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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Feb 26. 2019

미국에서 남편과 하는 육아

여자만의 일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썼던 글들의 시작마다 하는 말이지만 나는 결혼 직후 미국으로 건너와 실리콘밸리에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한국인 여자다. 2년 전에 미국으로 온 후 거의 바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느라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그리곤 지금은 돌이 된 아기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내 평범한 일상은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


7:10 am  기상. 남편의 아침식사 준비 (빼먹을 때도 많다)

8:10 am  남편과 함께 아침식사 이후 설거지 중에 남편의 출근

8:30 am  아기 기상 후 아기를 안고 아기의 아침식사 준비 (이유식)

9:00 am  아기 식사 완료 후 설거지

9:30 am  아기와 오전 놀이 시작. 책 읽어주기 - 과일이나 과자 주기 - 안고 집안 구경시키기의 반복

11:00 am  아기 낮잠시간. 잠자기를 싫어하는 아기라 재우는데 약 30분-1시간 정도 소요됨.

12:00 am  아기가 자는 틈에 집 청소 및 정리, 씻고 옷 갈아입은 후에 점심식사 및 아기 점심식사 준비

1:00 pm  아기 기상 후 점심식사. 그 이후에는 아기의 오후 놀이 시작.

4:00 pm  화장하고 아기와 밖에 나갈 준비

4:30 pm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약 20분간 산책 겸 남편 퇴근 마중

5:00 pm  남편과 아기와 함께 집에 도착. 남편과 번갈아 식사 준비 / 아기 케어

6:00 pm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 설거지는 남편 담당

7:00 pm  넷플릭스나 한국 예능을 보며 간식 타임.

8:50 pm  남편이 아기를 재우러 들어가고 이때부터 육아 퇴근. 역시 아기를 재우는 것은 30분-1시간 소요.

11:00 pm 씻고 잘 준비하면서 독서하거나 쉬다가 취침.


전업주부이다 보니 평일은 거의 남편과 나의 일은 회사 일과 육아로 나누어진다. 한국에 사는 어느 전업주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전업주부의 일상이 이렇게 바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제 막 돌이 된 아기는 안아달라고 하는 때가 많아서 아기를 안은 채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도 참고 있는 때가 자주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상상했을 때 그려지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조깅'하는 것과 같은 그런 멋있는 모습은 사실 거의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처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도 없고 (아기를 그런 기관에 맡기면 한 달에 1,000불은 거뜬하게 넘는다. ) 바쁜 일이 있을 때 잠깐이라도 봐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도 없다. 아기를 보러 놀러 오는 친구들도 사실 거의 없어서 아기는 거의 24시간 엄마와 붙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첫 아이다 보니 아는 것도 (1도) 없고 그래서 종종 한국 엄마들이 어떻게 아기를 키우는지 네이버에서 열심히 검색해보기도 한다. 가끔 친정엄마와 이런 말을 하다 보면 얼마나 나를 짠하게 생각하시는지, 전에 잠깐 한국에 방문했을 때에는 딸 생각에 아기를 놓고 가면 돌 이후까지 키워주시겠다고도 말씀하셨을 정도니 말이다.


분명히 외국인의 신분으로 외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은 맞다. 한국에서처럼 같은 아파트의 아기 엄마들과 쉽게 친해져서 동료애를 느끼며 아이 키우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어렵고, 아이 키우느라 수고한다며 반찬 건네주는 사람도 하나 없는 곳에서 한국식 음식을 매 끼니마다 만들어가며 육아와 병행하는 것은 나를 매일매일 레벨 업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나는 이 삶을 꽤 즐기면서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남편이다.




남편의 배려 섞인 말은 독박 육아하는 아내도 춤추게 한다.

나는 내 남편의 '예쁜 말'을 참 좋아한다. 내 남편은 내가 나를 짠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짠하게 생각한다. 가끔 속 깊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아이 출산 후 내가 혼자 아기를 보던 때를 이야기를 하면 눈가가 금세 빨개지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출근할 때마다 '아기 보느라 힘들겠지만 힘내요. 어서 퇴근해서 함께 할게요.'와 같은 말을 하고, 회사에서도 두, 세 시간에 한 번은 문자로 나와 아기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본다. 퇴근해서는 항상 고생했다며 이제 자신이 하겠다고 쉬라고 한다. 지인을 만나 자연스레 육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항상 남편은 '아내가 제일 고생이지'라고 말한다. 아침식사를 차려주는 나에게 '난 네가 잠을 더 자는 게 마음이 더 편해'라고 하며, '하루 종일 너무 고생이 많았으니 이제 내가 아기 볼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물론 아기를 보는 총량은 내가 더 많지만 남편의 이 마음은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남편에게 인정받으며 하고 있다. 그 사실이 참 고맙다. 남편의 배려 섞인 이런 말들은 비록 내가 미국 생활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채 24시간 동안 집 안에서 혼자 아기를 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정말 큰 힘이 된다.

주말이면 스테이크도 구워주는 남편. 파를 올린 것이 귀엽다.



남편은 밀린 집안일을 잔소리 없이 뚝딱 해 낸다.

나는 집안일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주부가 된 탓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집안일을 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나도 알고 있는 약점(?)인데, 육아를 하면서 이것들은 더더욱 내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었다. 하루 종일 아기 뒤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다 보면 빨래나 청소하는 것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이 사실을 알아도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에 잠깐 생기는 시간엔 가만히 앉아 평온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 어질러진 집 안 보려고 눈 질끈 감은 채로 시체처럼 소파에 푹 퍼져있기도 한다. 이런 나를 너무 잘 알아 남편은 집안일을 탁탁 해 내준다. 마치 슈퍼맨 같이. 잔소리 하나 하지 않고 밀린 빨래며, 청소며 이불빨래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바쁘게 움직이며 집 안을 정리한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자면 나도 갑자기 힘이 나서 따라다니며 집안을 정리하고 밀린 일들을 처리한다. 주말이 되면 피곤할 법도 한데 주말에는 내가 빵꾸 낸 것들을 하느라 더 바쁜 남편이 참 고맙다. 그래서 나도 더 열심히 맛있는 음식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안마도 해 준다.



내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남편

가끔 주말 아침에는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밖을 산책하고 온다. 유모차를 끌고 10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괜히 커피를 픽업해오기도 하고 아파트 주변을 아기를 데리고 빙 돌고 오기도 한다. 아기가 6개월쯤 되었을 때에는 남편이 주말에 지인과 한 약속을 나가면서 아기를 데리고 갔고, 저번 주 어떤 날에는 퇴근 이후에 나보고 쉬고 오라며 저녁 내내 아기를 혼자 봤다. 남편은 나와 아기가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열심히 그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비록 아기를 혼자 케어하는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막 토로하면서 내 위로를 바라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간에 아내에게 고마운 것은 남편이 그런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굳이 육아와 전업주부 일이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남편은 그런 것들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내에게는 더 중요하다. 매일 저녁마다 아기를 재우는 남편은 그 시간 동안 내가 충분히 쉬기를 바란다. 매일 밤 아기를 재우면서 자지 않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고, 그래도 안 자려고 발버둥 치면 화를 내며 쪽쪽이를 던지면서도 항상 밤에는 자신이 아기를 재우려고 한다. 그런 행동들이 평일 오전, 오후에 아기를 돌보는 나에 대한 충분한 격려가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지만 굳이 나누어 정리하자면 위와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남편이 내가 하는 전업주부의 일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해도 해도 티나지 않는 일들이어서 내가 뭘 하고 있지 하고 낙담할때면 남편은 ‘네가 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야.’ 하고 말해준다. 남편이 집에 와서 하는 일이 어떤 일이 되었든, 육아의 어떤 부분을 하려고 하든 간에 나는 남편의 이런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지치지 않고 매일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느낀 고마움을 충분하게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러니까 '미국에서의 외로운 독박 육아' – '남편의 배려/응원이 섞인 말과 행동' – '그것에 대한 나의 고마움 표현' 이 것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아내와 남편이 모두 행복한 상황에서 아기를 키우게 되고, 그렇게 가정이 감사함과 배려로 똘똘 뭉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끔 내가 남편과 우리 가정의 일을 글로 쓸 때면 '육아나 가사는 당연히 남편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 '당연한 것을 해주는 남편에게 왜 고마워해야 하죠?' 하는 식의 글이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2년 차 초보 주부가 생각하기에 가정에서는 부부 사이에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과 그것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 참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가정을 위해 남편과 아내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용기를 주기도 하고 칭찬 섞인 격려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남편의 응원과 배려는 척박한(?) 미국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설거지를 끝낸 남편에게, 삼십 분 만에 아기를 재운 남편에게 더 더 과장하면서 이야기한다. '정말 정말 고마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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