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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은 Jul 23. 2020

놈과 놈과 놈

한 살 오빠와 일 초 동생, 그리고 나


 나는 위로 한 살 오빠가 있고, 아래로 일 초 동생이 있다. 연년생 삼 남매라 그래도 혀를 차거나 고개를 절레절레할 판에 쌍둥이 포함 삼 남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게 이런 말을 한다. “너희 어머니 진짜 힘드셨겠다...!”, “어렸을 때 진짜 많이 싸웠겠다.”, “그래도 너희는 참 사이가 좋구나?”


 워낙 이런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상황과 기분에 따라 대꾸는 대충 정해져 있다. 어색한 사이일 땐 “맞아요...(쑥스럽게 말 끝을 흐리며 효심 깊은 표정)”라고 한다. 대부분의 질문을 이 대답 하나로 프리패스할 수 있음을 터득했다. 적당히 TMI를 던지는 사이일 땐 “저희는 오빠한테 상대도 안됐죠. 싸운 게 아니라 혼난 거예요.(동생 입장)” “무슨 말이야~ 맨날 너희끼리 편먹었지(오빠 입장)” 서로 진심을 다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마지막. 편할 대로 편한 사이일 땐  “사이 별로 안 좋아요(우리 모두의 입장)”라고 한다. 중고등학생 땐 하하호호. 맞아요. 저희 사이좋아요 라며 뿌듯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우리 대답에도 세월의 때가 많이 묻은 듯하다.     


 우리 셋은 친하다. 그런데 사이가 좋은지 묻는다면 예전처럼 자신 있게 못 말하겠는 건 사실이다. 사이좋다는 말은 상냥하고 배려하고 싸우지도 않는 사이를 두고 써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게 너무 잘 맞아서 물 흐르듯 평화로운 사이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 셋은 좀 시끄럽다. 요즘 따라 더 안 맞는 것 같다. 신기한 건 그렇게 혼연일체인 듯 살아가는 나와 다혜도 오빠와 함께 있을 땐 딱 분리가 된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다혜를 관찰하면서 ‘나랑 성격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 오빠랑 있을 때 그 차이가 부각되는 걸까 고민하다가 오빠의 성격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빠 성격이 드러우...서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고. 비유하자면 지각변동 같은 거다. 지각변동은 지구 내부에 원인이 있어 일어나는 지각의 변형을 말하는 것인데, 지진이나 화산 때문에 일어나는 변형은 급격히 일어나기 때문에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융기하거나 침강한 지반은 관찰하기가 어렵단다.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웠던 걸 다시 끄집어냈더니 머리가 아프다.


 어쨌든 우리 셋은 스무 살 때부터 자취 혹은 군대생활을 하며 1:2로 찢어져 지냈다. 한 빌라에서 살아도 나와 다혜만 한 집, 오빠는 옆집에 살았다. 같은 집에서 서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지막지한 영향을 주고받던 우리가 무려 6년이 넘는 기간을 떨어져 지낸 것이다.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생활하는 패턴, 경험하는 일 모두 달랐다. 그런 중에도 나와 다혜는 여전히 모든 것을 같이 했지만 말이다. 스무 살 이후부터 그래 왔으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다른 가치관과 개성이 자라났을 거였다. 아주 뚜렷한 무늬를 새기면서.


 계속 비슷한 변동을 겪어온 나와 다혜가 오랜만에 오빠를 만나면 지진이나 화산이 일어난다. 비교적 새로운 말투, 새로운 시선, 새로운 가치관이 나와 다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갈라진다. 오빠에게 반응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빠와 있으면 좀 더 까불까불 하고 자존심이 세고 말이 많고 활동적인 사람이 된다. 반면 다혜는 확연하게 느리고 순하고 바보 같고 착해진다.      


 웃긴 건 오빠가 “다혜보다는 다은이가 나랑 성격이 더 맞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게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다시 검사해본 MBTI 결과를 서로 공유하다가 오빠와 다혜 사이를 이어주는 제격의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알게 됐다. 결과를 공개한다. 출처는 나무위키.      


브라더

ENTJ,

논리 분석적으로 계획하고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형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시스터

ISFP.

말없이 다정하고 온화하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겸손하다. (...) 결정력과 추진력이 필요할 때가 많을 것이다.     


ENFP

따뜻하고 정열적이고 활기에 넘치며 재능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온정적이고 창의적이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시도하는 형이다.      


 보이는가? 둘의 유형을 반씩 잘라 붙이면 바로 내 성격이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장점만 쓴 게 아니라 워낙에 ENFP가 장점이 많이 쓰여 있다. 주변에 한 명쯤 있으면 도움이 될 성격유형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딱 중간일 때가 많았다. 오빠의 승부욕이 100이라 친다면, 다혜는 그 옆에서 지면 어때~ 하며 0으로 치닫는다. 오빠가 너무도 체계적인 미래를 그려놔서 나를 놀라게 한다면, 다혜는 아주 소박한 꿈을 얘기하며 나를 놀라게 한다. “너 진짜 그거면 돼...?”라고 내가 물을 정도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고뇌한다. 우리 둘이 너무 느긋하고 무계획적이라 오빠가 저렇게 된 건 아닐까..? 우리 둘이 너무 비판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다혜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 셋이 만나면 시끄럽다. 양 극단과 그 중간에 낀 사람이 만나 고민과 비교와 놀림과 우려와 포기를 우렁차게 주고받기 때문이다. 눈을 질끈 감으며 물 흐르듯 편안하고 싶다... 고 생각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다이나믹한 지각 변동은 삼 남매의 사이가 팔팔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인 듯도 하다. 죽어있다면 이토록 서로에게 리액션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원해지는 여러 어른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우리 셋의 다짐은 더욱 굳세어진다. 우리는 자주 만나서 놀아야만 한다고. 그때마다 주기적으로 MBTI 성격 검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나이를 먹으며 우리가 점차 비슷해질까? 하긴. 여기서 더 달라질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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