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경인월의 이야기

月刊丹煇 | 丙午年 庚寅月

by 단휘

아침마다 끄적이던 글은 병오년 들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왠지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원래의 취지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기도 했고,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출근과 퇴근이 있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건 너무 좋아 보였다. 상쾌한 아침. 어딘가에 갈 곳은 없지만 늦게까지 잠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일어나더라도 이불속에 미적거리고 있지만 말고 뭐라도 해보자. 그래서 나는 브런치스토리 작가 신청의 발행 계획에 이렇게 적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자 아침에 일어나서 사유의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들어 보았다. 그 사유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을 소소하게나마 공유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어딘가에 사는 20대 중반의 청년이 느끼는 것들. 하루를 마치며 그날을 정리하는 글도, 뚜렷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글도 아닌, 요즘 드는 생각이나 아침에 문득 생각해 본 것에 대한 짧은 이야기. 대체로 PC화면 모니터에 한 페이지로 가득 차는 정도의 분량이지 않을까 싶다. 길게 써내려 가려고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작은 생각들을 담아내고 싶다.


이제는 20대 중반도 아니게 되었지만 아무튼 한 청년의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의 끄적임으로 시작하여 늦잠 자면 쓸 기분이 아니라고 패스하기도 하고, 또 어느 시기에는 몇 시에 일어나든 일어나서 적어보기도 하고. 지원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고정적인 오전 외출이 생기면 집을 나서는 지하철에서 끄적이기도 하고, 공휴일 작성 여부도 몇 번 바뀌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더 이상 기상 루틴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아무 말이 되어 버렸다.


작가 소개에서 나는 주장한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사유하고 끄적이는 글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산다면 어떨까. 실상은 북향의 창문을 가진 방에서 살아가지만. 그마저도 을사년 말까지만 해도 없던 창문이다. 그전까지는 환기가 되지 않고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 방에 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봐야 알 수 있는. 날이 좀 풀리면 간접조명 같은 저 북향 창문의 빛과 바람이라도 느껴볼까 싶기도 하다. 일단 창문에 가득한 습한 공기의 흔적부터 청소하고 나서 말이다.




17개월 정도 지속된 아침 글쓰기를 그만두며 새삼, 역시 난 무언가를 하고 싶어 졌다고 시작해 버리고 안 하고 싶어 졌다고 그만둬 버리는 경우가 많다 싶었다. 특히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에 대한 욕구보다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욕구가 더 크다. 나의 많은 선택은 하고 싶은 걸 택하기보다는 하기 싫은 걸 피해서 이루어져 왔다. 이번에 서울시 매력일자리 사업 신청을 할 때도 그랬다. 전공이나 자격증 등 자격요건이 안 되는 걸 제외하고 나니 100여 개의 사업 중 30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그 30개 정도의 사업 중에서 거부감이 드는 걸 하나씩 지워 나갔다.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었다. 출근하게 해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켜준다면 어디라도 좋다. 대부분의 기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서는 걸 요구하겠지만. 총 세 개 사업장까지 지원할 수 있었는데 면접을 본 곳은 한 곳뿐이었다. 경쟁자 중에는 동종 업계 경력자도 있고 유사 업계 장기 경력자도 있고 그 외에도 다들 전공자거나 자격증 정도는 있더라. 같이 면접 본 사람들 중 나만 아무것도 없어서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 좋은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일자리 사업이 그나마 도전해 볼 만한 거였는데 취업 준비는 역시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공부를 하기로 했다. 학생 때 할 줄 알았는데 대체로 까먹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만 복습해 놓으며 그동안 나의 길을 찾아보자. 개발자들이 사랑하는, 하지만 실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언어 Rust는 학생 때에 비해 위상이 조금쯤은 올라간 것 같다. 실무 사용 사례가 간간이 보인다. 나의 주력 언어가 Rust였다는 것쯤은 기억 저편으로, Rust 문법 지식과 함께 구석으로 사라져 버렸다. (라고 해도, 생각보다 덜 까먹긴 했더라.) 학생 땐 TRPL로 공부했는데 실습은 예제 한 바퀴 돌고 있다. C언어 공부할 때도 TCPL로 공부했었는데, 나는 확실히 추상적인 그림으로 이케저케 설명하는 것보다 줄글로 된 설명이 좋다.


기술교육원에서 Bootstrap 기반으로 구현했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수료 후 Sveltestrap으로 마이그레이션 했었는데, 이번에 순수 Svelte로 다시 재구조화했다. Svelte에 대해서도 Rust만큼이나 “저 이런 거 할 줄 압니다”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복습해 놓을 겸 말이다. 내가 처음 공부했을 때가 Svelte 3였고 배우 포트폴리오를 그걸로 구현했었는데, 그 사이트 수정 작업할 때 Svelte 4로 올라갔다가 어느새 Svelte 5가 되어 있더라. 그러면서 문법도 많이 바뀌었는데 그럭저럭 따라잡았다. 재구조화 작업을 하며 Cursor 무료 버전을 써 봤는데 꽤 괜찮더라. 반쯤 진행되었을 때 무료 크레딧을 다 써서 그 이후로는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학교 웹메일이 살아 있으니 대학생 1년 무료 구독을 해볼까 싶다가도 일단 보류했다. 업으로 할 거면 충분히 구독할 만할 것 같긴 하다. 이런 단순한 재구조화 작업 말고 나중에 제대로 프로젝트 진행하고 싶어지면 그때부터 1년 학생 인증 해봐야겠다. Pencil도 써 보고 싶은데 언젠가의 미래로 미루고 있다. 작년에는 Framer에 대해서 이랬던 것 같은데. 이번엔 진짜 해봐야지.


사실 이번에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에서 하는 QA 과정 참여하고 싶었는데 면접 한 시간 만에 폐강 소식을 들었다. 면접 때까지만 해도 가능성이 있고 다음 날쯤 알려주신다고 해놓고 한 시간 만에 폐강이라니, 내가 거기까지 왔다 갔다 했어야 하나 싶다. 다른 과정은 조기 마감되었는데 QA 과정만 유독 오래 남아 있는 느낌이긴 했다. 그러고 나서 그날 오후에 방문한 서울올인데이 행사의 현직자 멘토링 자리에서 비전공자 QA 지망생 멘티를 만나서, 분명 수요가 없지는 않은데 왜 폐강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개발 직군에 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건 사실이지만.


나는 서울시 행사 현직자 멘토링에서 DevOps 멘토 두 분과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 멘토 한 분의 멘토링에 참여했다. 앞뒤 다 잘라놓고 말하자면 일은 일로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일에서 흥미와 적성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일은 그냥 일이니까 하는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내 시간으로 잘 쓰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러니까 일을 일로서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지. 하기 싫은 공부도 좀 하고 말이다. 행사장에 있는 서울청년센터 부스에서 정책상담도 받았는데, 거기서 소개받은 것들 중 두 개는 신청했다. 그곳들이 어떤지는 참여해 보고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사회적협동조합 내비두 인형극 동아리 온라인 설명회를 듣고 참여 신청을 했다.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보고 고민하다가 설명회에서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청하고 싶어졌다. 내비두 말 되찾기 프로그램은 서울시 시정 서포터즈 참여하느라 10회 중 4회를 빠진 게 아쉽지만 인형극 동아리는 좀 더 제대로 참여할 수 있겠지. 사실 온라인 설명회 시점이 서울시 매력일자리 결과 발표가 나기 전이라 참여 가능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일단 신청했다. 매력일자리 결과 발표가 아무리 늦어도 인형극 동아리 활동 시작 전일 거라 일단 신청해 놓고 나중에 취소해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 시작을 도전하기도 전에 불확실성에 떠밀려 포기하는 건 그만둬야지. 잘 안 되는 일이긴 하다. 그래서 일단은 의식적으로 저질러 보려고 하고 있다.


중곡종합복지관의 나다움 사업 면담도 하고 왔다. “나누고/다가가고/움직이다”라는 의미가 담긴 나다움 사업은 고립 청년의 정서적 고립감 회복을 위한 예술 기반 사회적 활동 프로그램이다. 작년에 청년기지개센터 광진 권역 활동을 하면서 소개받았던 프로그램인데 작년에는 신청을 못했고 올해 신청해 보았다. 초기면담을 하러 가서 들어보니 신청자가 많아서 다 참여할 수는 없고 모든 청년의 면담이 끝난 후 선정 회의를 통해 결정하신다는 모양이다. 결과는 다음 달쯤 알 수 있다나. 작년에는 면접도 안 보고 신청한 사람 최대한 다 참여할 수 있게 해 줬다는데 이번엔 확실히 신청자가 많은 모양이다. 올해는 광진 권역을 떠나게 되어 이 사업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중곡종합복지관은 더 이상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꽤 괜찮은 곳이었는데.


내비두에서 작은 바자회라는 걸 한다고 하길래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겠다고 했다. 창문이 있는 대신 이전 방의 75%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의 방으로 생활공간을 옮기면서 나에게 필요 없지만 상태가 괜찮은 녀석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대로 버려지는 것보다는 바자회에서 싸게 팔거나 나눔 하는 게 낫겠지.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함께 사업 참여하는 청년 분이 공유공간님빈에 있는 판다 인형 사진을 보내줘서 괜히 가고 싶어졌다. 나는 참 단순한 녀석이란 말이지. 거기서 충동구매 해 온 시계는 꽤나 마음에 든다. 다른 것보다 유독,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였다.


내비두 모임에서 온라인 게임을 한다고 하길래 처음으로 사람들이랑 함께 게임을 해 보았다. 구스구스덕이라는 이름의 마피아게임류의 스팀 게임도 하고, 갈틱폰이라는 그림 그려서 하는 웹게임도 했다. 내 통신 환경이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사람들이랑 함께 게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 기본적으로는 혼자 하는 콘솔 게임류를 선호하는데 말이다. 물론 선호하는 게 달라진 건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역시 대면이 좋고, 게임은 역시 혼자 하는 게 좋다.


오랜만에 두더집도 방문해 보았다. 동대문구로 이전한다는 얘긴 들었는데 생각보다 근처 동네더라. 미적거리며 출발해도 30분 컷. 가볍게 가볼 만한 거리다. 불광에 있을 땐 가는 길이 진입장벽이라 말랑말랑모임터에서 두더집으로 바뀐 후로는 잘 안 갔다. 두두학당 발성 수업 이후에 가본 적이 있었던가. 크리스마스 행사도 가긴 했구나. 하여간 한동안 청년이음센터와 병행하다가 그다음 해 청년기지개센터 공간이 혜화에 생긴 후로는 접근성 이슈로 불광보다는 혜화로 갔었다.


두더집에는 나를 기억하는 청년들도 여럿 있었다. 이사장님은 나를 모르시더라. 청년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그럴 만하지. 미미 님 있을 때 다녔던 녀석이니 이미 잊은 지 오래일 것이다. 딱히 미미 님을 따라다니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사단법인 씨즈보다는 사회적협동조합 내비두 쪽에 있는 편이다. 내비두 이야기하니까 거기 미미 님 있는 곳 아니냐면서 바로 아시더라. 두더집 집밥모임은 수요일로 계획 중이라는데 종종 가봐야겠다. 두더지땅굴도 안 들어가고 산 지 한참이지만... 생각해 보면 전에는 두더지땅굴에 글도 남기고 두두레터에 기고도 하고 했었는데. 역시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 요즘은 기지개센터로부터 마음이 멀어져서 내비두 다음으로 마음 가는 곳이 두더집이다. 퀘렌시아나 딜라이트 같은 곳들은 애초에 그냥 살짝 한 발 걸치고 있을 뿐이었고.




몇 년 전, 내가 닌텐도 스위치를 구매한 지 1-2주가 지났을 무렵 코로나가 어쩌고 하면서 닌텐도 스위치 품절 대란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작년에 일자리사업으로 번 돈을 소비하여 맥미니 M4 Pro를 구매했는데 OpenClaw 때문에 그 녀석이 엄청 뜨더라. 나는 맥북과 고민하다가 휴대성을 조금 포기하고 성능을 높이느라 했던 선택이었지만. 그런 김에 OpenClaw도 조금 건드려 보았다. 맥미니에 바로 설치하지는 않고 Docker를 사용했다. Docker라는 가상공간에 넣어두면 내 작업공간을 막 헤집고 다니지 않을 테니 안전하겠지. 시스템 구축 같은 거 오랜만에 해보니 재밌더라. 난 역시 인프라 구축하는 걸 좋아한다. 아쉽게도 DevOps는 신입을 뽑지 않지만 뽑는다면 지원했을 것 같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았으니 내 맥미니 리소스를 잡아먹게 두지 않고 내려놓았다. 작업 과정과 코드는 노션에 정리하면서 내가 문서화도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인지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부터 국민체력100 체력인증을 한 번쯤 받아보고 싶었는데 매번 예약에 실패하다가, 이번에 손목닥터9988과 연계해서 인증센터 운영하는 곳의 예약에 드디어 성공했다. 근처에 있는 센터는 다 마감이라 마포까지 가야 했지만. 생각보다 등급이 높게 나와서 놀랐다. 유연성(20.0cm), 근력(50.3%), 민첩성(0.322초), 순발력(0.500초)은 1등급이 나왔고, 근지구력(30회)은 2등급, 심폐지구력(33.0VO₂max)은 3등급이 나왔다. 전체 등급은 가장 낮은 등급을 기준으로 책정되어 3등급이다. 6개월 후에 재측정하여 등급이 오르면 손목닥터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한다나. 포인트를 목적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6개월 후에 다시 와봐도 좋을 것 같다. 근력은 체중 대비 퍼센트고 심폐지구력도 계산식에 체중이 들어가서 체중이 가벼울수록 유리하다고 하더라. 심폐지구력을 늘리는 게 빠를까 체중을 줄이는 게 빠를까. 아무래도 후자가 더 빠를 것 같지만 전자가 더 건강할 테니 전자를 목표로 해보자.




을사년 기축월 말부터 시작된 서울시 시정 서포터즈가 병오년 경인월 초에 마무리되었다. 4주짜리 짧은 일경험이었으니까. 기관에서 새로 제작하는 서비스의 UI/UX 피드백 업무를 맡았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보고서를 작성하여 주임님께 드리면 주임님이 그걸 기반으로 업체와 조율하신다는 모양이다. 제출한 내용 중 어느 정도나 실제 서비스에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립과 은둔에 대한 배경을 밝히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건 미묘한 일이다. 취업 경험도 아르바이트 경험도 이렇다 할 게 없는 20대 후반 청년에 대해 소위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스쳐 지나가듯 “오랫동안 고립 생활을 해서”라는 말을 하면 농담처럼 여기며 웃는다. 비웃는 건지 정말 농담으로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가도 결국 또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지어 말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우리’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또 편견 어린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사적인 시간도 ‘그들’보다는 ‘우리’와 보내고 싶어진다. 그래도 너무 단절된 채 구석으로 기어 들어가지는 말아야지.


나는 가끔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을 더듬거나 횡설수설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내비두 말 되찾기 프로그램 첫날에 말과 관련하여 개선하고 싶은 점과 함께 자기소개를 할 때도 언급했던 것이다. 그때도 그것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문장이 되지 못한 무언가다.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문장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단어부터가 구성되지 않는다. 나의 사고가 어휘보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그것도 비선형적으로 흩어지면서 말이다. 적절한 어휘를 찾으려고 하면 이미 저 너머로 흘러가 퍼져 있다. 그중 어느 것을 잡아야 내 답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A라는 질문에 B라는 응답을 하면 되는 상황에서 B-1, B-2, B-3(정확히는 그것들이 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 무언가)의 사고를 인지하기도 전에 한 Z-297까지 가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B-n이 뭐였더라? 애초에 질문이 뭐였지? Â였나? Ɐ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Æ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Ƃ-Ɛ이 뭐였냐면, 어라? 이게 뭐지? —그런 흐름 속에서 과부하 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을 한 상대는 매우 답답하겠지.


그런 일이 있기도 했고, 최근에 소셜 미디어에서 이 주제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들 비난의 댓글을 달더라. 가정교육이 어쩌고 자폐 성향이 어쩌고 정신에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한편으로는, 드물지만 나 같은 이들이 곳곳에 있긴 하구나. 이런 증상은 뭐라고 부를까. 이것도 약물 치료 같은 걸로 완화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상대의 답답함을 대가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걸까. 그렇게 하면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 이런 이야기를 적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무슨 감정이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록을 한다. 하지만 기록은 대체로 정리되지 못하고, 정보가 되지 못한 자료로서 묻힐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내 삶의 이야기를 어디에라도 기록한다. 그러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기록은 너무 이곳저곳에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지만.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내가 깨닫게 되는 나의 취향과 선호, 역량 등을 잊어버리지 않게 잘 기록하고 있다. 사실 잘하지는 못 하고 있다. 이미 많은 것들이 누락된 것 같다. 하지만 남은 것들이라도 잘 챙기다 보면 누락된 것들도 언젠가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 중 다수는 과거의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환상 속의 그대⟩가 이야기하듯이. 결국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통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