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를 해 본 적 있나요?

행복의 반대말

by 김나율

그날도 여전히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다.
카페라는 게 원래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는 사람이 잘 없다.
특히 인적이 드문 길가에 있는

개인 카페는 더더욱 그렇다.


카페에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이것저것 만들어 시음해보느라

시간이 꽤 빠르게 흘렀다.
그러나 더 이상 레시피 용지를 들여다보며

음료를 제조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오자

손님이 없는 카페는 너무나 무료했다.


보통 손님이 없을 때는

청소를 하거나 재고를 채웠는데,
그것마저도 끝이 나면

카운터 안 쪽 낡은 스툴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래를 따라 스멀스멀 흥얼거렸다.


원래 혼자 놀고, 혼자 먹고,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무료함의 끝을 달리고 있을 무렵

구원자처럼 한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 어서 오세요.

보험회사에 다니는 듯 한 복장에

차가운 표정의 아주머니는

여느 손님들처럼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날이 제법 쌀쌀했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은 약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난생처음 본 사람에게

저렇게 쌀쌀맞게 대할 이유가 있나 싶어

나 역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지만
대답도 하지 않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창 에스프레소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아주머니는 카운터를 떠나지 않고

어디 한번 잘 내리는지 보자는 심상인지
나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 아가씨도 질투해본 적 있어요?

커피머신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나에게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의 아주머니가 보였다.

- 네?
- 아가씨도 누군가를 질투해본 적이 있냐고요.

아니 세상에 질투 한번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나는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전직 질투의 화신이었는데.

- 당연하죠. 첫 남자 친구에게 질투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해요.

아주머니는 본인이 듣고 싶었던 대답이

아니라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 같은 여자한테 질투를 느낀 적은요?

설마 이 아주머니 취향이 그쪽이신가.
이런 사람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정확히

어떤 질투를 말하는 건지 물었고,
다행히도 내가 우려했던 대화는 피할 수 있었다.

- 그러니까 동료에게 느끼는 질투를

말씀하시는 거죠?
제가 아직 사회생활을 오래 해보지 않아서

동료에게 질투를 느낄만한 일은 겪어보지

못했어요.

- 이 나이에 질투를 한다는 게 참 웃기죠.

애까지 있는 아줌마가 질투라니.

그것도 나보다 한참 어린 직원한테.

- 질투하는 데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 그 직원만 생각하면 화가 나고 열이 받는데

이게 질투 맞겠죠?
왜 질투를 하는 걸까요. 내가 봐도 난 한심해요.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나요.
아가씨는 좋겠어요 어려서.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아주머니는 그렇게

커피를 받아 들고나가버렸다.


또다시 적막의 시간이 돌아왔다.
음악소리는 나오지만 사람 소리 없는 카페의 적막.
평소 그 적막 안에서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주머니는 없지만

그녀와 짧게 나눈 대화(대화랄 것도 없이 그녀의 혼잣말)는 여운이 남았다.


뭔가 아쉬웠다.
그녀에게 위로가 될 만한 말이 생각났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뜬금없이 들어왔잖아.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괜히 혼자 심술이 났다.

그리고는 답을 찾고 싶었다.


질투는 왜 하게 되는 걸까.


물론 연인관계에서 피어나는 질투의 감정은

너무 익숙해서 생각할 것도 없다.
직장 동료 간의 질투라.

나보다 공부는 덜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은 잘 나오는 친구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까.
아니면 선생님께 이유 없이 예쁨 받는 학생에게 느꼈던 감정일까.

상황을 상상하고 그때 내 느낌이 어떨지,

어떤 생각이 들지 상상해본 후

동료에게 느끼는 질투는

아마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차별에서 오는 것 같다고 결정했다.


감정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결정했다고 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중학교 선생님이라 자신을 소개하던 아주머니는 어리고 예쁜(이건 내 짐작이다.)
여선생이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다른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칭찬받는 모습을 보며 배가 아파

처음 보는 아가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것 아닐까.

아주머니는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학생들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여선생이 칭송받았다.


그녀는 인정받고자 했던 욕구가 좌절되자

질투라는 감정이 일었을 것이다.

나이 어린 여선생도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인정받고자 했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나이 어린 여선생을 칭송했기에 아주머니는 자신이 차별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질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실제로 그 둘을 차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실제로 차별을 받았다면

아주머니 성격에 카페에 와서

하소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기분 나쁜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은 사라진다.


아주머니는 자신과 성별 이외에 같은 것 없는

나이 어린 여선생과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자신이 자처한 차별이라는 부당한 대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정 욕구에 대한 차별은

사라질 것이고 인정 욕구만 남게 되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인정 욕구는 애착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숨처럼 붙어있는 욕구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남아있던 인정 욕구는 다음을 위해

그 어떠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지만 뭐든지 과한 것은 위험하다.

적당한 인정 욕구만 남겨놓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차이는 인정해버리자.
인정이라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그럴 땐 생각의 치트키를 이용해보자.


주변에 언제나 행복해 보이기만 한 사람, 걱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저 단순히 그 사람도 말 못 할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상상해보자.


가령 배꼽이 두 개이거나 겨드랑이가 무성하다면? 이런 상상으로라도

질투의 대상을 가엽게 여겨보자.
이런 상상을 하는 내가 비참하다면

이 보다 좀 더 멋진 인정을 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내 삶은 내 것이고,

그 어느 것도 나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내 기분, 내 감정, 내 느낌을 소중히 여기고,

나쁜 물에 발을 담지 않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