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2023)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의미를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발견하는 과정을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게 담아내며, 마치 일상의 작은 틈새로 비치는 햇살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히라야마의 ‘완벽한 하루’와 그 속의 의미
영화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완벽하게 짜인 하루를 따라간다. 동네 할머니의 빗자루 소리에 깨어나는 새벽부터, 작은 모종에 물을 주고 푸른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그의 루틴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와 같다. 푸른 밴 안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음악과 창밖으로 스치는 도쿄 타워는 그의 소박하지만, 숭고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일터에서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하며, 그는 간혹 방해받는 순간에도 화장실 문밖의 자연을 잠시 감상한다.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흑백 필름 카메라로 하늘과 나무를 담는 장면은 그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뷰파인더를 거치지 않고 직접 눈으로 자연을 응시하며 셔터를 누르는 모습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담으려는 순수한 마음을 드러낸다. 반면, 조카를 촬영할 때 뷰파인더를 통해 정성껏 바라보는 모습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의 애틋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흑백 필름에 담고, 필름을 현상해 월별로 정리하는 행위는 사라져 가는 순간을 붙잡아 생명력을 간직하고 싶은 히라야마의 마음이자 흔들리는 내면의 상태를 암시한다.
삶의 리듬과 은유적인 그림자
히라야마의 일상은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서 샤워한 뒤, 지하철 바에서 얼음 든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에는 나무 관련 책을 읽는 것으로 매듭지어진다. 이처럼 과묵하고 단순하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는 자연을 만끽하며 자신만의 견고한 리듬을 유지한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고급 세단을 타고 찾아온 여동생과의 재회에서 흘린 서글픈 눈물, 위독한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않는 설정 등을 통해 과거의 풍요로웠던 삶을 등지고 현재의 소소한 일상을 선택했음을 암시하며 그의 내면에 잠재된 서사를 더욱 깊이 있게 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그림자’는 히라야마의 내면과 과거를 은유하는 중요한 장치다. 꿈속에 나타나는 한자 그림자 ‘影(영)’과 자연물의 흔들림, 벽에 비치는 나뭇가지 그림자들은 그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감정적 깊이를 더한다. 주말마다 방문하는 술집 바 여주인의 전남편이 던지는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지나요?”라는 질문에, 히라야마는 무수히 보았던 나뭇잎 그림자의 흔들림과 자기 삶 속 신념마저 겹쳐 흔들리며 그림자 밝기 놀이로 답한다. 이는 히라야마가 관계성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을 표현하며 관객에게 깊은 사색을 유도한다.
‘Feeling Good’: 순간을 살아가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밴 안에서 흘러나오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에 맞춰 롱테이크로 클로즈업되는 히라야마의 얼굴은 그의 복잡 미묘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똑같은 일상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고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이 순간의 끝이 있음을 아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와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이 교차한다. 이는 노래 가사와 히라야마의 삶이 완벽하게 일치하며, 삶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명장면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없이도, 한 인물의 성실하고 사려 깊은 일상을 통해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어쩌면 우리 각자의 하루에도 적용될 수 있는, ‘완벽하게 불완전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