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녀] 표현주의와 리얼리즘의 결합

by dannB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표현주의 영화, 리얼리즘 영화


‘표현주의’의 개념은 회화에서부터 시작한다. 표현주의는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거부하며 추상적인 세계, 내면의 가치에 더 집중하였는데, 이러한 운동은 회화 외 예술, 문학이나 연극, 그리고 영화에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 후 피폐해지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진 독일 사회를 중심으로 수많은 표현주의 영화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 영화들은 현실적 가치를 찾는 것보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우위를 두었으며, 미술에서 나타나는 표현 양식을 수용하여 영화와 회화가 결합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했다. 현실을 감독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라 불리는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 독일>은 마치 만화 같기도 한 기이한 미장센, 음산한 캐릭터 등을 통해 당시 독일 사회와 국민들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나타내어 현재까지도 표현주의 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리얼리즘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과 같은 사실주의 영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사실주의 영화는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겉모습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며, 표현주의와는 다르게 영화적 기술이나 기교에 의한 왜곡을 최소화하여 나타낸다. 실재하는 현실을 미화시키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함과 동시에 카메라라는 기계가 갖는 ‘기록’에 더 의미를 두는 것이다. 여기서 감독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촬영하고, 보여줄 뿐이다. 영화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이는 마치 ‘다큐멘터리’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관객을 카메라와 동일시한다는 점, 영화의 스타일을 배제하고 내용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도 표현주의와 상반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사실주의 양식은 이후 척박한 현대 사회를 보다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네오리얼리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화 <하녀>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가 초현실주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면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표현주의에 가깝다. 컬트 영화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김기영 감독은 표현주의 화법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영상을 만들면서도 인간군상의 현실, 즉 완벽한 표현주의 세계가 아닌 리얼리즘 또한 묘사하고자 했다. 유현목, 신상옥과 함께 한국 영화계의 3대 주자로 알려진 그는 <하녀>를 제외하고도 <화녀>, <충녀> 등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으며 <십 대의 반항>, <초설> 등 전쟁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의 핵심 스토리는 한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이다. 공장에서 직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주인공 동식(김진규)에겐 아내와 다리를 저는 딸, 그리고 아들이 있다. 아내의 몸이 안 좋아져 집안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공장 직원(엄앵란)에게 부탁해 하녀 한 명(이은심)을 집에 들인다. 그러나 동식은 하녀와 바람이 나 그녀를 임신시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하녀에게 낙태를 시킨다. 이후 그녀는 보복하는 것처럼 아들을 죽이고 동식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 듯싶었으나 영화는 사실 모든 것이 주인공의 상상이었다는 반전을 제시하면서 끝이 난다.


<하녀>는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극의 마지막에서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모습과 동식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 가정의 비극이 실은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 픽션임을 깨닫는다. 동시에 관객은 영화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과연 정말 허구의 이야기인가? 이 가족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인지 분간해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그로테스크한 화면,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강한 명암 대비, 날카로운 음향, 공간 등 표현주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들을 사용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특히 영화에서 공간과 사물, 소리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이야기의 큰 흐름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첫 번째로 극의 중간중간 계속 등장하는 쥐는 주인공(동식), 그리고 하녀를 대변한다. 동식이 쥐약을 사 왔을 때부터 영화는 가족의 미래를 예고한다. 이 쥐들은 본능에 충실히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그 결과는 쥐약을 넣은 밥을 먹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처음 하녀가 몽둥이로 때려죽인 쥐는 희생당한 쥐이다. 그러나 쥐약을 먹은 쥐들은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끈 셈이다. <하녀>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가정을 파멸로 몰아간다. 물론 그 결과가 죽음과 가정의 붕괴일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빗소리이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비가 동반하는 천둥과 번개는 앞으로 닥칠 비극을 암시한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어둠 속 드러나는 하녀의 얼굴은 기괴함을 증폭시킨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한정적이고 폐쇄적인 공간도 기이함을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동식의 집은 크게 1층과 2층, 둘을 연결하는 계단, 베란다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계단은 1층과 2층을 연결해 주는 한편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단란한 가정의 모습이 나타나는 시퀀스는 대부분 1층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매우 화목하고 안정적인 대화를 나누지만 실상은 다들 거짓된 안정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2층으로 올라갈수록 인물들은 점점 본능에 가까워진다. 2층은 욕망(진짜), 현실의 공간이다. 베란다를 통해 주인공의 방으로 건너간 하녀가 계급 상승을 꿈꾸고, 여자들이 동식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동식은 유혹을 거부하지 않으며 하녀와 담배를 나눠 피는 공간이다. 1층에 있는 TV와 2층에 있는 피아노는 중산층,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상징한다. 그중에서도 피아노는 주인공의 생계수단이자 체면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피아노를 배우던 공장 직원이 자신의 마음을 보이자 그의 체면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아가 하녀는 아예 아무 건반이나 무작정 눌러대면서 연주를 한다. 동식은 피아노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지만 하녀는 개의치 않는다.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는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조화롭지 않은 사운드를 계속해서 들려주면서 관객의 집중을 깨뜨리고 이 듣기 괴로운 멜로디는 곧 하녀의 심리상태와 직결된다.


이렇듯 그녀는 영화 속 등장인물 중에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하녀는 윤리적인 체면을 중시하지 않으며 자신이 동식의 체면을 무너뜨린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본능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한복을 입은 채 가족의 사회적 계급(부, 재력)을 높이기 위해 밤낮으로 재봉틀을 돌렸던 동식의 아내와 대비를 이룬다. 마지막에 다다른 순간 아내의 선택은 체념이다. 그녀는 약을 먹고 죽어가는 남편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표정하게 재봉틀만을 돌린다. 나 개인적으로는 하녀가 이 가정에 비극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식 역시 마음 깊은 곳에 섹스의 욕망이 있었으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본인보다 낮은 계급인 하녀가 이를 자꾸 건드리자 참지 못하고 표출해 버린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동식은 불륜의 욕구를 품고 있던 존재였다. 다만 그는 그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녀와 잔 사실을 알린 후 불륜을 숨기라는 선배를 욕한 것도 기만에 불과하다. 결국 하녀는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던 가족 구성원들의 실체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비록 그 결과가 파멸이었을지라도.


이는 현대와 전통이 대립하는 시기였던 1960년대를 반영한다. 우선 하녀라는 소재 자체도 그러하고,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직공들과 계급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근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동식의 집으로 들어간 하녀는 가장 낮은 위치였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계급은 전복된다. 종래에는 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하녀의 눈치를 보게 되고 거기에 더 이상 사회의 수직적 구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동식은 영화가 결말에 다다를수록 갈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와 하녀의 대립에서 한 발 빠져 있으며 엔딩에서는 하녀에게 유혹당한 이유에 대해 남자란 원래 그런 존재라며 일갈한다. 그러면서 집에 하녀를 둔 것이 ‘범의 입에 날고기’라 말한다. (왜 저래;라는 반응이 절로 나왔지만) 어쩌면 이런 식으로 본인의 잘못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 역시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희생되는 여성이란 존재를 반영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녀의 존재


하녀는 단순히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낸 존재가 아닌 허례허식을 깨뜨리는 존재이며, 그녀가 가족의 실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은 하녀를 껄끄러워한다. 영화는 처음에 동식에게 연애편지를 전달했던 선영의 죽음(주인공의 도덕적 결백이 깨지기 시작한 순간)에서부터 주인공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하녀라는 존재를 통해 전달한다. 그녀가 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상징적 의미가 짙은 미장센들을 통해 극대화된다.


이처럼 표현주의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간격을 좁히고, 사람들의 논리와 이성을 파괴한다. 인간 내면의 세계에 치중한 이 예술 사조는 외부의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강렬한 감정을 영화라는 매체로 표출하여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의 불안한 심리를 허구의 세계를 통해 승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완벽히 만들어낸 세계가 아니다. 버젓이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다. 감독은 표현주의를 통해 허구의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60년대 한국의 현실을 영화에 빼놓지 않고 담았는데, 이는 즉 환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결합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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