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고민 상담소』 (김선일, 김승환; 그린비)
지난가을, 미래청년일자리 AI온라인콘텐츠 분야 2차 참여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교육에서 『스피노자의 고민 상담소』 책을 받았다. 저자 중 한 사람인 김승환 님의 강의에서였다. 문자로 하고 싶은 말을 보내면 그분이 답변을 하고 그중 세 명 정도 골라 책을 주셨던 것 같은데, 꼭 강의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했었던 것 같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여간 받은 김에 읽어본 책이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떠오르는 상황도 있고. 더 이상 나와 접점은 없지만 당신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텐데 싶은 사람도 있고.
1장 「스피노자가 말하는 ‘다양한 감정’」에서는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살펴보았다. 전공 수업을 싫어서가 아니라 못할 것 같아서 피하고자 하였던 청년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자신이 없어서, 잘 못할 것 같아서 괜히 겁먹고 두려워하며 피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겁먹을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전공 분야로 취업 준비를 해본 적이 없는 것도 이와 닿아 있다. 출판 업계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출판편집자로 취업을 하거나 1인 출판사를 창업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무조건 “잘하고 있다”를 주장하며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하는 것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혀 보는 게 나을 수 있는데 말이다. 아주 가끔은 그걸 실천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1년 전 미래내일일경험을, 반년 전 서울시 기술교육원을, 그리고 이번에 미래청년일자리 사업을 참여하게 되었다. 좀 더 다양한 부분에서 피하지 않고 부딪혀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지.
외국에서 길을 잃은 청년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의해 우리 정신이 자극받음을 알고, 외부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과 가진 것들은 언제나 나를 떠날 수 있는 외부 조건임을 인식하면 불안함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외부 상황으로 인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한 채 현 상황에서의 최선을 찾는 것을 추구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실천은 잘 되지 않는 영역이다.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어요. 감정을 느끼면 너무 힘드니까 차단해 버린 것 같아요. 근데 그게 핀셋으로 골라내듯이 부정적인 감정만 차단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기쁨이나 사랑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못 느끼게 되더라고요.” 원인은 달라도 내가 딱 이랬다. 불안과 공포,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에서 도망친 결과 그 모든 감정에 무뎌져 버렸다. 이제 와서는 조금씩 감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나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 감정을 뭐라 정의 내릴 수 있는지. 때로는 격렬한 감정이 뿜어져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체하지 못한다. 그 청년은 오기와 고집으로 주변의 조언을 무시하며 그로 인한 힘듦 또한 무시하다 감정을 차단하게 되었는데, 오기와 고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그 자리를 소통으로 채워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어쩌다가 부정적인 감정에서 도망치게 되었더라. 방어기제적인 망각이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를 해소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애인과 헤어지고자 하였으나 이를 해소하고 조금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청년의 이야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 그 원인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있으며, 이는 과거 누군가로부터 받은 자극이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투영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때로는 내가 상대에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그 사람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내면의 다른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그 상대에게 무언가를 투영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실수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상대의 언행에 문제가 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이미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있으니 상대의 언행이 문제 있어 보이는 것임을 간과했다. 그러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언니에게 질투를 느끼는 동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몇몇 청년 분들이 떠올랐다. 기쁨의 원인이 ‘타인의 불행’에 있는 자들. 그들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내부 원인으로 인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가 그것을 찾아야 주변 많은 이들이, 그리고 그들 자신이 더 편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여러 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워낙 그런 거에 동조해주지 않는 편이라 그들은 다들 더 이상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되었지만, 가끔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착잡하다.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구나, 하며. 이제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인간관계지만, 그래도 그들이 타인의 행복에 슬픔을 느끼고 타인의 불행에 기쁨을 느끼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내부 원인으로 행복을 찾길 바란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몸이 충만할 때 정신의 능력도 커지고, 상황에 대해서도 잘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우울하면 사건에 대한 인식력도 약해집니다.” 그것이 마음 건강이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고립과 은둔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이 상황을 더 부정적으로 보고 어둠에 잠식되는 것과도 닿아 있다. 내가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민간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기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 전에 나의 고립과 은둔에 한몫한 두 번째 큰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의 나 또한 나에 대한 부정적인 자극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더 큰 어둠에 잠식되었다. 그리고 지원사업 수혜 1년 차 끝자락의 자조모임과 4년 차의 청년플랜브릿지가 나의 마음 건강을 크게 개선시켜 그때와 비슷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
2장 「스피노자에게서 배우는 ‘감정 분별법’」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러 상황을 살펴보며 왜 그런 감정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타인의 시선 등 외부의 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경우 외부의 상황과 요인에 의해 쉽게 감정이 좌우된다는 내용을 읽으며, 외부 요인에 대한 감사 일기보다는 내부 요인에 대한 칭찬 일기를 쓰라는 말이 떠올랐다. 역시 외부의 상황이 어떠하듯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 멋있는 것 같다.
“힘들다고 말하거나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수치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것”에 대해 언젠가의 나와 주변 청년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 2년 차까지도 내가 지원사업 수혜자라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어설픈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 나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상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1년 차가 끝나갈 때 참여하게 된 프로그램에서 좋은 영향을 받아, 2년 차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받아야지. 힘들다고 말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드러낼 줄 알게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여전히 도움을 받는 걸 부끄러워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나아지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객관적 현실은 느낄 수 없고 우리가 받아들이는 건 개개인의 주관적 현실이다.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이 많은 걸 결정한다. 저자는 말한다. “내가 옳다고 믿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했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나의 힘듦을 이야기하면 저 사람이 불편해할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어쩌면 다들 합리화를 하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행동의 이유는 그저 명분일 뿐이고 말이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남들과 다른 20대를 보낸 청년의 이야기를 보며, ‘보통 사람들’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스펙을 쌓고 여행을 다니고 인턴이나 대외활동을 하고 그러지 않는 게 그 정도로 이레귤러의 일인가?’ 싶다가도, 지원사업 밖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 것 같더라.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두려움을 본인 스스로 확대해석”하고 있는 책 속의 청년의 상태는 나하고도 상당히 밀접하게 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두운 골목길을 두려워하던 청년은 말한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제가 직접 어두운 골목길을 가 보고 또 직접 부딪혀 보는 체험이 꼭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일경험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누군가는 스펙도 안 되고 취업 연계도 안 되는 걸 왜 하냐고 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우리의 목적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취업이 두려운 이들에게 그것이 그렇게까지 두려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좌절된 후, 그것이 꿈이라고는 하지만 그것과 관련하여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청년의 이야기를 만났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엇이든 하고자 했을 겁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신이 그것을 좋아하고 원하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알아야 능동적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출판 편집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관련된 그 무엇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언젠가 함께 무대에 선다는 꿈을 품고 있었으나 약속 상대가 사라진 후 수동적이고 관성적인 극단 생활을 하게 되었던 언젠가의 기억도 떠오른다. 아무래도 나 또한 내 행동을 규정하는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대개 그 원인은 상대의 언행이 아니라, 그것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화남, 기쁨, 슬픔, 후회 등의 원인을 탐색해 보면 외부 대상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부적합한 신념이 스스로를 가둔다는 사실은 살면서 많이 간과하게 되는 부분이다. 상대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내가 상대의 언행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너무 많은 이들이 마음에 안 들어하면 상대가 고칠 필요가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가진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3장 「스피노자가 알려 주고 싶은 ‘이성 사용법’」에서는 감정을 다스리고 이성적 인식을 통해 올바른 판단을 하는 법을 다룬다. ‘사랑은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의 영향으로 기쁨을 느끼는 상태’이며 그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증대한다고 한다. 언젠가 누구라도 집단 내에 나의 관심을 끄는 자가 있을 때 활동에 열의를 느끼고 능률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과 유관한 걸까. 저자는 말한다. “기쁨을 주는 요소가 다양할수록 신체의 능력이 증대되고, 이에 따라 정신의 능력도 활성화됩니다.” 기쁨을 주는 요소를 늘리면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때로는 기쁨의 요인을 의식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그 수단 중 하나가 감정일기인 것 같다. ‘살아있음에 감사’ 따위의 관념적인 이야기를 형식적으로 늘어놓는 게 아니라, 진짜 나에게 기쁨을 주는 무언가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의식적인 노력의 반복 속에서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을 늘려 가는 것.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자신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던 한 청년은 어느 순간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며 자신이 추구하던 것을 스스로에게 맞는 방향으로 변용하기 시작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 “나 지금 괜찮나? 내가 지금 정말 원하는 게 뭐지? 이 두 질문이 저를 바꿨어요. 남에게 보이는 내가 아닌, 내면의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 뒤로 원하는 것을 조금씩 해 볼 용기가 생겼어요.” 외부의 시선을 기준 삼아 살아가고 그들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이들이 여럿 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욕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와닿기 전까지는 실천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살면서 하고자 했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이 흐지부지되곤 한다. 그럴 때면 의지박약이라며 스스로를 탓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1부 정리 32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지를 갖고 하는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 그러니까 자발적이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외부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갑자기 생기지 않고 지나온 삶의 연쇄 과정에서 형성된다.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될 무언가를 일으켜야 한다. 정신력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다가 포기하기 마련이다. 무언가 바란다면 그것을 하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 이유를 함께 붙잡지 않는다면 하고자 했던 것은 금방 흩어지고 만다.
한 청년은 ‘좋아 보이는 일’을 하다가 자신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방향을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어떤 게 자신에게 적합한지 선별하고 자신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을 찾은 것이다. 나 또한 ‘좋아 보이는 일’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누군가의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선보이는 출판 편집자가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출판 편집자는 북 디자이너 업무도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Adobe 디자인 툴을 배웠다. 그러다 디자이너 인턴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는 의문이다. ‘좋아 보이는 일’을 쫓다가 ‘좋아 보이는 일’은커녕 생각지도 않던 무언가에 도달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향해 방향을 틀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저자는 서로의 공통성을 발견하고 공통 개념을 형성하여 기쁨의 감정으로 이동하는 것과 이성적 인식으로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여 부정적인 감정에서 해방되는 것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것은 한순간에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꾸준히 의식적으로 노력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서로의 안녕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