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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혜 May 31. 2024

매번 설명해야 하는 위치

#1

  1년이 넘도록 매번 똑같은 질문지를 받아 들고, 설명하고 증명하던 그는 지금,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누워있다. 2주 전, 그 소식을 알았을 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조급했다. 무언가를 당장 하기에, 우리 사이에 거리는 너무 멀었다. 모른 척 하기에 하루 한 번씩 그가 생각났다.


  둘 사이 거리로 관계를 따지면, 인사 몇 번 나눈 그와 난 남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를 위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잠시 생각했다. 둘 사이 거리가 아니라, 지난 1년간 우리가 해온 행동으로 관계를 따진다면, 우리는 팀원이다. 1년간 그는 집결지를 지켰고, 나는 그를 지지했다. 팀원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팀원을 위한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 이 글이 그에게 도움이 될까? 잘 모르겠을 때는 쓸 수 있는 걸 쓰면 된다. 이 글은 강제폐쇄와 의식불명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글이다.


#2

  집결지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 설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왜 탈성매매를 하지 않는지, 왜 집결지에 남아있는지, 대안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왜 분노하고 왜 우는지, 계속 설명해야 한다. 열심히 설명하면, 다른 한쪽에서 업주에게 세뇌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용주골에 경찰, 용역, 공무원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몸을 다치고, 공황을 겪고, 과호흡으로 실려 가고, 불안 증세로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 폐쇄를 추진하는 자들은 이 모든 걸 ’쇼‘라고 여긴다.


  이게 다 쇼라면, 이 쇼의 연기자들은 위험해져야만 살 수 있다는 걸 터득한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분명 ‘오늘은 절대 다치지 말자’고 다짐하는 그들을 목격했다. 그들의 다짐은 ‘당신들이 갇혀있는 이 감옥이 왜 폐쇄되면 안 되는지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 꺾였다. 그들은 이곳이 감옥이 아닌 나의 집이라는 걸 설명하고자 전봇대를 올랐다.


#3

  이곳을 폐쇄하려는 상대는, 전봇대 끝에 매달린 위태로운 몸에 코웃음을 던진다. 그러니 어찌 내 집과 내 삶이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를 말로만 설명할 수 있겠나. 전봇대를 오르고,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박고, “폐쇄하지 말라”라고 외쳐야지. 부서지는 집 한가운데에서 “그만하라”라고 외치고, 공무원의 다리를 붙들고, 경찰과 용역을 막으며 버텨야지. 이곳이 우리의 삶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위험해져야지.


   그렇게 위험해지면, 폐쇄 담당자가 철수 명령을 내린다. 그 순간 용역, 경찰 모두 집결지에서 사라진다. 모두가 철수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승리였다.


#4

  그런데 이번엔 완전히 패배했다. 누구도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그만하라”라고 몇 번이나 외쳤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몇 주간 누워있다.


  계속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은 사람들은 대화할 마음조차 없는 상대를 향해, 오늘도 설명하고, 내일도 설명한다. 모르겠다. 죽을 것 같다는 외침을 ‘쇼’로 치부할 만큼 중요한 게 뭔가. 그들은 왜 계속 허공을 향해 설명해야 하나. 왜 믿지 않는가? 그가 깨어났을 때, 당신 혼자 남겨진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자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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