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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콘텐츠가 아무리 탐나더라도

by 단미

2022년 작곡가 겸 가수 유희열 표절 논란이 크게 있었다. 표절 대상이 하필이면 세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이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게다가 곡 하나만 표절 의심을 받은 게 아니라 그 곡을 시작으로 여러 곡이 나오니 의혹은 점점 커졌고 표절이 의심되거나 유사성이 보이는 다른 가수의 곡도 덩달아 쏟아져 나왔다.


표절로 의심받은 많은 곡들이 발표된 때는 안타깝게도 대중가요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다. 이 시기에는 영화 못지않은 스토리를 가진 뮤직비디오도 유행하여 대중의 눈과 귀와 마음까지 행복한 시대였고 덕분에 내 청춘의 낭만도 함께 풍요로워진 때다. 르네상스답게 발라드, 록, 힙합 등 여러 장르가 쏟아져 나왔으며 발표되는 곡마다 새롭고 멋졌다. 그런데 요즘은 그때만큼 다양한 장르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돌 문화가 트렌드인 영향도 있지만 인터넷 발달로 표절을 하면 금방 걸리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많은 음악들의 원곡이 유물처럼 발굴되는 시대에 살다 보니 그런 의견에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원곡과 표절이 의심되는 두 곡을 비교한 영상을 보면 그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데서 그치는 곡도 있고 멜로디 라인과 박자, 사용된 악기까지 판박이인 곡도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비슷할 수 있긴 하지만(이 정도는 유사성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똑같은데도 명백히 표절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의아함이 들기도 한다.




업계라기보다는 개인 영역에 가까운 블로그 세계에도 논란은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글 작성자가 아니라면 '복사해서 붙여 넣기' 기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막혀있기 때문에 베끼기 위해선 일일이 타이핑을 해야 하는데 그런 수고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놀랍게도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구독자를 불러 모아서 수익화에 성공한 블로그 포스팅을 고스란히 베껴가는 것이었다. 남의 블로그를 뭐 하러 베끼나 싶지만 도둑질해가는 포스팅이 주로 주식이나 재테크 관련 내용이고 이 분야는 팔로우를 늘리기 쉽기 때문에 양심 대신 콘텐츠 도둑질을 택한 걸로 보인다.


나도 블로그를 하고 브런치에도 글을 쓰지만 내가 누군가를 표절할까 또는 누군가 나를 표절할까 염려한 적은 없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라는 말이 더 알맞을 것 같다. 내 글이 표절 대상이 될 만큼 근사하지도 않고 돈이 될 만한 유형은 더더욱 아니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내 글을 번번이 가져다 쓴다면? 게다가 그걸로 돈도 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베낀 사람을 무시하거나 싸워야 하는데 무시하자니 내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 계속 침해당할 것 같고, 싸우자니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원작자가 나이며 저 사람이 내 창작물을 도둑질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손해가 났다면 얼만큼인지도 계산해야 하는데 이 힘겨운 싸움을 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문학계는 표절이나 아이디어 도둑질 등 불미스러운 일로 시끄러운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다른 매체에 비해 논란이 덜 알려져서 일 수도 있고 그만큼 표절 시비에서 생길 수 있는 논란 자체가 적어서 일 수도 있다. 어쩌면 돈이 되지 않는 분야라서 표절 시도 자체가 적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문학은 상업화를 덜 지향하는 분야인데다가 베스트셀러 작가 정도 돼야 먹고살만하다고 하니 돈이 되지 않는 글을 굳이 도둑질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같은 텍스트 계열이라 하더라도 영화 대본이나 드라마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도둑질당했다는 기사는 종종 나온다. 영화와 드라마도 돈이 되는 산업임은 말할 것도 없다.




표절 판정은 칼같이 자르기가 어렵다. 저작권 침해 기준이 수학 공식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수준을 표절이라고 할지 합의에 따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운나쁘게,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유사성 짙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표절 여부가 논란이 된다면 판정 여부와 상관없이 진실은 당사자만 알 것이다. 양심 고백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인지. 그런 낮은 확률의 억울함마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창작자 스스로 양심을 지키고 엄격해지려고 애써야 한다.


소설가 장강명은 '표절 공포'라는 글에서 문학계에서 표절 작가라는 꼬리표가 무시무시하다며, "창작자에게 '표절'이라는 낙인은, 그냥 끝장이다. 다음이고 뭐고 없다"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오죽하면 글 제목에 공포라는 단어를 넣었을까. 창작자에게 이 정도로 극한의 경계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표절 공포'는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에 실린 한 꼭지 제목인데, '채널예스'에 같은 주제로 연재한 칼럼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장강명 작가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작가의 말'에 시시콜콜 밝히는 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뜻밖에도 '작가의 말'을 쓰기가 너무 싫어서라지만 스스로 엄격해지려는 마음으로 하는 그런 시도가 마냥 반가울 따름이다. 창작자에게 이런 치열한 경계와 조심성은 많을수록 좋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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