 나서 공항으로 갔다. 10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오후 2시에 출발 예정이었다. 시간이 한참 남았다. 면세점을 구경했다. 밥을 먹고 비행기에 탔더니 잠이 왔다. 눈을 뜨니 비행기는 활주로에 도착했다. 아쉬웠다.


반면, 이런 여행기도 있다.

몇 년 만의 여행 이어선지 새벽부터 부산스러웠다. 비행기는 오후 2시 출발 예정이었고 12시까지 공항에 도착하면 충분했지만 나는 얼마나 서둘렀는지 10시에 벌써 공항이다. 우리의 여행은 면세점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드디어 비행기. 이 얼마나 기대했던 비행기 여행이었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즐기지 못했다. 새벽부터 설쳐댄 탓에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비행기는 착륙하는 활주로 위에 있었다. 이건 모두 무효야 라고 외치며 다시 비행기를 띄우고 싶을 만큼 아쉬웠다.


억지로 만든 이야기지만 나는 이 두 가지가 '줄거리와 플롯'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앞의 글은 시간 순서대로 일어난 일을 나열한 '줄거리'이고 두 번째 글은 인과관계가 섞여 이야기를 풀어낸 '플롯'이다.




역사는 '플롯'이 어울릴까, '줄거리'가 어울릴까.


역사가 사건이 나열된 암기과목에서 벗어나, 사건 속에서의 인과관계와 역사적 흐름, 원인, 이유를 살필 수 있게 되면 역사는 재밌는 분야가 된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어떤 의미가 있고 그 후로는 어떤 일이 또 이어져 일어났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역사공부는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이 책은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로 연결되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나의 이런 호기심에 딱 들어맞는 주제였다. 다만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사가 접목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사와 세계사라는 것이 아쉬웠다. 세계문화가 우리나라보다 먼저 유입되었고 탄탄한 근대화로 이어져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평가받는 일본이니 아쉽지만 잘 읽어보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플롯'의 형태였어야 했다.


작가가 책머리에서 밝힌 이 책을 쓴 이유, 그 부분은 이러했다.

"한국인이 지구 전체의 맥락 속에서 역사를 조망하려는 태도를 형성한다는 것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생존, 번영을 위한 인식적 기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지적 자극을 공유하고 싶다는 동기에서 쓰인 책이다. ...일본인들이 세계사를 접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 이 책의 목표는 당시 일본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진 동, 서양 간 만남의 주요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음으로써 독자들이 이문명 간 교류의 원리와 과정을 보다 생생한 임장감을 느끼며 감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가 펼쳐놓은 '줄거리'속에서, 나는 파노라마와 같은 동서양 간 만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럽이 대양 패권을 차지하려 애쓴 이유, 향신료와 금과 기독교의 성전을 위하여 유럽이 동진한 까닭에 대한 단편 단편의 줄거리가 이어졌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유럽 왕조의 합종연횡과 세력다툼의 이야기, 이베리아 반도의 레콩키스타, 교회 세력인 교황과 세속권력인 황제의 권력싸움, 해양진출을 위한 포르투갈의 노력.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좋은 깊이 있는 내용이었다.


한편 한편은 중세와 근대 유럽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유럽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자세하게 소개된 여러 장면의 깊이가 느껴질 만큼 세세한 설명이었다. 나는 이베리아 반도, 그러니까 스페인의 레콩키스타의 과정과 오스만 제국이었던 터키의 비잔티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유럽 역사에 깊은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올해 초 여행을 다녀온 스페인 톨레도의 이야기와 몇 해 전 터키 여행의 기억과 맞물려서 생생한 이야기로 들려왔다. 톨레도의 타호 강 전경을 그리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는 전쟁을 상상했고, 아야 소피야 성당의 황금 모자이크가 회칠로부터 벗겨진 이유도 다시 생각났다. 그럼에도 작가가 책머리에서 밝힌, 이 역사의 흐름이 일본의 근대화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쉽게 전개되지 않아 답답했다.


2부에서 소개되는 유럽과 일본의 만남 편은 드디어 기다리던 장면이 펼쳐지는 듯했다. 일본땅에 최초로 발을 디딘 포르투갈인들이 전해 준 '뎃포'는 일본 역사의 한가운데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였다. 우리나라, 조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뎃포'를 앞세운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은 신립의 탄금대 전투를 보다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간 알고 있던 신립 장군의 배수진 운운하는 비논리를 뛰어넘는 설명이었다.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한 줄 밑줄을 깊게 그은 부분이 있다면, '전래'와 '전파'에 대한 설명이다. '전래'는 외부의 문물이 도입되어 현지에 뿌리내리고 내재화되는 현상이고, '전파'는 외부의 문물이 도입되어 널리 퍼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의 문명이 먼저 전파된 것은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와 중국이지만, 능동적인 수용을 바탕으로 '전래'의 성격으로 받아들인 곳은 일본이라고 말한다.(이 책 170쪽)


일본은 유럽 문명이 전래되었고 이를 잘 활용하여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빨리, 그리고 강력한 힘을 가진 근대화를 이루었다. 다만 일본에 전래된 유럽 문명이 기술의 전래에 머물지 않고 문화의 전래에까지 이어졌다면 전체주의 제국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을 짚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유럽이 일본과 만나 어떠한 결과를 이루었는지, 유럽의 동진화가 일본과 만나게 된 장면과 그로 말미암은 이후로의 역사가 나는 더 궁금했다. 일본에서의 유럽 문명은 어떻게 일본화가 되어 발전하였는가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얼마 전 읽은 유시민의 책 '유럽도시기행'이 자꾸 오버랩됐다. 유시민의 책에서 읽은 로마의 이야기나 이스탄불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유시민의 책이 '플롯'의 가벼운 흐름을 가졌다면 이 책의 '줄거리'는 장면 장면 깊은 이해로 이어지게 했다.


생각해보면 역사의 흐름을 알게 된다는 것이 한두 권의 책으로 마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을 갖출 수 없지만 이 책은 나름의 탄탄한 깊이를 갖고 유럽 역사와 유럽 역사를 받아들인 일본 역사를 설명한다. '플롯'에 중점에 두고 유럽 역사와 일본 역사의 만남과 흐름을 이해하고 싶어서 나는 아쉽다고 표현했을 따름이다.


요즘 같은 때에 일본의 역사를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면, 나는 외려 일본이 근대화를 시작했던 그 무렵을 안다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먼저 선점하는 새로운 역사를 얼핏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답하고 싶다. 딱 그만큼의 의미를 두고 읽는다면 말이다.


서로마제국, 오스만 제국, 콘스탄티노플, 레콩키스타, 이베리아 반도, 지브롤터, 비잔티움... 이런 유럽 역사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나는 다음의 책과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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