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구멍

by 단호박

정민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슬기구멍”이다.

처음 이 표현을 들었을 때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참 재미있는 말이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지식을 넣는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슬기의 구멍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구멍이 막혀 있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그 구멍이 열리면 작은 문장 하나에도 생각이 깊어진다.


정민 교수는 고전을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고전은 단순히 옛사람의 글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인간이 고민해 온 삶의 질문이 담겨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을 얻는 일이기보다 생각의 방향을 배우는 일에 가깝다.


고전독서법을 이야기하면서 정민 교수는 또 하나 흥미로운 말을 한다.

“책 아닌 것이 없다.”


처음 들으면 조금 과장된 말처럼 느껴지지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책은 종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책이고, 경험도 책이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모두 하나의 책이 된다.


어떤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배우기도 하고, 어떤 사건을 보며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아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읽으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독서는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읽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옛사람의 문장을 통해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세상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배움을 찾는 일이다. 슬기구멍이 열린 사람은 작은 문장 하나에도 멈춰 선다. 그리고 그 문장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한다. 어쩌면 독서의 목적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생각에 잠긴다.


지금 내가 읽은 것이 단지 글이었는지, 아니면 내 슬기구멍을 조금 넓혀 준 질문이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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