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언제 돈이 되는가

by 현우민

내가 주니어 시스템 안전 엔지니어였을 때였다.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보고서와 노트북이 놓여 있었지만, 내 시선은 그 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몇 주 전만 해도 회의실은 “안전”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공기를 가르듯 한숨이 흘렀다.


“사고는 우리한테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굳이 지금부터 돈을 쓸 필요가 있나요?”


그 말들이 귀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안전 관련 비용은 늘 가장 먼저 줄여야 할 ‘비효율’로 취급되었다. 나는 쉽게 동의하지 못했지만, 예산표와 일정표 앞에서 내 주장은 언제나 ‘비용 상승’이라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렸다.


시간은 흘렀고, 결국 그날이 찾아왔다.


작은 부주의들이 겹쳐 시스템은 멈췄다. 더 정확히는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했다. 치명적인 실패였다. 언론은 몰려들었고, 규제기관에서 끝없이 문서가 날아왔다. 고객사와의 계약은 중단되었으며,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회의에서 “지금은 돈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들이 진짜 비용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 멘토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안전 시스템은 보험과 같아. 사고가 없을 땐 왜 이 돈을 쓰나 싶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모든 걸 지켜내는 유일한 자산이지.”


보험의 본질은 미래의 리스크를 현재로 끌어와 비용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시스템 안전도 다르지 않다. 초기에 보이지 않는 결함을 찾아내고, 설계 단계에서 위험을 흡수해 버리는 것. 이 작은 투자가 미래의 손실을 기하급수적으로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이 원리를 수없이 사례로 보았다. 항공기 개발에서 초기 단계의 FMEA(고장형태영향분석)와 Fault Tree Analysis는 수백억 원의 재설계 비용을 막았다. 원자력 발전소의 PDR(Preliminary Design Review) 단계에서 잡아낸 냉각계통 결함은, 훗날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비극을 다시 겪지 않게 하는 안전망이 되었다. 우주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사체의 작은 배관 용접 불량 하나가 임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해 왔다.


안전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안전은 신뢰의 기반이며, 기업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이다.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한 시스템 위에 서 있는 오늘날, 한 시스템의 붕괴는 조직 내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항공기 사고는 국가의 항공 신뢰를 무너뜨리고, 데이터센터 장애는 수백만 명의 삶을 동시에 흔들며, 원자력 사고는 국경을 넘어 사회 전체를 뒤흔든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안전을 단순히 “비용 항목”으로 보지 않는다. 안전은 미래를 사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설계 단계에서, 일정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PDR과 CDR, DDR 같은 이정표에서 위험을 끈질기게 잡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업이 수십 년 뒤에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나는 보고서의 제목을 바꿔 달았다.


시스템 안전: 미래를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리고 조용히 다짐했다.
나는 안전을 ‘돈을 쓰는 항목’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벌게 하는 구조’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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