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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Mar 20. 2022

닭가슴살과 양배추

우량아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는 아주 똥똥한 아기였고, 학교에 가면서부터 똥똥에서 조금씩 통통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인생의 2/3 이상을 다소 통통한 아이로 살아왔고,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는 적당해 보이는 몸이라 위로받으며 살았다.


그러다 호주에서 일 년간 지내며 살이 10kg가량 늘었다. 주식이 밀가루, 고기, 튀김이었고, 단 것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사고로 발목 부상을 당해 운동은 고사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동안 살이 불어버린 것이다. 같이 살던 친구에게 "단미가 살이 좀 찌긴 했지."라는 얘기를 듣게 되면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단미 왜 이렇게 살쪘어?"라는 말을 인사치레로 받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살이 찐 딸이라도 반겨줄 것이라 믿었던 가족들마저 "단미 살이 많이 쪘네? 내 딸 같지가 않아." 하며 쿡쿡 상처를 주었다. 해외에서 지내다 오면 살이 찌는 것이 순리라며 대강 넘겨오던 가족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이 갈수록 뜨거운 가시로 날아와 박혔다. 몸의 변화는 결국 나의 정신적 변질을 불러왔고, 한 달 후, 복학을 앞두고 단기간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살들을 내보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걷기 운동 조치할 수 없던 나는 오로지 식단만으로 살을 빼야 했다. 유명한 다이어트 식단이나 원푸드 다이어트는 귀찮고 질려서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삼시세끼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먹는 것이었다. 다른 음식은 일절 먹지 않는 대신 양념장을 맛있게 만들어 찍어 먹었다. 밥과 반찬은 주말에만 1/3 공기 정도 먹고, 한 달 내내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삶아 먹었다. 가끔 닭가슴살이 너무 질리면 계란을 삶아 먹기도 했다. 영양결핍을 대비하기 위해 비타민과 미네랄, 칼슘 등 영양제도 꼼꼼하게 챙겼다. 가족들의 질타가 아니었다면 그런 끈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정확히 등교 하루 전까지 9kg을 감량했다. 1kg은 호주의 추억이라 여기며 간직하기로 하고, 이전에 입고 다녔던 옷을 그대로 입고 등교했다.


몸에 있던 독소가 빠진 덕인지 우유를 먹으면 허벅지에 살이 붙고, 밀가루를 먹으면 옆구리에 살이 붙던 나는 더 이상 살이 찌지 않는 체질로 바뀌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면서 살이 더 빠지기 시작하더니 별다른 관리 없이 인생 최저의 몸무게인 44kg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임신 후에도 12kg이 쪘다가 퇴원하며 6kg, 조리원 퇴소할 때 6kg을 떼어놓고 나왔다. 나는 십 년 가까이 그때의  몸무게를 유지하며 평생 들어보지 못한 '말랐다'는 단어를 들으며 살고 있다. 사실 나에게는 여전히 '통통한 단미'가 더 익숙하고 친근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나에게 말랐다고 이야기하면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는 닭가슴살과 양배추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다이어트 쉽게 할 수 있다고. 한 달 내내 이 두 가지만 먹으면 된다고. 뚜렷한 목표와 오기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우량아였던 내가 또다시 우량아를 낳아 키우며 근육량이 늘어 몸무게는 결혼 전 보다 몇 kg 증량했지만 나는 나의 몸을 여전히 사랑하고 아낀다. 자랑하는 마음이 모여 나의 몸을, 나아가 목표를 이루고 유지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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