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딸이 중 3이 되었다.
중 2에서 중 3을 넘어가는 겨울방학을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어느새 개학을 하더니 참관 수업 일정을 알려왔다.
작년에도 후기를 남겼는데 나름 매년 참관수업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 지난 후기에 댓글에 고등학교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다는 분도 계셨고 나 역시 일상의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이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교실 뒤편에 서서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의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약 10분의 매우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쉬는 시간 동안 그 공간의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 해 본다. 순간순간 아이의 학교 생활을 눈에 담는 그 시간이 의미가 있고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그 기록을 남겨보았다.
올해는 중3이다. 믿을 수 없지만 중학교의 가장 고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담임은 젊은 체육 선생님
사실 이번 참관수업은 담임선생을 대면해서 얼굴을 제대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얼마 전 아이가 체육 시간에 배구 스파이크 연습을 하다가 손가락이 탈구가 됐다. 탈구임에도 결국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3박 4일 입원을 통해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로서 속상한 마음은 당연했고,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도 난처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도 아이가 운동을 워낙 좋아하고 스스로 부심도 있고 배구는 초등학교 때 대표 선수를 하며 서울시 대회에 출전을 했던 터라 담임선생도 다른 여자 학생들 대비 잘하는 딸아이를 보고 스파이크 연습을 시켜보다가 생긴 일이었다.
참관수업 후에는 담임선생과의 면담 시간이 있었서 마주하는 시간을 맞이했다. 모든 부모님 중에 남자는 나 밖에 없었고 자리 편성이 자녀 자리에 앉아서 진행하게 되면서 단번에 내가 누구인지 파악한 눈치였고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은 너무 어려 보이는 귀여운 젊은 체육 교사였다. 전체 면담의 시간이 끝나고 별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순간이었는데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회복에 신경 써 달라는 말 한마디 하고 자리를 떴는데 나중에 아이에게 들은 후일담은 아빠의 분위기와 키가 크셔서 무서웠다고. 키 188에 갑자기 나타난 아빠가 꽤나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담임선생에 대한 인상이 괜찮아서 웃음이 나왔다.
참관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년도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교실 뒤편에 서서 아이를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미처 따라갈 수 없는 성장의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수업을 듣는 표정과 친구들과 대화하는 모습 그리고 선생님 수업에 응하는 모습들.
정말 귀하다.
잠시 아이의 수술 얘기를 해보면 수술 후 3박 4일 나는 간병인이 됐다.
아이 엄마가 간병을 하는 게 보통인데 때마침 아내가 해외 출장이 겹치게 되면서 영락없이 내가 간병인으로 당첨이 되었다.
성실히 공부를 해준 것과 학원의 달콤한 제안으로 영재고와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며 방학 내내 쉬지 않고 달린 아이였다. 그리고 여전히 하루 한 시간이 아까운 아이가 근래에 가져보지 못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공부를 할 수 없는 시간을 가졌다. 탈구로 수술로 통증이 있고 움직이기 불편해 힘든 것도 있지만(마취제의 성능은 정말 놀라워서 통증이 거의 없긴 했다.) 본인도 그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동안 아내의 관리로 허용되지 못한 수많은 콘텐츠들의 소비가 이어지고 잠도 실컷 자고 말도 실컷 하고 영락없는 중딩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병실에서 꽤 오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도 대화를 잘하는 부녀라고 생각했지만 주어진 시간에 제한이 없어 하루, 이틀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귀했다. 잠자리가 바뀐 내 몸에 맞추기 쉽지 않은 보조 침대의 자리에 불평할 수 없었다.
없었으면 좋았을 그 상황의 그 시간이 생각보다 좋았다.
아이는 정말 힘든 공부 스케줄을 버텨내주고 있는데 병원에서 우리의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방학 동안 공부가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할 만했고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암기하고 계산하는 반복 속에서 뭔가 오묘한 깨달음을 조금이라도 얻었나... 설마...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나중에 그 말을 곱씹으며 나는 꽤 오래 여운을 느끼듯 생각에 잠겼다.
꽤 터프한 과정이었을 텐데 본인도 살기 위해 스스로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은 늘 편하지 않다. 여전히 어린 녀석인데 어느새 이런 말을 할 만큼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부모로서 나름의 묵직한 그 무엇인가로 다가왔다.
아이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뒤로한 채 새로운 모습을 채워가며 뒤에 있는 나에게 점점 어른스럽게 말하고 있다. 아빠로서 모습을 따라가며 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분히 좋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