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삼월 일일을 보내었다면 전했을 마음들
햇살이 내리쬐는 인왕산 자락
무심히 걷다 계곡 물에 멱을 감았을 것이다
아직 스산한 그늘 아래 얼굴 비추는 햇살 아래
손에 쥔 먹이 잘 들지 않은 연필로
자신의 마음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익숙한 한성 땅을 떠나
먼 타국의 교토에 이르렀을 때는
운명의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담담히 목소리를 내어 되내어 봤을 것이다
육첩방에서 어머니와 별을 헤었을 것이다
시대의 앞자락에 뒤돌아 누어
별 말 없이 속을 삭이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말했을 것이다
짧게 깎인 머리칼보다
스치우는 부끄러움이 더욱 아팠을 것이다
정체 모를 죽음이 자신을 덮치려할 때
동주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동주의 시를 들여다보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자화상에도 담겨 있다
별 헤는 밤에도 담겨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도 담겨 있다
아니, 다시
자화상에도 없다
별 헤는 밤에도 없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도 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그의 마음의
끝내 내어놓지 않았던
눈물이나 아픔 같은 것은
짐짓 알지도 못하는 먼 후손의 이름으론
그의 시도, 그의 마음도 알 길이 없다
오늘도 들 위에는 바람이 불어보고
광장 위에 들불은 고개를 가리우고
마음만이 남아 있는 함성 없는 아우네에도
먼 후손의 마음으론 알지 못한 그날이 있다
그다지도 특별할 것도 없지만
만약 그와 연희동에서 우연히 만나
스무살의 그와 스무살의 내가 이야기할 수 있다면
후손이 아닌 벗으로 만나길 소원한다
알 길 없는 그의 마음을 떠볼 것이다
작은 가베 한잔 대접해볼 것이다
철길을 나란히 걸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 할 것이다
부끄러움이나, 나라나, 어두운 것들 말고
사근거리는 어제 오늘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내가 그의 곁에서 잠시나마
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으련만
어느 흔한 삼월의 꽃샘 추의를 여미며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오늘도 알 길 없는 그의 마음에
자그만한 마음으로 다가서 보려 했겠지
철길의 끝에선
이만 나는 당인동으로 가봐야하겠노라
그는 이만 서촌으로 돌아가보겠노라 했겠지
함께 걸을 수 있어 좋았을 것이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의 봄이 함께였으면 좋으려만하며
다음에 다시 걸을 날을
약속해보고 싶어지는 날이었을 것이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