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1년, 일본 센다이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대학 친구가 그곳에서 비교 문학을 주제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직후, 그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불과 몇 주 전에 가서 여행을 하고, 우설구이 같은 센다이 특화된 음식을 맛보고, 술집에 앉아 친구와 각자의 미래를 궁금해했는데, 그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전세계는 숨을 죽이고 센다이를 지켜보았다. 해일이 도로와 마을을 집어삼키는 모습이 뉴스로 전파되었다. 참담하고 처참했다. 친구는 다행히 살아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 복구된 뒤, 친구는 잠시 서울에 들렀고, 우리는 다시 조우했다.
지진이 나던 순간, 친구는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건물채로 흔들려서 깜짝 놀라 복도로 나왔고, 다른 학생들이 어서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소리쳐서, 그 길로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말 그대로 쩍 소리가 나면서 벽이 갈라져서 바깥이 보였다고 한다. 무어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극도로 겁에 질려 건물 밖으로 나갔고, 대피한 사람들과 모여서 그때부터 피난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전기, 수도, 가스가 다 끊기고,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은 순차적으로 복구가 되었는데, 피해가 워낙 크다 보니 기본적인 생활을 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원시 시대로 돌아간 것 마냥 갖춰진 것이 없으니, 사람들은 모여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서로 도와가면서, 없으면 없는대로, 각자가 잘 하는 것을 도맡아 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타국에서 지진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피난 생활을 하다가 겨우 돌아온 데다가, 친구는 석사 과정이 거의 끝나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그녀가 아예 돌아오겠거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변했다. 삶과 죽음이 껴안고 있다는 구절을 읊으며, 센다이에 돌아가서 거기서 살 것이라고 했다. 나는, 왜?라고 물었다. 가지 마, 굳이 왜, 여기 있어, 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더 놀라웠다.
"나는 가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아침에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를 주고 받아야 돼."라고 했다.
단언코, 내가 알던 그녀는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과에서 가장 높은 성적과 장학금을 받아왔고, 석박사를 해서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그 어릴 적부터 강하게 하고 있었다. 공부는, (늘 그렇진 않지만) 이기적인 측면이 강해야 할 수 있기도 하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그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맞춰놓아야 한다. 충분한 시간도 확보하고, 영양가있는 식단도 챙기고, 잠을 방해받아서도 안되며, 남이 아닌 내가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나 사람들이 있다면 버리거나 배제하는 경우를 왕왕 보기도 했다. 심지어, 2등이 어디까지 쫓아왔는지 신경을 쓰는 1등도 있다. Scholar(학자)라는 단어의 뿌리에는 여유, 시간, 여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공부를 하려는 사람에게 시간 자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만을 위한 충분한 시간은,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할 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니, 마음씨가 좋기만 해서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기 쉽지 않다. 요지는, 그녀는 모든 의사 결정에서 그녀를 가장 우선에 두는 - 평범한 부류의 이타적인 결정을 잘 하지 않는 -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꼭 너가 가서 인사를 해야 돼? 이미 다들 하고 있다며. 그럼 너는 한국인이니 여기 있고, 원래 살던 사람들끼리 거기서 인사하고 살면 안 되는거야?"
평범하기 그지없고 이타적인 결정을 거의 안 하던 또 다른 대표 주자인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하지만,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으로 흩어져간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 그녀는 단호했다.
"다른 사람들이 남아서 하든 안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가서 하는 것이 중요해. 그들은 내가 필요해."
보이지 않지만 진정 소중한 것에 대해 눈을 뜨면 이런 느낌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이 겹쳐졌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닌 사랑으로 살아간다."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 인처럼 깊이 박혀있는 삶을 살았기에 잘 알고 있다. 걱정이 삶을 앞으로 밀고 가는 힘이 있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크게 전진하려면, 의미있고 영향력 있는 진일보를 하고자 한다면, 사랑 밖에는 답이 없다. 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의하는 그 불편한 순간이 오면, 그때 더 명징하게 보인다. 우리가 세상에 뿌린 사랑의 크기 만큼 우리의 존재 가치가 매겨진다. 실제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