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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pr 23. 2016

CeskyCrumlov, 당신에게 늘 행운이 가득하길

우리의 '동행의 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밤의 체스키크롬로프

'와아아-' 앳되지만 굵은 남학생들의 목소리와 한껏 들뜬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이곳은 한국사람들이 '체스키-체스키-'하며 줄여 부르는 곳,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체스키'는 '체코의'라는 뜻으로 체코 사람들에게 "체스키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고 묻는 다면 그들에게선 이런 대답밖에 듣지 못할 거다. "그러니까 체코의 어디를 말하는 거죠?" 


10월 25일, 할슈타트에서 셔틀차를 타고 체스키크롬로프로 향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출발해 온통 어두워져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그날은 할로윈데이 전야제 비슷한 걸 하는지 거리는 분장을 한 학생들의 행진으로 떠들썩했다. H와 나는 졸던 눈을 번쩍 뜨고, 셔틀차에서 내리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저 조용한 곳으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축제라니, 것두 외국에서. 눈을 반짝이며 숙소를 찾아 먼저 짐을 내리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점차 그들의 아우성이 잦아들었다. 그 사이 축제가 끝난 것이다. 시간은 9시에 가까워져 있었고, 그들은 본 축제를 즐긴 뒤 뒷풀이를 하고 있을 터였다. 


H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밤의 체스키크롬로프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축제의 끝물인지 분장을 한 몇몇의 학생들이 술에 취한 채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애가 풀린 눈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안녕?" 그 여자애는 맑은 얼굴로 말을 건넸고, 나는 그 아이의 짧은 인사에서 만취한 사람의 향기를 느꼈다. 그저 웃기만 하던 얼굴을 유지한 채 내가 말했다. "너 술취했니? 지금 할로윈 파티 하는 거야?"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말하자 그 여자애는 맞다는 건지, 아니라고 하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지금 가야해, 안녕." 경계해야할지 같이 술이라도 마시러 가자고 제안해야할 지 갈팡질팡 하는 사이 그 여자애는 떠나버렸다. H와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던 것도 같다. 

에곤실레 박물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실레의 얼굴이 가득하다.
에곤 실레 박물관, 그리고 에곤실레


이튿날 아침, 어제 사놓은 시리얼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지난 날 비엔나에서 처음 봤던 화가 '에곤 실레' 박물관을 가는 것이었다. H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에곤실레를 전날 이미 마주했던 나의 소감은 그가 매우 매우 잘생겼다는 것, 또 센스가 넘쳐나는 사람이었을 것, 이라는 것이었다. 


체스키크롬로프는 에곤실레 엄마의 고향이다. 실레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어 했지만 그의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훗날 다시 돌아온 에곤실레. 그가 이곳에 돌아와서 느꼈을 공허함의 정서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일찍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실레의 작품은 그래서인지 인간의 허무함의 감정을 깊숙이 안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숨겨진 성욕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그것은 심적인 공허함을 대신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의 해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위를 하지 않았을 때의 유지될 어쩌지 못할 감정 같은 것들. 어느 작품에서 묘사된 무표정으로 섹스를 하는 남녀의 모습도 그러한 정서의 연장선은 아니었을까.   


에곤실레 박물관에서 3시간 가까이 보내고 난 뒤 다음 일정 장소로 가기 위해 나왔다. 박물관 옆에는 에곤실레 카페 비스무리한 것이 있었는데, H와 나는 눈을 반짝이며 그곳으로 홀리듯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에 우리는 이따 다시 올 것으로 의견을 합친 채 카페가 언제까지 문을 여는지 사장에게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질문의 의도를 한참 빗겨간 것이었지만 우리는 동시에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는 주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락앤롤', '블루스', '재즈' 등의 단어들이 주는 어떤 불확실한 확실 때문이었고, 영어를 곧잘 하는 (사실 너무너무 잘하는) H는 '오늘 8시에 여기서 공연이 있을 거야. 12시까지 할 거고'라는 완벽한 해석이 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다. 오늘은 특별히 라이브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들뜬 마음 가득 안고 카페를 나섰다. 


카페에 다시 돌아온 시간은 8시에 꼭 맞춘 시간이었다. 미리 자리를 잡기 위해 7시에 왔지만 셋팅해야 하니 8시에 맞춰오라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체스키크롬로프 성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었다. 든든해진 체코의 술을 홀짝였다.  


같은 나이 또래거나, 혹은 조금 더 어려보이는 청년이 기타를 들고 잠깐의 리허설을 했다. 우리는 체코의 맥주를 두 잔 시키고 그 앞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기 바빴다. 청년은 대부분 비틀즈의 노래를 불렀는데 엄청난 실력은 아니었다. 기타 연주도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는 실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우리와 같은 테이블을 공유했던 중년의 여성에게 눈길이 갔다. 그녀는 다리를 꼰 채 자신의 손을 무릎 위에 두고 까닥까닥 거리며 박자를 맞춰댔다. 뒤늦게 들어온 어떤 남성 또한 우리의 옆 테이블에서 조금 서툰 청년의 음악을 그 자체로 즐기고 있었다. 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어떤 부부도 기억난다. 나중에 프라하 까를교를 걸으며 또 비슷한 풍경을 목격했었는데, 그때 H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이런 말 좀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많이 서툰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이건 나한테도 물론 해당되는 말이고." 사실 그 말을 꺼낸 데에는 까를교의 거리음악가들 사이에서 춤을 추던 연인을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멀찌감치 바라보던 동양남자의 눈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순간의 표정을 읽은 내가 가진 편견일 수도,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 순간에, 그 공간에서 이 라이브 음악을 H와 함께 들을 수 있는 건 나에게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다르고, 또 각자 즐기는 음악이 다름에도 H와 나는 이러한 공간에서 조용히 음악에만 귀기울여 앉아 있어도 서로를 이해할 만큼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조금은 맛없는 체코 맥주를 비우기 직전,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중년의 남성 4명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그 중 한 남성은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는데, 나는 취한 술 탓인지, 졸린 눈 탓인지 그만 귀찮아져 버렸다. 대충 예의상 대답을 하다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말을 끊었던 것도 같다. 계산을 마치고 온 H가 이제 그만 가자고 속삭여왔다. 난 좋다고 말하며 그곳을 빠져나오려 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중년의 남성이 건넨 말은 졸린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었다. 


"bye, i wish you good luck" 짧은 문장이었지만 마음에 콕 박히는 것이었다. H로부터 그 문장의 올바른 교정을 받고 메모장에 적어둔 채 다짐했다.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리라고. 그렇게 귀찮았던 순간에 그저 스쳐가는 누가 말해준 문장은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매일 누군가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란 쉽지 않지만 누군가를 향해 매일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의 진심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체스키크롬로프의 매일이 그랬다. 체스키크롬로프 성에서 '한국학생!!'하고 부르며 남은 티켓을 얹어주던 한국인 아저씨 아줌마들이 그랬고, 팔지 않는다는 에곤실레 스티커를 살 수 있게 해주던 기프트 샵 직원이 그랬다. 이들 모두가 나에겐 행운이었던 셈이다. 물론 제일 큰 행운은 지금 독일 플렌스부르크에서 조식으로 시리얼을 듬뿍 먹거나 혹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을 듣고 있을 H겠지만. 그렇게 우리의 '동행의 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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