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셋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는 캐럴을 듣고, 외우는 것이다. 일 년 중 절반은 팝송을 듣고, 다시 일 년 중 절반은 캐럴을 들으며 지낸다. 좋아하는 캐럴은 빙 크로스비의 <It’s bigging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인데, 그 특유의 모더니즘 사운드가 맘에 든다. 경쾌한 박자에, 자본주의가 막 태동되는 시절의 미국, 그 풍족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시절로 나를 언제나 데려다준다.
겨울에는 아주 짧은 시간, 예를 들면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 잠깐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여지없이 메모장을 열고 저장해둔 캐럴의 가사들을 나즈막히 읇조려 본다. 내 메모장에는 영어 가사들이 빼곡히 저장되어있다. 노래를 외워두었다가 라디오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캐럴들을 따라부르게 되면,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행복해진다. 미친 사람처럼, 거리의 캐럴을 따라부르는 일, 이건 내가 겨울에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내 음악어플의 캐럴 플레이리스트는 시대별로, 신나는 것, 느린 것, 찬송가 메들리, 가사가 있는 것, 없는 것, 아이들이 들을 만한 것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요즘은 유투브에서 남들이 선곡해준 캐럴 리스트를 듣는다. 아는 노래들 사이에서 보석 같은 노래를 찾고, 메모장에 가사를 추가할 수 있으니까 더할 나위 없다.
캐럴을 듣다보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부모님은 크리스마스와 생일에만 선물을 사주셨다. 나는 대부분 책을 선물로 골랐는데, 부모님은 책이란 자고로 빌려보아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책을 소유하는 일은 제한되어있었다. 하지만 우리 형편에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말하면, 엄마의 근심스러운 얼굴을 보게 될 게 뻔해서, 나는 늘 책 한 권, 엄마의 기분이 좋을 때는 두 권 정도로, 선물을 받아내기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 년 내내, 어떤 책을 선물로 받으면 좋을까,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결국은 컬러판 만화책 같은 걸 고르곤 했던 것 같은데, 그게 흰 여백에 검정 글씨가 가득한 책보다는, 진짜 선물다운 것 같아서 그랬다.
크리스마스의 전형적인 그림 있지않나. 나는 그런 이미지들도 정말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침대 위에 양말을 걸어두고, 식탁 위에 구운 칠면조를 올려놓고, 다들 자기 접시와 선물을 기대하는 얼굴을 보면, 그게 다 상술이래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분이 된다. 거리마다 빛이 아름답게 장식되고, 캐럴이 흘러 나오고, 커다란 트리, 아니 거대한 트리, 그 위를 수놓는 색색의 전구들, 모양 좋게 걸어둔 오너먼트들, 대미를 장식하는 거대한 별, 사람들의 환호, 그런 걸 보면서, 그 완벽한 장면을 마음 한 켠에 박제 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내 삶과 동떨어진 것인가하고 거리를 재는 일이, 그것이 결국은 내 속으로 스며들어, 그 빛이 나를 평온하게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러니 12월을, 크리스마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 아닐까. 내 삶과 너무 이질적이라서, 환상적이다 못해 세상에 없는 것 같은 계절을 누리는 이 한 달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이 크리스마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이브 날 새벽에 내리는 눈이 아닐까 한다. 날씨라는 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눈 덮인 세상을 보게 되면 얼마나 기쁜지. 그 우연성,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내는지. 결국은 눈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리게 해주는 진정한 산타가 아닐는지.
나는 가끔 캐럴을 외우며 생각한다. 이 소소하고도 행복한 노래 부르기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이 계절을 다행스럽게 여기는지에 대해. 평생 분수에 맞지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건 바라지 않은 대가로, 오히려 크리스마스를 사랑하게 되는 선물을 받게된건 아닌지. 회심한 스크루지의 남은 일생처럼, 새벽 미명 속에 밝아오는 계절의 뒷모습을 그리며 살기로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