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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Apr 02. 2017

중국의 잊혀진 시작을 찾아서

건국대업 (2009)


영화 [건국대업](2009)은 중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중국공산당의 중원 장악 대서사시를 마무리한 국공내전(1946-1949)의 빛났던 시절을 재구성한다. 영광스런 과거 기억을 통해 현재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을 제고하고 나아가 일당독재 체제를 선전하는 전형적이고 노골적인 정치 프로파간다다. 어느덧 잊힌 항일전쟁(1937-1945)과 국공내전(1946-1949) 승리라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의 재발견은 사회주의의 헤게모니와 그 어필이 옅어지는 오늘날 중국 정권에게 더욱 매력적인 주제로 다가갔을 것이다. 


[건국대업]의 프로파간다는 조롱보다 분석의 필요가 있다. 외국인의 눈에 불편하거나 어색한 몇 장면들을 차치하면, 공산당 과거의 일차원적인 칭송 내러티브가 아닌 미묘하고 다양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49년 10월 1일 천안문에서 중국 건국을 선포하는 마오쩌둥. 왼쪽부터 리지선, 장란, 류샤오치, 마오쩌둥, 주더, 저우언라이, 쑹칭링, 가오강. 


우선 건국 과정의 '민주성'의 반복적 강조다. 중국 사회에서 민주라는 단어가 지니는 민감성 면에서 흥미로운 선택이다. [건국대업]은 전투 장면은 다큐멘터리 식으로 짧게 처리하는 대신 국공내전 중반부터 진행되는 쑹칭링 (宋慶齡, 손문 미망인), 장란 (張瀾, 중국민주정단동맹), 리지선 (李濟深, 국민당 혁명위원회)과 같은 공산당 외부 인물의 섭외 과정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다. 각기 다른 중국을 대표하는 이들은 1949년 공산당의 주더, 가오강, 류샤오치와 함께 중국 정부 초대 부주석으로 추대되는 이들이다. 공산당원이 아니었던 이들의 참여 과정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다양한 정치 조직의 참여로 탄생한 '민주적' 정권임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도 서구식 제도가 유일한 민주의 길이 아니라 외치고 있는 듯 하다. 


두예셩(왼쪽)과 장징궈(오른쪽). 장징궈는 두예성의 아들을 체포하지만 경제개혁/부패척결은 결국 실패한다.


둘째는 장개석의 역할과 위치, 한계에 대한 재해석. 비판적이지만 기계적이지도 단편적이지도 않다. 장개석은 1940년 후반의 국민당 몰락 앞에서 미약하고 무기력하지만, 무능과 부패의 온상인 국민당과는 다소 분리되어있다. 장개석의 아들 장징궈가 상해 경제를 주름잡던 청가의 두예셩(杜月笙)과 외사촌 쿵링캉(孔令侃)를 잡지 못하면서 반부패 운동에 실패하는 장면이 상징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장개석의 결함이 아니라 그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체제의 몰락이라는 것이다. 


장징궈와 장개석. 국민당의 몰락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때문에 장개석과 국민당 씬은 음악도 색감도 어둡고 침울하지만 비난과 힐난의 느낌은 없다. 과거의 영광을 "자신의 손"으로 망쳐버린 이들의 선택과 여정, 그리고 다가올 어두운 미래를 담담히 담고 있을 뿐이다. 그 깨달음 뒤에 따라오는 장개석의 인간적 슬픔과 고뇌를 보듬는다. 적대적이지 않을뿐더러 동정적이기까지 하다. 절제된 장개석 평가를 통해 오늘날 중국의 양안 관계의 회복과 발전 의지를 은연히 내보이고자 하는 것 아닐까.  


그와 대비되는 중국공산당 씬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지만, 미화 장면은 종종 정치 프로파간다의 한계를 들어내고만다. 시종일관 현명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모택동 모습은 둘째치고라도 모택동이 스스로 전후 복구 방안을 고민하던 중 자본가와의 협력을 부르짖는 씬에서는 실소을 금할 길이 없다. 

 

왼쪽부터 류사오치, 런비쓰,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인터내셔널'을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펑더화의, 녜롱전, 시중쉰 (시진핑의 아버지)이 1949년 중국공산당 7기 2중전회에 참석하는 장면.


영화 말미의 주더, 린뱌오, 덩샤오핑, 류샤오치, 펑더화이, 가오강 등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7기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 (7기 2중전회, 1949년 3월) 입장 장면도 그렇다. 장정, 항일전쟁, 국공내전을 거쳐 마침내 중원 통일을 눈앞에 두어서인지 모두들 환한 웃음으로 회의장으로 향한다. 실제 분위기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에게는 건국 이후 불행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다. 마오쩌둥 특유의 편집증적인 집착과 의심에서 비롯되는 반복적 숙청과 대중 운동 덕이다. 권력은 같은 목표를 두고 일제와 국민당을 몰아낸 피를 나눈 혁명 동지들조차 정치 라이벌로 돌변시켰다. 중국의 현재 정치사는 그렇게 비정하다. [건국대업]의 과거 기억이 결국 정치 선전에 머무르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절대 가볍지 않다. 정치 선전이 가릴 수 없는 소재의 묵직함이 있다. 국공내전은 거대한 전쟁의 대서사적 풍경과 소설보다 더 드라마같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배반과 협력, 전투와 정치, 협박과 설득, 전향, 암살, 선전, 정보, 밀정 등등 세상에 알려진 모든 정치 언어와 도구를 퍼부어대며 붙은 이 대국에서의 마지막 한 판은 화려한 내러티브를 남겼다. 반세기가 넘는 혁명과 전쟁 통에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자가 없었다. 짧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사 어느 하나 만만한 삶이 없다. 그런 시대였다.  


영화 말미에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모택동에게 경례하는 한 이름 없는 중국 병사의 모습을 정치 선전의 렌즈가 아닌 그가 겪었을 역사 풍파의 렌즈로 갈아 끼워 볼 때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대국의 20세기 초 역사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렇게 [건국대업]은 20세기 초의 중국 현대사가 특정 세력, 특정 이데올로기가 장악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현대 중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치열하고 역동적이었던 이 역사의 시각화라는 면으로도 [건국대업]이 충분히 매력적인 이유다. 



건국대업 建國大業(2009)



사족같이 덧붙이면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는 우리 수준은 표면적이고 단편적이다. 깊은 이해 없이 짧은 경험으로 구성된 부정확한 틀로 중국을 바라본다. [건국대업]은 정치적 부상 및 경제적 성장에 이은 국내외적 도전 속에서 '잊혀진 시작'을 돌이켜보며 발전과 재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체제가 기억하고자 하는 과거와 거기에 담겨있는 중국인들의 다양한 감정을 옆 나라의 추억팔기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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