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삶 Jun 29. 2019

아, 나도 치킨 시켜먹고 싶다.

외국인들은 어떻게 치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어느덧 해외에 나와 산지도 2년이 넘어간다. 때는 2017년 여름. 20대 중반의 나는 내 20대를 거의 함께 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당시의 남자 친구가 해외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내 한국에서의 삶은 멈췄고, 외국에서의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물론 그때 한국의 많은 것들이 그리울 것이라 예상했다. 가족, 친구, 익숙한 거리, 내 나라의 내 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한국인들만의 눈치와 상식. 하지만 왜 그때 몰랐을까. 미국에 가자마자 내 피부에 와 닿은 그리움은 바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꽤 늦은 저녁에 시켜먹는 치킨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자주 치킨을 시켜먹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치킨이란 그것을 포함한 모든 배달 가능한 야식을 말한다. 그게 그토록 귀한(?) 것이었다니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살 때 많이 좀 먹을걸 하는 후회가 든다.


미국에서 내가 살던 곳은 한국인을 포함해서 동양인을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실리콘밸리였다. IT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그곳은 엔지니어, 디자이너의 직업을 가진 동양인들이 유학이나 취업을 통해서 자연스레 모여드는 그런 지역이었다. 그래서 식당, 카페 어느 곳을 가던지 한국인은 꼭 찾아볼 수 있었고, 해외에서 만난 우리 동포! 와 같은 반가움은 별로 없었다. 너무 흔해서.. 어쨌든 그에 따라 한국 마트, 음식점도 참 많았다. 물론 한국에서 먹는 4,5천 원짜리 중국음식이 만원 중반대의 돈을 내고 먹어야 하는 고급 음식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외식비가 비싸긴 하지만 순대국밥, 설렁탕, 경양식 돈가스, 육개장, 최근에는 명랑 핫도그까지 생겨서 한국 부럽지 않은 한국 음식계의 인프라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치킨이었다. 치킨집이 있긴 했지만 한국에서 시켜먹던 1만 8천 원짜리의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그런 치킨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입맛에는). 한국처럼 쉽고 빠른 배달이 있지도 않고, 엄청나게 다양한 소스들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먹던 그 양념의 맛만 재현해낸다고 해도 소원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치킨은 그리운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나는 유럽으로 이사를 왔다. 그것도 유럽에서 비싸다고 소문난 나라, 스위스다. 어렸을 때 여행으로 들렀다가 충격적인 햄버거 가격을 확인하고는 옆 나라 독일을 가기 전까지 쫄쫄 굶었던 기억이 있는 스위스인데, 오랜만에 본 스위스의 물가는 여전했다. 어제는 스타벅스에서 바닐라라테를 먹었는데 8,000원이 넘게 나왔다. 2년 동안 살던 미국에서 바닐라라테는 5,6천 원밖에 안되었는데 이렇게 물가를 체감하면서 거의 매일 충격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그래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외식거리가 있었다. 느끼하고 해비 한 햄버거의 나라니까 그것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들이 있어서 그중에서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끔 정말 귀찮을 때에는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 와서 끼니를 때우곤 했다. 미국의 가성비 좋은 외식은 2,3만 원 내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을 굉장히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간 서브웨이는 미국처럼 친근한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풋롱(12인치) 샌드위치 두 개를 샀는데 한국 돈으로 3만 3천 원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그 절반 가격으로 먹었던 샌드위치였는데. 이상하게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속이 더 쓰린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이런 일상에서 가끔씩 치킨이 문득문득 생각나곤 한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쯤엔 귀찮게 전화하지 않고 앱으로 몇 번 손가락만 왔다 갔다 하면 삼십 분 뒤에 치킨이 내 눈앞에 있곤 했다. 그렇게 언제 찾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일상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바로 치킨이었다고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치킨이 생각난 내가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남편에게 '아- 치킨 먹고 싶다.'라고 지나가는 듯한 말로 중얼거려도, 그가 꽃다발은 사줄 수 있어도 치킨은 사주지 못한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다들 해외생활이 부럽다고 이야기해도 만일 내가 작정하고 치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들도 마침내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미국에서 2년 전에 그랬듯이 나는 아마 조만간 이곳에서 아쉽게라도 치킨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볼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시도하겠지만 실망하겠지. 그러다가 결국엔 미국에서처럼 직접 치킨을 튀길 일도 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는 닭 값이라도 쌌는데 스위스에서 치킨을 직접 만들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것 같다, 실패하지 않도록.


이렇게 해외생활이 깊어갈수록 치킨에 대한 아쉬움은 커지기만 한다.


풍경이라도 감상하며 그리움을 달래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