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by 해린

32년생, 나의 외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하시다. 팔순이 넘어서도 밥을 손수 해서 드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외증조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장수하셔서, 나는 엄마에게도 장수 유전자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었다.


근거없는 그 믿음이 무참히 깨졌고, 외할머니는 큰 딸인 나의 엄마를 먼저 떠나보냈다.

이모, 외삼촌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외할머니에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 외할머니의 장녀가 떠났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엄마가 요양병원에 있어서 외할머니를 보러 오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장례식을 마친 직후, 할머니는 이모에게 말했다고 한다. "야야.. 옥이가 간 것 같다..."


꿈으로 계시하는 그런 영적인 세계가 있는지, 숨이 완전히 멎기 전 사람의 영혼이 소중한 사람들을 다 찾아간다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 그런 심오한 영역은 나는 모른다.

다만, 할머니의 그 느낌이 우리를 더 슬프게 했다는 것만 안다.



아래는 엄마가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70년대 초반에 쓴 일기다.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에 대한 언급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주 서울에 잠시 방문한다.

가면, 나는 외할머니를 대면할 수 있을까.

충격받아 쓰러지시지 않게, 울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이번 겨울도 외할머니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상실이 한꺼번에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성실은 꼭 보답되어지리라고 믿는다.

나의 그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바라면서.. 그러나 결코 노력을 하지 않고 그것을 원하지는 않으련다.


72년 2월 17일 목 맑음

우리집 앞에 가게가 하나 생겼다. 썩 잘 꾸며져 있다. 종류도 굉장히 많이 있고 아주 웅장하게 꾸며져 있다. 그런데 우리 가게는 초라할 정도로 작으니... 경쟁이 생겼다.

장사 속에 장사가 된다지만 두곳다 안 되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숫제 다행이겠다. 그쪽이 잘 돼서 번창하는 것 보다야 낫지.

엄마도 인간이라 샘이 나는 건 어찌할 수 없는가보다. 아니 있는게 정상이 아닌가? 우리 가게가 잘 되도록 하느님께 빌고 싶다.


가뜩 군것질 때문에 큰일이다. 소화가 안 될 정도로 자꾸만 집어넣으니 말이다. 너무 식욕이 왕성하다. 먹는 것 밖에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살이 찔 징조인가? 큰일났다고 걱정하면서도 나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공부할게 너무 많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잘 가는게 세월이요 나의 청춘이다. 나는 유언지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작심 3일이다. 역시...


나도 대학다닐 때 어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만나면 내가 지금 고2라면 하는 식으로 말하게 될까? 나에게 주어진 고교 시절은 이제 1년을 남겨두고 나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이걸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패배자라고 하는 자신이 붙인 레테르를 어디다 어떻게 묻을 수 있을까?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1970년 2월 13일 금요일 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