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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Mar 16. 2019

오늘 난 남편을 울렸다.

그것도 여러 번...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모든 하루의 힘을 쓴 것 같다. 오늘은 아기의 정기 검진 날.


우리 부부는 정기 검진 때 항상 함께 병원을 간다. 차로 2-30분 걸리는 거리를 가기엔 내 운전 실력이 아직 한참 미숙하기도 하고, 남편의 회사가 감사하게도 이런 시간을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기도 한다. 


아침 8시 50분에 진료였는데 아기는 이상하게 하필 오늘 새벽 6시 30분 즈음에 일어나서 우리 부부를 깨웠다. 그래서 우리 가족 셋은 모두가 잠이 한-참 부족한 상태로 오늘 하루를 평소보다 일찍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필 오늘따라 왜 아기 기저귀는 샜는지.. 바지가 흠뻑 젖어있었다. 


이제 막 일 년이 된 아기는 요즘 갑자기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울음 몇 번 없어 순하다고 칭찬 들었던 아이인데 역시 아기는 아기인가 보다. 매일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지, 엉엉 울면서 안아주라고 두 손을 번쩍 든다.




어제저녁은 남편이 아기로부터 매몰찬 거절을 맛보았다. 매일 밤,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재우는데 어제는 이리 오라고 해도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엄마인 나에게만 오려고 하고, 그러다가 남편이 아기를 안자 자지러지게 울면서 빠져나오려는 듯이 발버둥을 쳤더랬다. 아니.. 남편 출근 후, 나와 둘이 있을 때엔 본체만체하면서 지겨워하며 짜증 부리는 아기가 왜 어젠 나와 떼어놓으려 치면 그렇게 울었는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정말!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남편을 보니, 아이쿠.. 남편 표정은 더 울상이다. 퇴근할 때면 그렇게 반가워하며 아기를 안고 뽀뽀하는 남편인데,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그렇게 자기 컸다고 사춘기(?) 티를 팍팍 내며 새침하게 굴다니. 아기의 그것은 나라도 충격받을 만한 리액션이었다. 그렇게 겨우 아기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나 싶더니 재우려는 아빠를 쥐어뜯고, 안 자려고 여기저기 방 안을 뽈뽈 돌아다니면서 아빠 속을 한 시간 동안 뒤집어놓고는 결국엔 나와 바통 터치해서 아기를 재웠다. 내가 아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방 밖에서 무언가가 세게 벽을 치는 소리가 정확히 두 번이 들렸다.





병원으로 운전하는 남편의 주먹 끝에 빨간 상처가 있었다. 놀래서 물어보니 어제저녁에 주먹으로 벽을 쳤다고 한다. 원래는 세 번을 치려고 했는데, 두 번째로 벽을 쳤던 때에 너무 아파서 두 번 치고 말았댔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시간에 남편과 작은 말다툼이 있었다. 말다툼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서로가 한 말의 의미를 잘못 오해해서 기분이 상한 것이었다. 둘 다 속으로 넘겼는지 별 말없이 마무리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그런 후 병원 갈 준비를 하던 참에 남편이 말했다.


"아니 왜 불렀는데 두 번이나 대답을 안 하지..?"

그러면서 장난 섞인 눈으로 흘겨본다.


나도 웃으면서

"엇, 못 들었었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왜 삐지지." 하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 다 어느 정도의 장난이 섞여있었다는 것이다. 근데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분위기가 약간, 아주 약간 무겁다. 


그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내가 괜히 먼저 입을 열었다.

"하- 날씨 좋다. 예전에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이런 날 아침에 커피 마시고 했는데..."

여기에서 끝냈었으면 좋았을 텐데 경솔하게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말았다.

"전업주부 증말 못해먹겠어"


분명 장난 반, 진담 반이었지만 분위기가 갑자기 더 가라앉는다. 후.. 이게 아니었는데 너무 말을 쉽게 뱉었다. '아차, ' 하면서 무마시키기 위해 웃으며 다른 말을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남편이 내 미국 생활에 대해서, 전업주부로 지내는 이 삶에 크게 만족하지 않는 것을 마음 아파한다는 것을. 아무리 장난이 섞였어도 이 의미는 남편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그래도 겨우 겨우 말을 섞고 사과를 했다. 그렇게 아기 병원에 도착했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맞아야 할 주사가 많은지. (주사를 양 허벅지에 3대나 맞았다.) 병원에만 오면 어떻게 알고 우는 아기를 못 움직이게 잡은 채 진료받고 주사 맞히느라 우리 둘 다 진땀을 뻘뻘 흘렸다. 거기에다가 심지어 오늘 아기 피도 뽑으랜다.


미국 병원은 피를 뽑거나 어떤 검사를 할 때, Lap corp라는 곳으로 따로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아기를 데리고 그곳을 갔지만 느려 터진(ㅠㅠ) 시스템으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우리 부부. 여기에서부터 남편의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대기자가 많았음에도 천천히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느낌) 자신의 할 일을 모두 하는 간호사가 나도 답답했다. 오전 내내 우는 아기만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겨우겨우 모든 진료를 마치고 오는 중에 스트레스 만땅으로 받은 남편을 다독거리면서 위로의 말을 했다.




 내가 오늘 아침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했고, 남편도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어제저녁부터 기분은 어땠는지 나눴다. 이것이 우리 부부가 다툰 후 화해하는 방식이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상대에게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렇게 화해한다. 아침에 집에서 다퉜을 때를 이야기했고, 차에서 내가 했던 그 문제의 말(전업주부 증말 못해먹겠어)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차 속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편의 눈이 빨개진다. 입가가 떨린다. 그러다가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면서 남편은 이내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여기에서 내가 더 이야기를 하면 남편의 울음이 그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만히 앞을 보면서 남편의 격앙된 감정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한 손으론 휴지를 건네주었다. 창 밖을 보니 오늘따라 날이 참 좋다.


그가 잠잠해지고 난 이후 남편이 말했다. 

"내가 네 삶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내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우리 그냥 한국으로 가던가... 그래야.."

하면서 또다시 울먹인다. 


그래, 내가 그에게 다시 또 상처를 줬다. 이미 미국에 온 후 임신과 출산, 독박 육아로 피폐해졌을 때의 모습을 남편은 이미 알고 속으로 그 미안함을 삼키고 있었는데, 가끔 내가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에 그 상처가 다시 쓰라리고, 다시 깊게 파여 도무지 아물지가 않고 있는 거다. 누가 떠밀어 온 미국도 아닌데, 내가 좋아서 한 결혼에다가 미국행이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남편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감정을 떨치지 않고 있다. 이런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나도 같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내가 더 이 생활에 확실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하여튼 남편의 그것을 알고 있는 나는 말을 가려서 해야 했다. 그냥 가끔씩 육아와 해외생활이 답답해질 때면 훅- 내뱉고 싶어 지는 말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뭔가 모를, 꾹 막힌 마음이 뻥 뚫릴 것만 같은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을 훅- 뱉고 나서 쿨하게 두 손을 툭툭 털고 '그래도 힘내야지!' 하면 괜히 정말 힘이 나는 것 같은 그런 말.


오늘의 그 '문제의' 말이 약간 그런 류였는데, 이것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를 아프게 했다니 참 마음이 아프다. 마음속 깊은데서부터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아기를 다시 잡고 주사 맞히는 한이 있더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일반적으로 부부 사이를 생각하다 보면 남편이 아내에게 상처 주는 것만 부각되곤 한다. 그런데 오늘 오전을 보내고 나서 느꼈다. 아내도 남편에게 너무 쉽게 상처 줄 수 있다는 것. 이게 아내, 남편뿐만이겠나. 가깝게는 언니, 동생, 부모님,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는 말들 하나하나가 참 무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구든, 똑 부러지고 든든한 남편이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찌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매일매일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부부 사이, 가족 사이에는 서로의 약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게 더 쉽다. 


그래서 오늘의 (하루의 반은 망친 것 같은) 이 시간에 이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한다. '발행'을 누르고 나면 거실의 남편에게 뛰어갈 거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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