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비상 계엄을 예방하려면
윤석열은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빌런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쓰다 버린 칼잡이었고, 자신들에게 칼을 휘두르던 자와 경쟁할 후보자를 보유하지 못했던 제1야당에 영입되어 얼떨결에 대통령이 되어버린 한국 정치 생태계의 산물이었다.
그의 정치적 성장이 당시 정치 상황이 만든 결과였다면, 그의 정치는 자기 확증 편향의 주술에 걸려 위선의 행위들이 참으로 다양한 논리로 정당화되는 K-정치의 문법에 충실한 그것이었다. 이재명은 달랐을까? 윤석열 행정부에 실망하면서도, 이재명 역시 정파성의 기준으로 전문성을 배척하고, 적폐청산의 이름 아래 보복을 일삼으며, 현란한 사법 기술로 자기(가족)를 보호했을 것이란 나의 냉소는 양비론이라 비난받기도 했다. 내게 윤석열의 정치는 여야가 공유하는 K-정치 스타일을 충실히 반영했을 뿐이었고, 그렇게 그는 21세기 한국 정치판에 있을 법한 그저 그런 대통령으로 남는 듯 했다.
그리고 비상 계엄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맥락에서 한참 벗어난 이 기상천외한 내란행위는 오롯이 윤석열 개인의 작품이다. 그를 시대의 틀에서만 보던 나의 안일함에 경종을 울린 기이한 결단이었다. 그는 형법이 준비해 놓은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가 감당해야 할 형벌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받아야 할 대가에 비할 바 아닐테지만.
이런 블랙 스완의 재발은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비상 계엄을 윤석열 개인의 기이한 일탈 행위로 치부하면 문제는 단순해진다. 그러나 윤석열이 깜짝 등장하여 대통령이 되고, 임기 중에 “절박함”을 느끼게 만든 정치적 맥락을 놓쳐버리게 된다. 이럴 때마다 소환되는 AJP Taylor는 2차대전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정치 현상의 원인을 빌런 개인에게서 찾는 게으른 분석을 경계한 바있다. 히틀러의 생각이 "당대의 정치가들보다 딱히 더 사악하거나 부도덕하지 않았던" 베르사유 체제의 독일이란 시대공간적 맥락을 봐야 유럽이 2차대전의 나락에 빠진 진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정치발 제2, 제3의 초현실적 위기를 막으려면 이러한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100:0의 승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주류가 된 한국 정치의 공간에서는 타자의 악마화가 당연시되고 타협과 양보의 목소리에 배신자 낙인이 찍혀지고 있다. 정치가 정권 획득이 아니면 감옥행이라는 all-or-nothing의 게임이 되어버려 정치에 동원되는 수사와 행동이 계속 과격해진다. 흠이 있더라도 목소리 큰 사람이 중용되며, 그 흠은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런 두 진영 간의 진흙탕 싸움 중에 빌런이 등장하고 성장한다. 또 기괴한 선택을 내리기 시작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윤석열 정권에 쏟아지는 정당한 비난과 별개로, 한국 사회가 제2의 비상 계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윤석열의 등장과 성장 과정 속에 담겨있는 각자의 책임에 대해서 찬찬히 솔직하게 성찰해야한다. 윤석열은 등장부터 몰락의 순간까지 all-or-nothing의 한국 정치가 키운 빌런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