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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Feb 11. 2018

저항을 슬픈 수채화로 그리다

새벽의 7인 (1975)

영화 [새벽의 7인] (원제: Operation Daybreak, 1975)은 "프라하의 도살꾼"으로 악명 높았던 나치 독일의 보헤미아-모라바 (체코슬로바키아) 보호령 총독 대리였던 하이드리히(Heydrich)의 1942년 암살작전 전후를 그리고 있다. 배경이 된 실제 작전명은 Operation Anthropoid (유인원 작전). 그 흔한 특수효과 없는 옛 영화지만 절제된 영상과 녹록지 않은 연기가 버무려져 알려진 결론을 향해 가면서도 긴장의 끈이 놓이지 않는다. 1942년 유럽의 어두움이 먹먹하게 잘 채색된, 길이 남을 수작이다.


프라하는 지금도 같은 모습이지만, 1970년대의 필름이 표현한 1940년대의 모습은 더 생생하고 더 슬퍼보인다.


* 이후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새벽의 7인]은 저항하는 자들의 결단과 고뇌, 그에 따른 갈등과 아픔이 슬픈 수채화로 그려져 있다. 조국을 유린 중이던 점령군 수장의 암살을 다짐하는 시작 장면은 비장한 각오의 언어로 채워져있다. 그러나 그 상대인 나치 정부의 압도적인 폭압의 힘이 만만치 않다. 저항이라는 것이 종종 그렇다. 저항의 의지를 만들고 유지해줄 대의의 논리 못지않게 저항을 포기하고 주저해야 할 당장의 이유도 늘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치 독일의 힘과 유혹들 앞에서 암살의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지루해진다. 초조하다. 쓸쓸하다. 


이 대원들의 집념은 암살이 가까스로 성공하며 보상받지만, 나치 정부의 보복과 색출 작업으로 새로운 비극이 시작된다. 그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가치는 대의에 바치는 충성일까, 삶에 대한 집착일까... 저항의 의지를 꺾던 당장의 유혹들은 사라지지 않고 암살 이후 시작된 나치의 집요하고 잔혹한 추적 방식에 더 날카로워지고 만다. 결국 사랑하는 가족의 슬픈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던 한 대원이 변절을 하고 만다. 가족의 안위를 보장해달라며 울부짖는 이 대원에 겉으로 분노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동정의 마음도 슬며시 자리 잡게하는 혼란스러운 장면이다. 이제 나치의 보복, 색출, 체포, 고문의 작업에 속도가 붙고 프라하의 거리는 더욱 어두워지고 더욱더 스산해진다.  


(좌) 조지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 1942년 당시 30살, 28살이었다. (우) 영화 속 두 청년의 마지막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의 감정선이 눈빛에 오롯이 담겨있다.


마지막 장면. 나치의 추적을 피해 다니던 가브치크와 쿠비시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이 두 청년 대원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스쳤을까. 말없이 마지막 선택을 내린다. 간결하지만 굵직한 마지막 씬은 이들의 결연한 의지가 품고 있는 애잔함과 무기력함의 감정도 담아내며 형용하기 힘든 먹먹한 낭만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모순적이다. 이들의 삶이 비극적이었지만 빛났고, 절제돼있지만 낭만적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숨 막히게 아름답지만 20세기 우수한 여러 역사 현장이었던 1975년 프라하가 내는 독특한 색감 탓이었을까. 


사실 표현 방법은 부차적이다. 이렇게 그려낸 저항자의 내면에 흐르는 복잡 다면적 감정과 생각의 깊이를 가늠해보는 것이야말로 [새벽의 7인]이 관객들에게 던졌던 숙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뭇 화려했던 저항이지만, 그 이면을 채우고 있는 상처와 슬픔에 얼마나 공감해보려 노력했는가. 스스로 역사가 된 영화 [새벽의 7인]이 저항을 아직도 일차원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묻고 있었다. 


  

Operation Daybreak (1975)






* 2016년 [앤트로포이드]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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