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vs. 수단

추구할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

by 해린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대는 갔다. 소비자들은 브랜드와의 소통을 통해 관계를 쌓고, 관계가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대이다. 이른바, 프로세스 이코노미 (process economy) (오바라 가즈히로).


먼저, 브랜드가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소비자는 브랜드와의 심리적 거리을 좁혀나간다.

브랜드가 전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은 한데 모이게 되고, 연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정서적 연대를 바탕으로 브랜드가 생각하고 추진하는 일을 전달하면, 브랜드만의 고유한 스토리가 축적된다.

스토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추종하게 되면, 팬덤이 생긴다.

브랜드라는 상징적인 존재와 의미있는 관계를 쌓게 된다.




이런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 3대 아웃도어 브랜드 중 하나인 '파타고니아'.


한 달 전, '파타고니아'의 이본 슈나드(83) 회장의 기부가 전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었다. 기후변화와 환경보호를 위해 지분 전체, 즉 100%를 비영리기구와 재단에 넘겼기 때문이다. 금액 가치는 30억 달러 (약 4조 2천억).


파타고니아의 지구사랑 과정을 몰랐다면, 이 파격적인 행보가 그저 한 사람의 특출난 행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스토리는 수십 년 간 쌓여왔고 이 기부 이야기가 더해져 미담이 끝도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는 중이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계곡의 등반로를 개척할 정도로 산과 지구를 사랑했던 슈나드 회장. 그는 아이러니하게 매시즌 '재고'가 계속 쌓이는 의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봄&여름, 가을&겨울 시즌마다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사놓고 입지 않는 또는 만들었지만 팔리지 않는 제품들은 지구를 아프게 한다. 자신의 철학과 배치될 수 있는 이 사업을 어떻게 운영했을까?


슈나드 회장은 진심인지 마케팅일지 모를 희안한 광고를 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말아라". 파타고니아는 고객들에게 옷을 고쳐입고, 다시 사용할 방법을 찾고, 재활용하여 지구에 구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가치를 전달한다.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캠페인 직후 파타고니아의 매출은 40% 증가했다)


그는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한 내구성, 기능성, 아름다움, 단순함을 지닌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일례로, 그는 암벽 등반용 기존 쇠못이 약해 강철 피톤을 만든다. 하지만, 피톤이 바위에 균열을 일으켜 훼손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알루미늄 초크를 만들어 자연에 해를 덜 끼치는 방향으로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이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면소재를 100% 유기농 면으로 대체하고,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등 환경을 위한 활동들을 하나씩 실천한다. 유기농 면으로 대체하면 피부에만 좋은 것 아니었냐고? 아니다. 전세계 농약과 살충제 사용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파타고니아의 수 십 년에 걸친 활동들은 환경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책상 앞에서 만들어낸 마케팅 활동이라기 보단, 슈나드 회장의 철학과 행동을 실천한 것이다. 그래서 파타고니아는 굳건한 고객층이 있고, 수십년 간 사랑받는 브랜드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얻어갈 통찰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진정성과 가치의 전달"이다. 굳게 믿는 것(가치)을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 거기서부터 진정성이 나온다.




여기, 세 명의 가수가 있다. 하나는 한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아담’, 다른 가수는 1998년 결성하여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고릴라즈 (Gorillaz)', 그리고 2022년 탄생한 메타버스 밴드, '사공이호'.


1998년, 국내 최초 버추얼 가수인 아담이 탄생했다. 눈 한 번 깜박이는 영상을 연출하려면 개발자들이 며칠간 밤샘 작업을 해야 했으니, 무대 한 번 서려면 출연료보다 개발자들의 인건비와 개발비가 더 들어가서 앨범 <Genesis>를 약 20만장 팔고도, 결국은 사라졌다는 웃지 못할 역사를 갖고 있는 (일각에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 사망한 것이라는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가수 아담. 그의 이른 퇴장이 기술적 한계에만 기인할까?


"what if" 라는 질문은 현실에서 종종 쓸모없다고 치부되지만, 마케팅에서 what if라는 질문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길이 되기도 한다.


만약, 아담이 자꾸만 궁금해지는 캐릭터를 갖고 있었다면? 김신영의 "다비이모"처럼 한 번만 봐도 명확하고 자꾸 궁금해지는 그런 컨셉을 갖고 있었다면? 말이다.

만약 그가 명확한 컨셉과 캐릭터가 있었다면 수익을 '더' 내고, 어쩌면 조금 '더' 활동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프린트 광고는 활발하게 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편이지만, 무려 1998년에 결성하여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는 영국의 버추얼 밴드 ‘고릴라즈(Gorillaz)’가 있다. (그렇다, 아담이 런칭했던 시기와 동일한 시점이다.)

보컬이자 키보디스트 2D, 베이시스트 머독 니칼즈, 미국에서 온 힙합맨이자 실력파 드러머 러셀 홉스, 영국의 음악 주간지 NME에 구인 광고를 내자마자 밴드에 배달되어 온 오사카 출신의 미스터리 기타리스트 누들.

각각 멤버가 뮤지션으로의 탄탄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은 물론, 고릴라즈다운 독창적인 음악으로 여전히 공연과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각 시기별로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누들이 행방불명이 되어, 머독이 누들의 DNA를 수집해서 사이보그 누들을 만들기도 하고, 머독이 감옥에 끌려갔을 때는 새로운 등장 인물이 나타나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기도 한다.

실제 장소와 결합하는 일도 있다. 스토킹을 피하고자 머독이 파손한 고릴라즈 본거지 겸 녹음실은 그 실제 잔해를 유투브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출처: RollingStone (2021.08.11)



이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서 아담과는 달리 십 수 년간 여전히 활동할 수 있었을까? 98년 당시 영국과 한국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차이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진정성과 가치의 전달이 아니었을까. 조금 더 풀어서 표현하자면, 고릴라즈는 '음악'에 진심이고 음악을 하기 위해서 수단으로서 버추얼 캐릭터를 내세웠다. 즉, 음악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음악을 하면서 그 와중에 각 캐릭터가 계속 사건과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다이내믹과 지나온 시간들이 쌓이고 그들의 음악적 가치가 인정받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계를 최근으로 돌려 2022년 6월으로 가보자. 성시경, 신승훈 등 가수들의 히트곡을 만든 유명 작곡가 김형석이 만든 메타버스 밴드 (버추얼 아이돌) '사공이호 (SAGONG_EE_HO)'가 런칭했다. 18살 소녀 쑤니 (보컬), 정신적 지주인 오리알씨 (프로듀서 겸 DJ), 그리고 이태원팍 (댄서, 드러머) 이렇게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더독, 사회적 루저, 조커 등 밝지 만은 않은 세계관을 갖고 있다. 사람의 형상과는 거리가 먼 오리알씨, 반항적인 표정의 쑤니, 걸그룹 댄스에 심취해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이태원팍.


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키워드인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 등 디지털에 적합하게 활동하는 밴드, 웹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할 수 있는 밴드를 만들고 싶었다. 실제 가수와 컬래버레이션을 하며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


22년 10월 현재, 아직 우리는 모른다. 지금 막 런칭한 버추얼 인플루언서/밴드/아이돌이 몇 달 뒤, 1년 뒤, 몇 년 뒤에 어떻게 성장해있을지. 미래 예측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버추얼 뮤지션들이 어떤 가치(언더독, 사회적 루저)를 가지고 어느 정도의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꾸준히 활동을 하느냐이다. 그리고, 아담과 고릴라즈의 사례에서, 앞으로의 향방을 어스름히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목적과 수단.

추구할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 핵심 가치는 추구하고,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높은 완성도로 보여주는 것. 브랜드, 인플루언서, 버추얼 뮤지션. 그 어느 대상이 되었든 생각해 봐야 할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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