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Black Swan)”이라는 말은 한때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진 새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세상에 백조는 모두 하얗다”는 믿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이는 마치 어떤 사실이 수천 번 반복되어도, 단 한 번의 예외가 모든 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17세기말,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호주 대륙에서 실제로 ‘검은 백조’를 발견했을 때, 그 단단한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고 한다. 이후 “블랙 스완”은 세상이 예측하지 못한 사건, 기존의 지식과 통념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현실의 상징이 되었다.
블랙 스완은 단지 희귀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 한계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과거의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만, 진짜 위험과 변화는 언제나 그 ‘패턴 바깥’에서 나타난다. 블랙 스완은 그 순간을 상징한다 우리가 결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며, 그 여파가 세상을 바꾸는 순간. 결국 블랙 스완이 불확실성을 대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가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경제나 경영을 공부하는 사람들, 혹은 안전 분야를 다루는 전문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Uncertainty(불확실성)과 Unknown(미지) 은 같은 말이 아니다. 우리가 ‘불확실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당신은 자연스럽게 Knightian 학파를 만나게 된다. 흥미롭게도 프랭크 나이트(Frank H. Knight)는 ‘리스크(risk)’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기존 학파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누구는 리스크를 측정 가능한 확률의 문제로 보았고, 어떤 이는 그것을 측정조차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본질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렇게 갈라진 길 위에서, 나이트의 제자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오늘날 우리가 ‘불확실성’을 바라보는 사유의 뿌리를 만들었다.
프랭크 나이트는 불확실성(uncertainty)과 위험(risk)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위험(risk)”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대화부터 경제적 논의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경제학적 담론에서는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정밀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불확실성은 이익(profit) 개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이론적 토대가 되며, 위험과 달리 확률적 계산이 불가능한 영역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말한 블랙 스완(Black Swan) 은 완전한 미지(unknown)가 아니다. 나이트의 정의에 따르면, 블랙 스완은 불확실성(uncertainty)의 영역에 속한다. 블랙 스완은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없고, 발생하기 전까지 그 형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고 있다. 즉, 블랙 스완은 “존재를 전혀 모르는 위험(unknown hazard)”이 아니라, 발생 가능성은 인지되지만 확률을 계산할 수 없는 불확실성, 바로 나이트가 말한 Uncertainty다.
결국 프랭크 나이트의 관점에서 블랙 스완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인식 가능한 불확실성, 즉 계산 불가능한 리스크이며, 완전히 알 수 없는 Unknown의 차원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바로 그 인식이, 인간이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보자. 이전에 다뤘던 보잉 737 MAX 사고를 떠올려보면, “Operated as designed, not as intended(설계된 대로 작동했지만, 의도한 대로는 작동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이 말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의 설명이 아니다. 오히려 리스크와 불확실성의 경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보잉의 MCAS 시스템은 설계 명세서대로 작동했다. 센서가 특정 각도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기수를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작동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설계의 ‘의도(intent)’, 즉 인간이 예측했던 운용 환경과 실제 운용 환경의 괴리에 있었다. 설계자는 자신이 통제 가능한 ‘리스크(risk)’의 세계에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성(uncertainty)’의 영역에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 지점이 바로 프랭크 나이트가 말한 불확실성의 본질이다. 위험은 계산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이해만 할 수 있다. 보잉의 엔지니어들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수많은 확률 계산과 테스트를 수행했지만, 인간의 인지적 반응, 조종사의 판단, 그리고 실제 운용 환경에서의 상호작용이라는 불확실성은 끝내 설계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았다.
결국 737 MAX의 비극은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리스크’로 오해한 인간의 사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나이트가 한 세기 전에 경고했던 “계산할 수 없는 리스크 — Uncertainty”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아니다. 탈레브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나이트가 멈춘 자리에서, 그 경계선을 한 걸음 더 넘은 사람이다.
프랭크 나이트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불확실성을 정의했다. 그는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성의 존재만큼은 인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즉, 인간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그래서 나이트의 불확실성은 인간 인식의 틀 안에서 ‘계산 불가능한 위험’으로 머물렀다.
반면 나심 탈레브는 그 틀을 깨뜨렸다. 그는 세상에는 인간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사건이 존재하며, 바로 그런 사건이 역사를 바꾼다고 말했다.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 탈레브가 말한 블랙 스완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사건들”, 즉 Unknown unknowns의 영역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유의 다른 층위에 있다.
나이트가 인간의 ‘인식 가능한 불확실성’을 탐구했다면, 탈레브는 인간이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미지의 불확실성’을 끄집어냈다. 결국 탈레브의 블랙 스완은 나이트의 철학 위에서 자라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만약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그때의 세상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은 언제나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 수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프랭크 나이트가 말한 불확실성은 인간 인식의 한계 속에서, 탈레브가 말한 블랙 스완은 그 한계 바깥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은 세상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으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만 배운다.”
보잉 737 MAX의 사고처럼, 우리는 언제나 ‘설계된 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원하지만, 세상은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간극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실패의 징조가 아니라, 사유의 여백이다. 나이트가 말했듯, 위험은 계산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탈레브가 덧붙였듯, 세상은 그 이해의 바깥에서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예측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도 계속 배워가려는 태도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사고하지 않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는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