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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Oct 17. 2024

#45 편애

2024년 10월 17일 금요일 갑진년 갑술월 갑인일 음력 9월 15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테스트를 해보았을 때 '플러팅 장인'이나 '인생이 플러팅' 같은 텍스트가 나왔을 때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건, 내 삶의 일부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겠지.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흔히 플러팅을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라고 하면서 새삼, 나의 '친구'의 기준에 대한 엄청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대외적으로 가볍게 언급하는 '친구'는 친밀도만으로 형성되지만, 내가 정말 '친구'라고 부르는 이들은 친밀도에 호감도까지 어느 정도 받쳐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난, 내가 좋아하는 친구만을 '친구'라고 칭하는 경향이 있던 것이다...!) 워낙 어떤 의미로든 좋아한다는 감정은 잘 숨기지 않는 편이다 보니 나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드러내곤 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현재는 많이 자제하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 중 일부에게 지나친 호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아마 14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보스라고 불리는 녀석이 있었는데, 난 늘 그 친구를 편애하곤 했다. 그 이후로도 내 삶이 그럭저럭 괜찮았던 시기에는 한두 명씩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편애의 대상은 내 삶에서 꽤나 유의미한 역할을 하곤 하는데, 팀장에 대한 편애가 있는 팀플과 그렇지 않은 팀플은 나의 참여도와 열의 자체에 차이가 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돌아보면 그렇더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는 편이 능률 차원에서 좋을 것이다.


한때는 그러한 편애가 '일반인 덕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표하고 정말 좋아하지만 그것은 연애 감정이라기보다는 덕질의 감정과 유사하다나. 다른 이들이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대상으로 품고 있는 감정을 나는 주변의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확실히 외형적인 부분도 좋아하고 인성적인 부분도 좋아하지만 연애 감정은 들지 않는 사람들이었어. 어쩌면 내가 아이돌 덕질을 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주변에 나만의 아이돌이 있어서...?


나의 이런 측면에서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하던 녀석이 유정이었다. 친밀도는 그럭저럭 괜찮았고 호감도는 중립이었던 녀석인데, 나를 공부시키겠다고 현이의 졸업앨범을 가져왔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다시 가져간다나. 현이는 문학도로서, 내가 책과 글의 곁에 살아가는 데 한몫 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분야는 관심을 갖게 되니까. 물론 저 졸업앨범에 대한 건 현이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라 그가 이 글을 접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그의 소셜 미디어에 팔로우 신청을 걸었는데 거부당해서 요즘 근황도 모르겠단 말이지. 하여간 나의 타인을 향한 호감도를 이용하여 나의 행동을 유도한다라... 재밌는 녀석이다. 그러고 보면 초중고 동창 중에 연락이 닿는 녀석은 유정이 밖에 없는 것 같다.


소위 '일반인 덕질'이라고 불리던 그것이 연애 감정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계기가 이반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고, 꽤나 호감이 있었다. 당시에는 어깨 정도까지 오는 머리 길이에 약간 덩치가 있는 160대 후반의 대학생으로,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가 친구인 린에게 특유의 말발로 이것저것 떠들고 있을 때면, 무슨 말인지는 대체로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모습이 좋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좋아하는 길이보다는 살짝 더 길어졌지만 허리 정도까지 오는 머리를 하고 여전히 늘 그랬던 것처럼 그 녀석만의 말을 늘어놓을 때, 난 여전히 좋아했다. 다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은 연애가 아닌 친구 관계에서의 무언가로 남아 있었던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결코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줄 수 없는 나의 친구에 대해서도 결국엔 비슷한 것 같아서, 난 이대로가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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