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나는 학창 시절 이상과 백석, 박태원 등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문학인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작품에 빠져 있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한 문학인 또한 윤동주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성에 비교해 윤동주 개인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윤동주는 30년을 채 살지 못했고, 그는 시를 쓰는 청년이었지(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투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작품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이룰 수 있어야 하는데 알려진 윤동주의 생애 만으로는 이를 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최근 몇 년 새에 제작된 작품들이 영화 <동주>와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이다.
장르에 관계없이 어떤 창작자가 실제 사건을 드라마 형식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픽션 가미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이때 ‘픽션’은 온전히 창작자의 상상력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창작자의 관점에 따라 특정 사건 혹은 인물에 대한 묘사가 판이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동주>와 <윤동주, 달을 쏘다> 모두 픽션이 가미되었으며, 두 작품의 창작자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작품이 인물을 표현하고 조명하는 방식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뚜렷이 드러나는데, <윤동주, 달을 쏘다>의 클라이맥스에서 윤동주는 ‘별 헤는 밤’을 독백처럼 내뱉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뒤이어
날 바라보는 저 달이 미워져
내 부끄러움을 비추는 달이 미워
···(중략)···
오늘도 내일도 나는
무사의 마음으로
너를 쏜다
시를 쓴다
삶이 쓰다
달을 쏘다
라는 가사의 윤동주 넘버가 이어진다. 달빛은 윤동주가 쏜 화살에 의해 부서지고, 달을 쏘는 행위는 시를 쓰는 것으로 귀결된다. 작품은 자신의 손으로 부끄러움을 쏘아 부수는 윤동주를 보여주며 ‘쉽게 쓰여진 시’를 쓴 윤동주가 결코 부끄러운 삶을 살다 간 인물이 아님을 말한다.
<동주>의 클라이맥스는 동주와 몽규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본의 고등 형사에게 서명을 요구당하는 장면이다. 저항조직을 만들었다는 조서에 서명하라는 고등 형사의 요구에 송몽규는 “여기 적혀 있는 죄목들을 내가 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한탄스럽다.”며 서명을 하고, 윤동주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기를 바라고 그림자처럼 살았던 것이 부끄러워 여기 적힌 일들을 내가 했다고 할 수 없다.”며 용지를 찢어버린다. 교차 편집된 서명 장면은 두 인물이 행동은 달랐으나 죽음의 기로에 선 순간까지 지키고자 한 신념은 같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윤동주, 달을 쏘다>가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한 ‘시인 윤동주’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주>는 보다 인물의 내면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며, 윤동주의 내적인 고뇌를 사촌인 송몽규와의 관계를 통해 부각한다. 장르와 창작자에 따른 전개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두 작품 모두 엄혹한 시대에 부끄러움을 알고 시를 쓴 것은 치열하게 시대를 산 것이며, 윤동주는 그렇게 순수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사람임을 이야기한다.
윤동주는 안중근 같은 독립투사도, 송몽규 같은 행동주의자도 아니었다. 나는 이것이 윤동주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윤동주는 나서지 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이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문학의 뒤에 숨는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물음을 던졌다. <동주>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는 동주에게 정지용 시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를 떠올리며 모두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개인의 미래와 가족 그리고 목숨까지 포기하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쉽게 ‘할 수 있다’라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저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는 이런 부끄러움을 수없이 느낀다. 매번 소리 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행동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도 주저하고 고민한다. 나는 나와 같이 부끄러움을 느낀 이들이 윤동주의 작품을 읽으며 자신을 윤동주에 투영하고 그를 사랑한 것이라 믿는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립을 갈망하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슬프지만 어려운 시대를 힘들게, 그러나 묵묵히 버텨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에 몸부림쳤을지 모른다. 윤동주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시로 남기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던 남은 이들에게 구원이 되었다.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움을 통해 삶과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독립에 대한 열망과 무력감을 동시에 담아낸 참회의 시는 후대에 사유와 행동의 동력이 되었다.
윤동주의 작품이 나에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었다면 윤동주의 삶을 다룬 <동주>와 <윤동주, 달을 쏘다>는 나에게 ‘엄혹한 시대에 예술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었다. 연극은 시대의 거울, 사회의 거울로 비유된다. 이는 공연 예술이 그 어떤 예술보다 시대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앞으로도 온전히 '나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 감히 예언한다. 대신 공연기획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최소한,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 어떤 예술을 해야 하는가를 치열히 고민해왔다. 몇 년간 한국 공연계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세월호 사고와 국정농단 사태,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미투 사태 등을 겪으며 절망했다. 일부는 공연계 밖에서 벌어진 비극이었고, 일부는 공연계 내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그중 미투 사태는 후자에 속했다. 운동이 시작된 이후 매일 같이 한두 명의 연극인들의 기사가 보도됐다. 그들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으나 용기 있는 피해자들의 고백으로 성폭력 행각이 밝혀졌다. 한 연극인은 한국 연극계에서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었다.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1호에 올라 정부에 의해 탄압받았고, 그런 정부의 행태를 비판했다. 또 다른 유명 배우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앞장서 행동하려 노력한 사람이었다.(성폭력 행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연기했고, 블랙리스트에 항거해 광화문에 세웠던 ‘광장 극장 블랙텐트’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이전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포함한 문화예술계 탄압 행위가 탁월한 선택, 혹은 선견지명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거대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개인을 대변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이용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분개했다. 학교의 선후배, 동기들은 성범죄자의 작품을 소비한 것에 분통해했고, 몇몇은 교과서이기도 했던 그들이 쓴 책을 찢어발겼다. 인터넷에는 ‘공연계는 진짜 썩었구나.’라는 댓글이 넘쳐났다. 지인들은 나에게는 무슨 일이 없었는지 물었고, 같은 전공의 친구는 앞으로 공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위로도 해줄 수 없었다.
<동주>에는 미투 가해자들과 닮아 있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한때 존경하던 인물. 순수 문학가로 존경받았으나 일제에 편승해 일본 징용과 창씨개명을 권장한 춘원 이광수. 실제 이광수는 독립 후에 자신은 ‘민족을 위하여 살고 민족을 위하다가 죽은 이광수가 되기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친일 행위를 변호하였다. 이광수뿐 아니라 최남선, 서정주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각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독립을 이룰지 몰랐다’, ‘나라의 발전을 위한 행동이었다’라는 식의 변명의 말을 내던졌다. 영화에서 송몽규는 이광수를 좋아했던 과거를 두고 실수였다고 말한다. 그가 순수문학을 거부하고 사회참여적 예술만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데에는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의 친구처럼 변절한 순수 문학가에 대한 배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부끄러움 뒤에 반성이, 그 뒤에 개선이 있다’. 이는 역사 속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미투 사태 이후 공연계에서는 부끄러움을 아는 예술인들이 나서서 반성과 성찰의 뜻을 전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공연계는 현재까지 어느 분야보다 활발히 자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개개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역사 속에서 부끄러움을 알고 지금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에는 '시를 쓴다는 것은 아픔을 느끼는 것, 청춘을 바치는 것'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아픔을 느끼는 것이 곧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일 것이다. 이제 나는 송몽규와 같은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 한다. 미투의 가해자들, 친일문학가. 이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잊은 사람들이라고. 너는 부끄러움을 알아서 괴로운 것이니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면 된다고. 같은 말을 나 자신에게도 전하며 다시 한번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2018년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