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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Jan 14. 2024

동네. 커뮤니티의 맛

작은 것들의 즐거움

파리에 온지 685일 되는 날이다.

점심 때, 남은 반찬들 처리한다고 우걱우걱 혼자 많이 빨리 먹고 체했었다.

오후 내내 불편해 하다가, 소화제를 먹고 저녁 모임으로 출동했다. 오랜만에 연말 휴가에서 복귀한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와인을 마시니 체증이 싹 내려갔다. 알콜로 소독을 했다고나 할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커뮤니티가 잘 발달되어 있다. 동네 주민들끼리의 교류가 많다. 산책을 하다 만나는 이웃 주민들과 봉쥬라고 하며 인사하고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 좋은 전시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세워두고 한동안 대화를 하다가 다시 갈 길을 간다. 동네 브라세리(간단한 음식, 커피 등 파는 곳) 직원들과 동네 주민들이 비쥬를 하고 서서 스스럼없이 근황에 대해서 나눈다. 약국이나 까르푸, 주말에 서는 장터(마르쉐)등 그 어디를 가도 소소한 대화들은 끊이지 않는다. 동네 경찰들도 동네 주민들과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대화를 한다.


우리 동네에는 나의 유럽피안 친구들도 많이 산다. 우리는 생일 파티, 연말 파티, 할로윈 파티, 애들 학교 방학 기념. 놀 일을 만들어서 논다. 레스토랑은 늦게까지 열지 않고, 아이들도 있으니 집에서 주로 모여 노는데, 노는 일에 진심인 라틴 사람들까지 가세하면 새벽 2시까지는 직진이다. 우리가 하는 대화는 소소하다. 세계 평화와 입신양명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겠지만, 아이들과 자연,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어한다.


며칠 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긴급한 일이라면서, 자기네 가족은 지금 고향 바르셀로나에 와있는데 집에 도둑이 든 것 같다고 한다. 알람이 울렸다면서 말이다. 현관문이 열려있는 것 같은데 가서 봐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지체없이 수면 바지 차림으로 집을 나섰고, 막 도착한 경찰들에게 상황을 설명듣고 친구에게 전했다. 내가 가서 별로 한 일은 없다. 경찰과 친구가 전화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 것 정도. 그런데, 친구는 참 고마워했다. 그러니,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니지만 나도 내가 대견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삶이 모여서 동네를 이루고, 그 속에서 교류하며 느끼는 작은 즐거움들이 소소하지만 좋다. 외로울 겨를도 없고,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곳도 있다는 생각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영락없는 이방인이지만, 동네 커뮤니티 덕분에 여기서 사는 것이 꽤 괜찮은 일이라고 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진짜 프랑스를 경험하려면 시골로 가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동네 사람들. 참 친근한 단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가 삶의 중심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놀다가 친구네 집에 무작정 가서 저녁 얻어먹고 오기도 하고, 학원도 걸어서 다니고, 병원도 동네로 다녔다.

한 동네 오래 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동네가 콩알만큼 작아져 버렸다. 인구밀도로는 세계에서 내노라하고, 문 밖을 나서면 바로 사람들로 바글바글하지만, 내가 알던 동네는 내 마음 속에서 멀어져 갔었다.

어찌보면 크게 변한 것도 없지만, 내가 변했을지도 모른다. 각박해지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은 바빠졌고, 친구들의 아이들은 더 바쁘다. 새로 이사온 주민에게 인사하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누구지? 뭐 필요한게 있나? 하는 눈빛이다. 한 번은 동네 사는 아들 친구 엄마들을 집에 초대했었는데, 한 엄마가 나중에 나에 대해 불평을 했단다. 집도 작은데 용감하게 사람들을 불렀다고 말이다.


동네의 것들은 이상하게도 가치가 낮아졌다. 더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가게 되고, 더 좋다는 학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게 되니 학원 버스로 이동하는 일은 당연했었다. 남의 것이 더 커보였다. 아니, 화려해보이는 남의 것들은 다 더 좋아보였다.


하지만, 나를 지탱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존재 그 자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작은 것들의 힘이란 생각이 든다. 넓은 집, 공부 운동 리더십 다 일등인 자녀, 돈도 잘벌고 가정적이고 요리도 잘하는 남편, 높은 지위, 든든한 집안, 명품과 비싼 차.

있으면 더 편하겠지만, 아니어도 산다.


그런데, 작은 기쁨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 외로워지고, 내가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


현생으로 힘든 몸뚱아리지만 잘 다독여 이끌고 나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손도 흔들고, 커피 한 잔 사면서 안부도 묻고 하면, 편의점 알바에게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기. 그럼, 동네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간혹, 나의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 어떠랴.

타인에게 작은 기쁨을 선물하고 타인과 소소한 것들을 나누는 것, 꽤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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