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빚어낸 '존재의 역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by 단꾸

톰 티크베어 감독의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원작 소설을 영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며, 관객에게 ‘후각의 시각화’라는 독특한 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어둠 속 감옥에서 한 줄기 빛을 받으며 섬뜩하게 클로즈업되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의 코로 강렬하게 시작하여, 군중의 비난 속에서 처형을 기다리는 그의 비극적 운명을 이야기한다. 삼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그의 삶은 ‘향수’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 뒤에 숨겨진, ‘냄새 없는 자’의 치명적인 역설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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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악취가 가득했던 18세기 파리의 생선 시장에서 시작한다. 그는 세상 모든 냄새를 비범하게 감지하는 천재적인 후각을 지녔으나,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체취도 없는 ‘냄새 없는 자’라는 태생적 결함을 안고 다섯 번째 사생아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려지고, 첫울음으로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의 불운한 출생은, 타인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지 못하는 ‘냄새 없는 자’로서의 고독한 운명을 예고한다. 세상의 모든 향기를 선명하게 인지하면서도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냄새’로써 기억되지 않는 투명한 존재. 그는 오직 후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 맺으려 했고, 그러다 파리의 매혹적인 자두 여인의 향기에 이끌려 그녀를 뒤쫓는다. 그 향기를 온전히 소유하려는 집착 속에서 저지른 그의 첫 살인은, 타인에게 자신을 각인시키지 못하는 근원적인 결핍이 빚어낸 비극적인 몸부림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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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맹목적인 욕망은 그를 향수 제조 장인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의 후계자로 이끌고, 그르누이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파리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살아있는 여인의 매혹적인 체취만큼은 병 속에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자, 그는 이 난제를 해결하고자 ‘향수의 낙원’이라 불리는 그라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체취를 추출하여,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의 궁극적인 향수를 완성하게 된다. 이는 존재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맹목적인 시도이자, 역설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앗아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그의 뒤틀린 자기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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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절정은 그의 사형 집행 장면에서 펼쳐진다. 13명의 여인을 살해한 잔혹한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르누이가 자신이 만든 향수를 뿌린 채 왕자처럼 푸른 옷을 입고 처형대에 오르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가 지닌 단 몇 방울의 향수는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과 교황마저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분노와 증오 대신 사랑과 숭배의 황홀경 속으로 인도한다. 이 장면은 ‘냄새 없는 자’의 역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본연적인 존재감이 아닌, 타인의 생명에서 강탈한 ‘가짜’ 향기를 통해 인위적인 사랑과 인정을 강제적으로 얻어낸 것이다. 이는 진정한 사랑의 결핍 때문에 향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비극적 운명을 강조함과 동시에, 타인의 인식 없이는 결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었던 그의 외로운 내면을 가슴 아프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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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퀀스에서 그르누이는 태어난 곳의 냄새를 기억하는 연어의 본능처럼, 자신이 태어난 생선 시장으로 회귀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몸에 궁극의 향수를 뿌리고, 부랑자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을 소멸시킨다. 이 장면은 ‘냄새 없는 자’로서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향기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그가, 결국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랑과 인정이 진정한 자신을 채울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스스로 아무런 체취가 없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자신을 대했던 세상에 대한 회한과, 그리고 비로소 자두 여인에게 느꼈던 감정이 단순한 집착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그르누이의 모습은, ‘냄새 없는 자’의 역설적인 운명이 빚어낸 비극적인 운명의 완성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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