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부르셨나

사회복지사가 보는 카리타스

by 단호박

카리타스를 실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한 인식, 특히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복지를 하는 이유나 카리타스를 실천하는 이유에 대한 인식은 곧 우리 삶에 대한 인식과 같다. 이러한 인식의 정도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충실히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우리가 지금 카리타스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리타스를 통해 이웃을 섬기면서 동시에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맞는 일, 우리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부르심을 통해 주신다.


부르심의 본질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찾아와 부르신다.

부르심의 본질은 하느님의 일방적인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난다.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어부인 시몬과 안드레아를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부르심의 첫 번째 특징은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와 부르신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가 제자가 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그들을 찾아가 부르셨다. 이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강제성이 없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이는 우리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1. 이러한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는 부르심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면서 부르신다.

부르심의 두 번째 특성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보고' 부르신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부르실 때, 항상 그들을 '보고' 부르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예를 들어, 시몬과 안드레아를 부르실 때도 그들을 보고 부르셨다.

부자 청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그 청년을 보시고 한 가지가 부족함을 아셨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를 보시고 청년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보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알다'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보고' 부르신다는 것은 그가 우리의 모든 상황과 사정을 완전히 알고 계시며, 그에 맞게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부르신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그들이 그물을 던지며 일하고 있는 평범한 상황에서 부르셨다.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는 현장에서, 세리들은 세금을 거두는 세관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마더 데레사 수녀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그녀는 원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주변의 가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더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깨달았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특별히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을 때, 삶의 자리에서 갈등을 겪을 때, 이러한 순간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때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하느님의 부르심은 특별한 장소나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4.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부르심의 본질은 우리가 무언가를 깨닫거나 더 높은 차원의 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따라오라"고 하셨다. 우리의 부르심은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앞서 가시는 분께 의탁하고 신뢰해야 한다.


한 시각장애인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유하여 표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를 도와 손을 잡고 인도하시는 분은 100m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분은 단지 내 발 앞에 계단이 있다고만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계단을 오르기 위해 발을 높이 들기만 하면 된다. 믿을 만한 안내자에게 나를 맡기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리는 10년이나 20년 후의 일을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 그저 진실하신 예수님께 우리의 발걸음을 맡기고 한 걸음씩 따라가다 보면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하늘나라라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게 될 것이다."



카리타스 조직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사회복지를 하고 카리타스를 실천하는 것은 우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맞는 삶을 부르심으로 주셨다는 인식을 깊이 가질 때,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을 더욱 충실히 섬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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