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법학적성은?!
#로스쿨 첫 번째 관문, 운명의 200분
"컹컹!! 컹컹!!"
아이폰 알람음 중에는 '개 짖는 소리'라는 알람음이 있다. 원체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극단적으로 시끄러운 알람음이 아니면 듣고 일어나지 못했다. 고등학교도 기숙 외고를 다녔는데, 마트에서 제일 시끄럽다는 자명종을 세 개나 맞춰놓고도 듣고 일어나지 못했다. 벌점이 쌓여 기숙사에서 퇴사당할 위기일 정도였으니..
그 후로 몇 년이나 내 알람음인 개 짖는 소리에 눈을 떠, 잔뜩 흐린 하늘에 여름이 머금은 습기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그토록 기다렸지만, 그토록 오지 않길 바랐던 리트 시험날이었다.
"진성아 일어났니?? 오늘 날씨가 비가 많이 오네.. 밥 해놨으니 정신 좀 차리고 먹어"
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울 시험장은 군집을 이룬 수험생으로 정신이 없었기에, 나는 고향인 춘천에서 고즈넉하게 시험을 보기 위해 리트 일주일 전부터 본가에 내려와 있었다. 마지막 일주일을 맞이하여, 리트 시뮬레이션을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메뉴의 아침을 간단히 먹고, 시험시간과 똑같이 기출문제를 풀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코로나로 인해 아무 데도 못 가고 자취방에 처박혀 하루종일 리트만 풀던 나날들이 비로소 오늘로써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이 맛있는 조합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
나는 일주일 동안 아침 고정 메뉴였던 구수하고 뜨끈한 누룽지와 짭조름하면서 기름진 베이컨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후, 어스름하게 흐린 하늘을 보며 집을 나섰다.
나의 꿈은 중학교 시절부터 법조인이었다. 인간사에는 갈등이 끊일 수 없기에, 실체는 없지만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고 싶었다. 다만 법대가 없어지고 로스쿨 체제로 전환되면서 학부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하여 평소 관심 있었던 외교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렇지만 결국 나의 최종 목표는 10여 년 동안 언제나 서울대 로스쿨이었다. 그 외에는 어떠한 플랜 B도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전업 리트 공부를 한 기간은 6개월 정도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서울대 로스쿨에 가는 것은 고정된 미래고 현재의 나는 그 미래를 만들면 된다'는 어찌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모의고사 성적도 목표치에서 안정이었고 난 할 수 있다. 딱 140점만 맞자'
속으로 되뇌며 어둑한 날씨와는 대조되게 수술실처럼 환한 시험장에 들어섰다. 이제 이곳에서 나갈 때는 나의 운명이 어느 정도 결정 나 있을 것이다.
리트는 오전 시험인 언어이해와 추리논증 각 75분, 125분, 합쳐서 200분이 모든 걸 결정짓는다. 적성시험의 특성상 지금까지 잘해왔든 못해왔든 바로 오늘의 200분을 지배하는 자가 승리한다. 머리를 예열시키는 용도로 짧은 지문을 가져와서 읽는 사람,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사람, 나랑 비슷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사람 모두가 마침내 언어이해 시험지를 받아 들었고,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운명의 200분이 시작되었다.
'프로세...스 마이닝..?'
호기롭게 첫 장을 넘겨 눈에 들어온 첫 단어를 본 순간, 이번 리트가 '불리트'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동안 기출은 보통 첫 지문은 법철학 관련 지문을 내는 게 암묵적 관례였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부터 듣도보도 못한, 경영학인지 과학기술 지문인지 모르겠는 지문이 첫 번째로 나왔다.
서울대 로스쿨에 배수진을 쳐 놓은 나로서는 3초 정도 멘붕에 빠졌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수많은 모의고사를 거치면서 그동안 많은 '억까'지문을 봐왔지 않았던가. 이렇게 숨이 턱 막히고 요상한 개념이 많이 나올 때를 위해 연습한 전략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출제자는 문제를 '풀 수는 있도록' 내야 하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개념 그 자체가 아니라 '개념들 간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프로세스 마이닝 같은 생소한 개념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어차피 그 짧은 시간 안에 불가능한 것이기에, 출제자가 문제를 풀라고 서술해 둔 그 개념의 속성, 다른 개념과의 관계, 그 개념이 사용되는 상황 등에 집중하여 첫 지문을 풀어나갔다.
어찌저찌 멘탈에 큰 타격을 준 첫 지문을 넘기자, 그 후로는 첫 지문보다는 조금은 평이한 지문들이었다. 한 지문을 읽고 딸린 세 문제를 푸는 데 7분을 절대 넘기면 안 되어서, 무엇보다 칼같이 지문별 시간을 맞추는데 집중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언제나 언어이해 시간은 짧다. 태어나서 이렇게 잔뜩 긴장한 상태로 초집중하여 빠른 속도로 글을 읽을 일이 없기에 언어이해 시험이 끝나자 머리에서 김이 푸쉬쉭 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보면 그래도 잘 본 거 같다, 못 본 거 같다는 대충의 느낌은 들었는데 언어이해는 끝나고도 정말 그 결과를 모르겠는 인생 첫 시험이었다. 5지선다에서 3개를 제거하고 남은 2개의 선지 중 헷갈렸던 문제가 너무 많아서, 그런 문제에 쳐놓은 별표개수만 보면 한숨이 나왔다.
서울대 로스쿨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머리는 도저히 120분의 시험을 더 볼 수 있을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챙겨 온 초콜릿을 화풀이하듯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움에 빠져 있는 동안 짧은 쉬는 시간은 지나갔고, 추리논증 문제지는 나의 괴로움을 모르는지 어느새 내 책상에 자리 잡아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오히려 망했다는 생각에 반쯤 포기한 상태가 마음이 편해져서였을까, 추리논증 전반부는 생각보다 평이했다. 다만 피샛의 상황판단을 연습으로 풀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 리트에서는 수리 추리 문제가 평소보다 많이 나왔다고 느꼈다. 수학을 정말 싫어했던 나로서는 피샛 상판을 풀면서도 '정말 이런 더러운 계산 문제가 나올까?'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연습을 해봤던 과거의 나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추리논증 중반부에는 논리게임이 2~3문제 고정 출제되는데, 리트 공부 초기 나를 가장 괴롭혔던 문제 유형이었다. 처음에는 한 문제에 10분을 넘게 쓰고도 틀린 경우도 많았다. 그 이후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논리게임 유형별 풀이법을 연습했고, 칼을 갈아온 만큼 이번 시험의 논리게임 세 문제는 매우 순조롭게 풀고 넘어갈 수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풀었는지 모르는 추리논증 시간도 마침내 끝이 나고, 의기양양하고 쌩쌩한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섰던 나는 200분 만에 몸과 마음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약해진 마음은 리트 시험 날 절대 보면 안 되는 사이트, 금단의 스0라이프 전문대학원 게시판으로 내 손을 이끌었고 벌써부터 몇 번 문제에 답이 무엇인지 갑론을박하는 글 목록을 스캔하게끔 했다. 추리논증에서 마지막까지 헷갈렸던 한 문제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문제의 답에 대한 논쟁이 아주 뜨거웠고, 사람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선택지 2개 중 내가 고른 답은...없었다...
리트를 다시 볼 엄두는 안 났다. 게다가 난 아직 미필이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반도 못 먹고 마지막 논술 시험에는 인생의 목표를 수정해야 할지, 일단 군대를 가야 할지 등을 고민하며 시간을 때웠다.
"진성아 배고프지? 저녁은 뭐 먹을까?"
올 것 같지 않았던 리트 시험의 끝이 왔고, 나를 데리러 온 부모님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대충 나의 상태를 보고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힘이 너무 빠져 보이는 내가 걱정된 아빠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저녁 메뉴를 물어봤다.
집에 도착하니 외할머니와 동생, 우리 집 막내 강아지 별이까지 거실 소파에 쪼르르 앉아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좀 안되게 있으면 답안 올라오는데, 나 그때까지 게임 좀 할게"
나는 작은방에 들어가 창 하나에 법전원 홈페이지를 켜놓고 애써 그 창을 보지 않으려 롤을 켰다. 인생에서 가장 집중 안 되는 게임을 억지로 2판 정도 하던 찰나, 무한 새로고침 중에 드디어 리트 답안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심박수가 올라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쿵쾅대는 내 심장 소리를 들으며 눈앞에 보이는 펜 아무거나 집어 들고 문제지를 펼쳤다. 어찌 됐든 내가 푼 문제들이고, 도망칠 수 없어 괴로워도 내가 오롯이 그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다섯 문제씩 답을 맞춰 나갔다. 연달아 모두 정답일 때 촥촥 치는 동그라미에 온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고, 하나씩 그어지는 작대기에 손발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채 3분도 안 되어 70문제 채점을 마치고 난 후,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며 외쳤다.
"나 서울대 로스쿨 갈 수 있다!!!!!!!!!"
결과는 언어이해 25, 추리논증 35문제를 맞혔다. 작년 기준으로 표준점수는 목표치였던 140점을 훌쩍 넘었고, 잘하면 150점도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
나의 외마디 외침과 함께 소파에 쪼르르 앉아있던 가족들의 눈도 휘둥그레 해졌고, 모두가 얼싸안고 안도의 한숨, 웃음, 기쁨을 터트렸다. 아빠는 오늘을 위해 사둔 로얄살루트 21년 산을 챙겼고, 모두 함께 고깃집에 가 소고기와 위스키로 그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린 몸을 녹였다. 오늘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을 보니, 오늘 하루 동안 머리를 너무 써 피가 몰려서 그런지 얼굴이 정말 물리적으로 가득 부어 있었다.
더 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쳤지만, 나의 일생의 목표였던 서울대 로스쿨에 가기 위한 가장 큰 관문을 넘었다. 오늘 하루는 평생 가장 치열했던 200분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위스키보다 더 달콤했던, 서울대 로스쿨의 9부 능선을 넘었다는 안도와 행복에 취해 깊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