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해도 갈 길이 더 멀게 느껴지는 날

by 해린

21살 때, 나는 world-class라는 단어를 몰랐다. 영어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단어였으니까.

같은 동아리에 있던 교포 아이가 나에게 그걸 설명하면서, 4년제 대학 다니는 애가 이렇게 쉬운 단어를 왜 모르냐고 물어봤다. 답을 할 수 없어서 우물거렸다.


지금은 생각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은 다 영어로 전달할 수 있다. 가나다라를 모르지만 친한 친구들도 있고, 서로를 지지하는 든든한 동료들도 있다. 나는 어학연수 조차 가본 적이 없었으니, 그동안의 노력은 징글징글한 수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들어본 적이 없는 관용 표현은 단박에 알지 못한다. 대부분 눈치껏 넘어간다. 그러다, 모르는 걸 딱 걸린 날에는 world-class를 모르던 21살의 나부터, 33살에 영어 발표 처음할 때 벌벌 떨면서 슬라이드 줄줄 읽던 나까지 소환된다. 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못하는' 나의 모든 순간들이 트라우마처럼 찾아온다.


며칠 전, 내가 위원회 멤버로 참여해 유럽 전역에서 석학들을 초대하는 큰 세미나를 열었고, 성황리에 끝났다. 저녁 자리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금발의 미국인이 계속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세미나가 잘 끝나서 기분도 좋고, 그녀와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묻는다. "너 근데, john hits the road"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 아주 간단한 표현인데, 이렇게 물어보니 또 자신이 없다. 길을 간다는 것 말고 다른 뜻이 있나? 모르겠다고 했다. "이건 관용 표현인데 어쩌고 저쩌고....".

오케이. 알려줘서 고마워. 새로운 표현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이번에는 "너, up my game 이란 표현 알아?" 라고 또 묻는다. 이건 더 잘 모르겠다. 단어는 쉽지만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나는 모르겠다고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또 뭐라뭐라 설명한다.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이번에는 기분이 좀 별로다. 쉬운 관용 표현을 모르는 나도 부끄럽지만, 내가 모르는 것 같으면 잽싸게 그 표현을 꺼내서 아냐고 콕 찍어 물어보고 설명하는 것을 마냥 순수하게 고맙다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엎친데 덥친다고, 세미나 준비로 한창 힘들 때 아이 돌보미들이 갑자기 스케줄 펑크냈다. 프랑스는 미국이나 한국처럼 입주 도우미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도우미들을 시간당 계약해서 쓰는데, 몇 달 전부터 예약한 도우미들이 하필이면 세미나 전날, 당일 모두 펑크를 내는 것이다.

주변에 사는 동네 친구들에게 둘째 돌아가며 맡기고, 학교에 갔다가 1시간을 운전해서 집에 돌아가서 아이를 집에 데려다 두고 다시 학교에 가는 등, 고생 꽤나 했다. 그런데, 그 고생은 그저 몸이 힘든 것이니, 실은 별 게 아니었다.


걔는 왜 관용표현을 굳이 나에게 아냐고 묻고 설명했을까, 그게 하루 종일 맴돌았다.


답은 없다. 그저, 바보처럼 보여도 허허 웃고 영어는 나에게 모국어가 아님을 알려주면서, 좋은 표현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고, 다시 징글징글한 배움의 세계로 한걸음 떼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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