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작은 수면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잘 봤다는 자부심이 용기가 일어나게 해주었다.
뭐든지 노력하면 안 될게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미술은 정말 너무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성의하게 출제하는 방법이 어딨냐고 따지고 싶다.
나만 못본게 아니라 다들 그렇고 그러니 흥분하지는 않겠다면 몇 문제 맞았을런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시험만 계속해서 쳤으면 좋겠다. 자길 다스리지 못하는 나같은 아이들을 위해서다.
타의에 의해서건 공부를 조금 하니깐 말이다.
며칠 남지 않은 시험을 끝낸 후엔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공부할런지 우선 걱정이 앞선다. 조금만 귀찮아도 그냥 쓰러져 자버릴 생활을 생각을 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지루하고 화나고 그리고 어디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지라도 11시까진 나의 인내심을 시험해 보고 싶다.
11시까지 하고선.. 그 다음은 예습. 2시까지가 좋지 않을까?
도서실에서 밤을 세우느라고 (?) 잠이 줄었을테니깐 6시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고 질서있고 짜임새있는 새해 아침에 다짐했던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생각만 해도 기쁜 생활이로고.
내일 시험은...글쎄 자신있다고 할 수 없지만, 시험 잘 봐.
+ 딸의 덧.
엄마의 일기를 조금씩 되짚어보며, 어떤 사진을 함께 두면 좋을까 고민했다.
첫 일기에는, 우연히 발견한 아빠의 첫 직장 단체 사진이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의 숙모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너그 엄마, 학생 때 참 성실했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몇 달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일기장을 펼쳤을 때, 숙모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문득, 언젠가 무심히 말하던 한마디도 함께 스쳤다.
"나도 애가 한둘이었으면 사회생활도 하고 그랬을텐데"
고등학생이던 엄마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자신이 누구와 결혼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꿈도 많고 열정도 가득했던 시절,
그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았고, 그 속에서 아빠를 만나, 딸 둘 아들 둘을 낳아 정성껏 길렀다.
부족하지만, 그래서 우리 넷은 엄마의 평생의 작품이다.
‘누구의 엄마’로 사는 삶도 분명 행복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날의 엄마가 자신의 이름 석자도
세상에 함께 기억되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며,
엄마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렇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