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다니 Aug 09. 2018

몽골 초원에서의 하루

불편하기에 더욱 감사한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몽골에 꼭 가고 싶었었다. 몽골 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넓은 초원과 사막이었는데, 이번엔 짧은 일정 동안 몽골과 러시아를 다 가야했기 때문에 사막은 포기하고 초원이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 투어만 하기로 했다. 몽골의 초원이나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어를 에약해야 하는데 보통 게스트하우스에서 투어를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일정과 조건을 얘기하면 거기에 맞춰 투어일정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전에 조율하여 미리 계획해서 가는 것이 좋다.


 

어드벤처라이더 게스트하우스 주변 풍경



여러 게스트하우스에 메일을 보내보고 가격과 조건을 비교한 뒤 우리는 어드벤처라이더 라는 게스트하우스에 예약을 했다. 여행의 몇달 전부터 하도 여러번의 메일을 주고받아서인지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내가 요구했던 것들을 차례로 바로 언급해줬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큰 짐을 맡겨두고,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있는 국영백화점에서 필요한 간식과 음료를 좀 샀다. 그리고 드디어 푸르공을 타고 테를지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몽골 여행은 정말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낯선 사람보다는 확실히 서로를 잘 아는 관계일수록 좋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평소에 알기 힘든 많은 부분까지 같이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와 같은 날짜에 투어를 신청한 것이 나와 친구 둘뿐이어서 우리는 오붓하게 둘만의 추억을 부지런히 쌓을 수 있었다. 사실 우리도 서로 알게된지 엄청 오래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번 여행을 계기로 확실히 더 가까워지고 깊어졌다.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은 테를지 국립공원



울란바토르 시내를 볼 때까지만 해도 내가 상상한 몽골의 모습이 아니라고 느꼈는데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니 상상했던대로 정말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말과 소떼들이 모두 신기했는데 정말 너무 많아서 곧 감흥이 떨어질 정도였다. 과연 몽골 초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도로를 달리다가도 말이나 소가 지나가면 차를 멈춰야하고, 동물을 가두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는 곳이었다.



게르 앞에 세워둔 푸르공과 함께



드넓은 초원의 한가운데에 놀 것도 없는데 뭐하며 시간을 때우나 고민했는데 웬걸, 시간은 정말 금방 갔다. 일단 초원으로 가는 길에도 이곳저곳에서 멈춰 독수리를 만나거나 낙타를 만나기도 했고, 테를지 국립공원에 도착해서는 멋진 거북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넓은 초원을 말을 타고 한시간동안이나 달리기도 했고, 저녁 때는 동산에 올라가서 말이나 소를 구경하며 놀기도 했다. 게다가 현지인 게르에서 먹는 식사는 어쩜 그리 다 맛있는지. 돌로 지져 익힌 허르헉 바베큐도 정말 최고였다.



돌로 직접 구워 익히는 허르헉 바베큐



7월 중순의 몽골 날씨는 딱 좋았다. 그래서 7월이 성수기라 하는데 정말 햇살은 뜨거워도 바람은 서늘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혹시 몰라 챙긴 핫팩은 꺼낼 일도 없었다. 밤에 살짝 추워지기 하는데 게르에 따뜻한 장작을 피워주셔서 걱정 없었다. 오히려 열기 때문에 덥기까지 했다. 하필 우리가 갔던 날 밤에 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바람에 별은 구경할 수 없었지만 따뜻하게 데워진 게르 안에서 왕모기와 씨름하며 나름 재미있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게르



사실 몽골 여행은 불편한 것이 많다고 익히 들어서 나름 마음의 각오를 하고 떠났었다. 1.5리터짜리 생수로 먹고 씻고 하루를 버텨야 하고, 전기도 잘 통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게르 안에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하나 있었고, 화장실 앞에 나름 거울과 세면대도 갖춰져있었다. 물론 물은 부어가며 써야하고 화장실은 푸세식인데다 온갖 벌레들이 지나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워낙 기대를 안한 덕인지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고 또 이 정도의 불편함은 거뜬히 견뎌졌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내가 지금 갖지 못하는 좋은 것들만 바라보며 사는 일은 사실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아지는 삶이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며 달려나가는 건강한 방법도 있지만 그저 신세한탄이나 자괴감에 빠지는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까. 나 역시 오래전부터 세워온 여행 계획이 계속 현실에 부딪쳐 실현될 수 없을 때마다 속상하고 때때로 좌절하기도 했다. 괜히 죄 없는 이들이 미울 때도 있었다. 누구나 마음이 가난해질 때가 있긴 하겠지만-



아주 조금만 기대를 내려놓는 것. 그래서 불편함이 감사함으로 바뀌는 마술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몽골에서의 진짜 마법같은 여행의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