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0월, 파리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루브르 박물관 지척, Foundation Cartier (까르티에 미술관)가 새로 문을 열었다.
기존 오스만 양식을 장 누벨이 재설계한 이 미술관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큰 규모임에도, 마치 한계가 없는 하나의 방처럼 뚫려있다. 2층에서 1층과 지하까지 보이며, 걷다보면 방을 나누는 문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수많은 유리벽이 건물 안과 밖을 나누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미술관 내부가 보인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유리벽 너머로 사람들이 오간다. 유리에 바짝 붙어 건물 안을 살펴보는 사람들, 그저 종종 걸음으로 행선지로 향하는 사람들. 그 각양각색의 모습이 예술품과 어우러진다. 바깥의 행인들은 미술관 내부의 관람객을 관찰하지만, 관람객은 행인들을 관찰한다. 누가 누구를 관찰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서로가 서로에게는 행인 1, 2, 3일 뿐이니까.
햇빛이 나면 햇빛이 나는대로, 구름이 끼면 흐린대로 그렇게 날씨와 미술품들이 한 눈에 보인다. 루브르에 가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작품 중 하나인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이 조각상을 배치할 때 루브르는 햇빛이 났을 때 승리의 여신이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는 곳에 위치와 높이에 두었다고 한다. 이는 자연광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인데, 까르티에 미술관은 햇빛이 있고 없음을 그냥 통으로 받아들였다. 파리는 1년 중 5개월이나 햇빛이 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훌륭한 전략이다.
무경계. 까르티에 미술관 건물은 가능하면 경계를 없애려고 곳곳에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마치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오히려 더 경계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경계, 이는 나에게 과업과 같은 단어다.
경계는 다름을 인지하는데서 시작한다.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있고 서로가 서로와 다르려고 노력한다. 브랜드는 타 브랜드와 다를 때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소위 말해 캐릭터 겹치면, 둘 중 하나는 아웃이다.
한평생 마케팅을 업으로 살아 가다보니, 경계를 짓고 다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인처럼 박혀있다.
마케팅은 '다르기 위해' 한다. 어제와 오늘이 달라야 하고, 내 브랜드가 남의 브랜드가 달라야 한다. 일관성 있게 달라야 하고, 가치있게 달라야 한다.
조금이라도 비슷한가? 아웃. 너무 다른가? 아웃.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혁신적이고, 너무 달라서 거부감이 들지는 않게. 이런 미묘하고 전략적인 다름에서 브랜드로서, 마케팅으로서 가치가 생긴다.
경계를 다 허물어버린 까르티에 미술관의 건물은 다르고, 인상적이었다.
관람객에게는 행인까지 감상하게 하는 경험의 확장을 제공하고, 행인에게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광경을 선물한다. 예술에 관심이 없으면 어떠랴, 길을 걸을 때 건물 내부가 훤히 보이는데서 오는 묘한 궁금증과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르구나 하는 인식은 철심처럼 박힐 것이다. 이곳은 다른 미술관과 다르고, 거리는 미술관 내부와 다르다. 그러니, 경계를 지워버리면서 다름의 가치를 획득하고,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경계를 긋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생각을 했다.
투명하게 전략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소통으로 읽히면서, 동시에 다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오늘 또 하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