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

잘 산다는 건 뭘까 생각하면서

by 잡다니


너의 첫 글에 대한 답글로 나도 왠지 영화 이야기를 해야할 것만 같았어. 사는 게 뭐 그리 바쁘다고 내내 영화관에 영화 한 편 보러가지를 못하다가 어제는 대흥동 ㅡ내가 널 처음 이곳에 데려갔을 때 대전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네가 좋아했던 곳ㅡ 에 생긴 작은 동네극장엘 찾아갔었어. 거긴 옛날에 대전 병무청장의 관사였댔나. 아무튼 오래된 주택의 대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니 낡았지만 정겹고 초록한 것들로 꾸며진 공간이 나를 반겼어. 너도 봤다면 분명 좋아했을 거야.



작은 방에 검은 암막커튼이 문짝 대신 달려있고 좌석은 8개. 그것도 오래 앉으면 허리아플 그런 의자가 놓여있었어. 한쪽에는 빔 프로젝트가 설치되어 있고, 신기하게 그걸로 정말 충분히 훌륭한 영화관이 되었어. 나와 친구가 함께 찾아간 날 상영하기로 한 영화는 원래 다른 영화였는데, 마침 내가 아는 분이 관계자이신 덕분에 원하는 영화를 고르면 틀어주시겠다고 했어. 이런게 동네극장의 묘미이기도 하다면서 말이지. 물론 우리를 제외한 또 한 명의 관객에게 양해를 구한 뒤 말야. 정해진 계획들을 무너뜨려도 전혀 상관없고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 그런 일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지. 나는 그 순간도 참 감사하더라.



고민 끝에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단편모음었어. 주제는 '청년, 노동에 대한 단상'이었지. 여러가지 장르의 영화들이 청년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묶여있는 섹션이었어.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픽션 그리고 실험영화까지.. 보는 내내 감독들의 재기발랄한 표현력에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의자가 살짝 불편하기도 했고. 그래도 기꺼이 견딜만한 불편함이었어.) 아무튼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었어. 우리 역시 청년이고 열심히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잖니.


잘 산다는 건 뭘까. 가장 마지막으로 상영한 젊은 청년감독의 영화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를 보고나니 그런 물음을 내 스스로 던지게 되더라. 그 감독은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 아닌 사회로 곧장 내보내지게 되었는데, 아버지에게 매달 70만원씩 용돈을 받기 때문에 노동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대. 그러다가 어느날 주변에서 열심히 노동을 하며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죄책감이 들어 이 영화를 만들었대. 누군가가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까? 그런데 그 갈등의 마음도 왠지 이해가 가더라.



결국 그녀는 긴 갈등 끝에 영화감독이 되어 좋은 작품도 만들어내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왜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미제로 남아있는 것 같아. 예전에 전주의 남부시장에 있는 청년몰에서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문구를 보고는 저거다! 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결국 우리는 먹고 살려면 적당히라도 벌어야 한다는 거잖아. 왜 반드시 노동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안 해봤던 거지.


어느 광고에서처럼 '잘 산다'는 건 정말 '잘 산다는(buy)'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노동을 하며 그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대가를 꼬박꼬박 받으면 되는 게 맞는 건지. 노동을 해야만 반드시 인간다워지고 가치있는 인간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좀처럼 답을 쉬이 내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무수히 스쳐가는 그런 밤이었어.



요즘 네가 좋다던 대흥동에는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집주인에게 떠밀려서 예술가들이 상주하던 공간들이 무너지고 예쁜 카페들이 문을 닫고.. 원룸이 들어온대나. 서울의 홍대처럼 대전의 대흥동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꿈일텐데, 왜 누군가의 꿈은 사치가 되는 걸까. 참으로 안타까운 요즘이야.


그래서 요즘 난 잘 살려는 노력보다는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 그 대상이 자연이 되었든 동물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같이 잘 살면 좋잖아. 난 너와 내가 과도한 스펙경쟁의 궤도에 편승하지 않고 남들과 조금은 다른 길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해. 우리의 이 작은 글나눔이 과연 지구의 얼마만큼이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기도하면서 같이 잘 살아보자.


7월에 대전에 놀러와. 대흥동에 있는 저 작은 동네극장 다방에서 레지던시도 하고 있는데, 거기 머물며 작업하는 작가들이 전시도 하고 야외 옥상 테라스에서 영화도 같이 본대. 덩치는 크지만 하얗고 살가운 멍멍이 씨알이도 기다리고 있어. 우리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