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조카는 일곱살 때 삿포로에서 루돌프를 먹었다. 정확히는 "사슴 스테이크"로 스키장 근처 어느 레스토랑에서다.
조카가 일곱살이던 겨울, 언니네 식구와 우리 가족은 삿포로로 여행을 떠났다. 겨울이면 보드를 타는 우리 부부가 스키든 보드든 배워보라는 꼬임에 언니와 형부, 어린 조카까지 단체로 스키를 배운 첫 해였다.
레슨을 몇 번 받지도 않은 채 떠난 스키여행이지만 괜찮았다. 삿포로는 쌓인 눈을 옆으로 밀어놓은 높이가 2미터가 넘을 정도로 눈이 아주 많이 오는 지역이라 나처럼 자주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스노보드 초보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스키장 가까이 위치한 곳을 고르느라 넓지는 않았지만 운치 있던 통나무집 숙소며 배고플 즈음 뜻밖에 만난 반가운 소바집과 빵집 등 오래 전이라 조각난 기억을 서로 맞추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언니네 가족과 두 번째로 함께 간 스키 여행은 '안도라 공국'이라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로 간 것인데, 이 여행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빠지지 않는 소재가 있다.
에어프랑스가 스키 여행의 핵심이랄 수 있는 스키와 보드가방을 빼놓은 덕에 보상금을 받아 새 스키를 장만한 것(안도라는 면세 국가라 우리나라보다 아주 싼 값에 최신 스키를 살 수 있다), 스키장에서 길을 잃은 언니가 다리에 힘이 풀려 오징어처럼 나동그라진 것, 쇼핑몰에서 조카를 잃어버릴 뻔 한 아슬아슬한 경험 등...
코로나로 해외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국내 여행마저도 갈 수 없던 때, 우리가 만나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곤 함께 다녀온 여행 뿐이었다. 누군가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면 휴대폰에 찍어둔 사진을 꺼내보며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함께 다녀온 여행이 몇 번 되지도 않는데 만날 때마다 이야기해도 새롭고 즐겁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무거운 스키 가방을 끌며 고생하고, 밤마다 컵라면을 끓여먹으며 한국 음식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던 그 모든 일들이 켜켜이 쌓여 우리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묶어준다는 것을, 우리의 만남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코로나가 끝난 지금, 없는 시간을 쪼개고 부족한 돈을 끌어모아 우리는 함께 여행을 다시 다닐 것이다. 그리고 이십 년 쯤 지나 우리가 환갑이 되고 조카가 결혼할 때 즈음엔 훨씬 더 많은 추억이 만들어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