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망했어." "엄마, 그럼 망한 거야."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사랑이가 '망했다'는 소리가 잦아졌다. 어디서 배워온 걸까 싶다가 오늘은 잠자리에서 잘 이야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아, 세상에 망한 건 없어. 뭐든 다 다시 시작하면 돼."
"그래도 레고 블럭을 잃어버려서 완성 못하면 망한 거잖아."
"그럼 다른 걸로 다시 만들어보면 되지.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 수도 있잖아."
"그럼, 장난감이 본드에 딱 붙어서 안떨어지믄? 그것도 망한 거잖아."
"그럼 그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고, 또 새로운 장난감을 엄마가 사줄 수도 있잖아."
"사랑아, 엄마가 결혼해서 아기가 안 생겼었다고 했지? 그래서 엄청 슬펐었다고."
"맞아."
"엄마가 그때 '망했다'고 생각했으면, 사랑이랑 손 잡고 이렇게 꼭 껴안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래서 어떻게 했다고 했지?"
"아기를 못 낳아서 속상하면 복지사 선생님한테 가면 돼! 그럼 이런 예쁜 아기를 줘!"
"맞아. 언제든 방법을 찾으면 답이 있을 거야."
"맞아. 방법이 있어."
"엄마가 그래서 복지사 선생님 찾아가서 사랑이를 만난 거잖아. 엄마가 얼마나 기뻤겠어."
"맞아. 그래서 엄마가 덩실덩실 춤을 췄잖아."
"그래, 엄마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랬지. 엄마가 사랑이가 너무 좋아서 춤을 췄지."
"내가 그렇게 좋았어?"
"그럼. 그러니까 망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지 생각해보는 거야. 그럼 엄마가 사랑이를 만난 것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될 일을 만날거야."
나는 사랑이를 꼭 껴안고 흔들었다.
"사랑이는 요새 학교다니는 거 재미있어? 힘들어?"
"힘든데 재미는 있어."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에서 일곱 살까지 보낸 사랑이는 갑자기 친구가 많은 초등학교에 적응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사랑아, 학교 다닌다고 수고가 많아. 대단해, 우리 딸."
"엄마, 엄마도 어릴 때 학교 다닌다고 수고 했어. 어른이 된다고 수고 했어. 지금도 수고하고 있어."
사랑이는 잠들었고, 나는 그렇게 사랑이를 안고 조금 울었다. 내가 이 조그만 아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 상상해보지 않아서. 이렇게 예쁜 말을 해주는 아이가 내 아이라서 너무 감사하다. 나 엄마가 되려고 정말 수고가 많았는데. 사랑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동안의 마음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 입양 이야기를 한가득 풀어낸 뒤로는 글거리가 없어 잠시 연재를 멈췄었어요. 그사이 사랑이는 좀 커서 여덟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입양 관련해 이야기를 더 하게 되면서 이야기거리도 좀 더 생겼고요. 이제 이야기거리가 생길 때마다 짧게라도 올려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