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by 해린

내 연구 분야는 Human-AI interactions이다. 특히, 최근 몇 개월간은 AI agents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경영학에서 흔치 않은 큰 금액 펀딩을 받아 여러 회사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 요즘엔 대부분의 학자들이 AI 연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렇다 보니 완전 경마(horse race)와 같다.

나는 최고 속도로 하고 있는데, 남들도 "최대" & 최고 속도로 하고 있다.


게다가, 더 문제는 나는 기수가 아니라 말이라는 점이다. 밤낮으로 내 신체/두뇌 근육을 써서 달려야 한다. 게다가, AI agents 같이 새로운 분야는 정립된 것이 많지 않다.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하고, 길을 내면서 가야 하니 좀 더디기도 하다.


방금, 세계적인 학자이자, 나의 귀인이자, 공저자님으로부터 '속도가 중요하다' 라는 회신을 받았다. 이런 이메일 받으면 정신이 바짝 든다. 동기부여가 별 게 있나. 내가 존중하는 사람이 시계를 툭툭 건드리는 포즈만 취해도, 만사 귀찮고 해이해진 자아는 온데간데 없다.


내친김에, 명마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도 다시 한 번 새겨봤다.


1. 불평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건강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2. 여물과 근육을 챙겨라.

3. 중간에 내리지 말아라. 롤러코스터 한 번 타면 끝날 때까지 그냥 가는 거다. 안 내리면, 최소한 코스는 완주할 수 있다.


확실히 각성이 필요한 시기였는지, 정신을 차리게 하는 일들이 연달아 있었다.

며칠 전, 다른 공저자(미국 탑스쿨 교수)와 온라인 미팅을 했다. 그는 오전에 티칭을 하고, 오후에 연구/미팅을 한 뒤, 저녁 먹고 간단한 산책. 밤 7시부터 11시까지 다시 일을 하다가 잠든다고 한다. 이 분도 아이가 있다. 아마 부인이 양육을 주로 하는 것 같다. 공저자에게 나의 정신없는 일상은 공유하지 못했다. 나의 결과물에 편견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또다른 미국 여교수님 A는 우리 분야의 대가다. 이른바 빅 네임. 동료에게 들으니 A는 은퇴할 나이가 다 되었지만 여전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직접 쓰며, 데이터에서 세밀한 부분도 확인한다고 한다. 2천개의 데이터 중 두 개가 이상하다며 새벽에 연락을 받은 동료는 말했다. "A는 정.말. 어메이징한 사람이야."


비효율적이고 산만한 나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나도 잘 하고 싶다. 티칭은 하루에 몰아서 하고, 아침에 두 아이 등원/등교 시킨 뒤, 아점을 전날 저녁에 남은 것으로 대충 챙기고, 연구/미팅을 한다. 차떼고 포떼면 많아봐야 하루에 7시간. 이메일도 정성들여 써야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밤에 몰아 쓰고 예약전송을 건다.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는 예외없이 아이들에게 올인이다. 아이들 저녁 준비 (배달 음식이 가능하지 않는 지역에 산다), 집안 청소, 어마무시한 각종 집안일 (빨래, 이체, 공과금납부, 각종 문자/카톡/왓챕 체크, 전구갈기 등)을 한다. 3살 아이 오줌 세례에 거의 매일 빨아야 하는 침구, 큰아들 운동 라이딩. 절대 시간이 모자란다. 그렇다고 체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미국 경영대 교수는 연봉이 엄청 높으니까? 하고 모른척 할까? (유럽은 미국과 많이 다르다) 사십년 넘게 잘 안되지만 새벽형 인간이 되어볼까? 운동을 엄청 더 해서 기초 체력을 올릴까? 그나마 그리운 모국어 한국어를 쓸 수 있는 sns를 확 끊어버릴까? 나는 앞서가기 틀렸어.. 하고 주저 앉을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10년 후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고 일희일 하지 말라는 조언이 가장 현실적이다. 내일 일도 당장 모르고 걱정인데 10년 후라니. 그래도 길게보고 크게 생각하고 작은 일에 너무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의 힘(루틴)을 믿고 가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더 있을까?



IMG_9055.JPEG 대문 사진: 칸딘스키가 디자인했던 Music Room.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까르티에 미술관의 무경계와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