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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Jan 08. 2021

이틀 전 문닫은 남영동 펍 레아에 대해 쓴다

용산, 두리반, 한잔의 룰루랄라에 관한 짧은 연대기

이틀 전 문닫은 남영동 펍 레아에 대해 쓴다. 레아는 원래 용산역 맞은편 블록에 위치했다. 경찰진압 중 일어난 화재로 용산4구역 재개발에 반대하던 철거민 등 7명이 사망한 2009년 용산참사 현장 바로 맞은편이기도 하다. 당시 돌아가신 이상림 님과 막내아들 내외와 운영하던 호프가 바로 레아다.


레아 호프는 1993년부터 운영되었다. 거리의 오래된 터줏대감이었지만, 인근의 오래된 세입자와 주민들의 힘 만으로는 행정의 주도로 밀어붙여지는 재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극한의 대립 속에서 여러 목숨이 사그러 들었고, 그러나 사그라든 목숨이 무색하게 그 이후로도 분쟁과 탄압이 이어졌다.


아버지 또는 시아비를 잃은 내외는 용산4구역 재개발을 막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했으며, 자신의 가게를 당시 재개발에 반대해 연대하던 시민, 예술가, 그리고 활동가들의 거점으로 제공했다. 촛불미디어센터, 촛불방송국, 레아 갤러리 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곳을 베이스로 진행되었다.


레아 호프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이후 2010년, 마포구 동교동 삼거리 부근의 재개발에 반대해 농성을 시작한 칼국수집 두리반에도 연대하게 된다. (지금의 애경 AK&홍대와 다이소가 들어선 자리.)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도 그때쯤부터 두루 회자되기 시작했다.


레아가 수제맥주 펍으로 남영동에서 재개장하게 된 것은 2014년, 참사로부터 5년이 지난 후였다. 이상림 님의 아들 이충연 님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로 4년을 복역했다. 용산4구역의 재개발은 막아내질 못했고, 받아낸 얼마 간의 보상으로 새로운 곳에 터전을 꾸렸다. 그리고 다시 6년이 지났다.


동교동 삼거리 근방에 위치했던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는 카레 맛집이자, 많은 이들의 안식처이자, 독립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2019년 건물주가 재건축을 해야겠다며 돌연 나가라고 통보했다. 10여 년 간의 자영업에 이골이 나있던 룰사장 님도 싸우면서까지 카페를 계속 운영하기엔 여력이 없었다.


2010년 인근의 두리반 농성 당시, 물심으로 도운 것이 룰사장이었다. 앞장 서서 티내며 돕진 않았으나, 농성에 지친 활동가나 예술가들이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인쇄 등이 필요할 때는 본인 카페의 인쇄기를 제공했다. 자연스레 농성이 끝난 이후로도 아지트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카페 운영을 그만 두고 팝업 스토어를 연다던지, 공연을 만든다던지, 친환경 페인트 칠한다던지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룰사장 님에게 연락한 것은 두리반의 안종녀 사장이었다. 레아 사장님이 건강이 편찮아 더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가 없어 가게가 나갈 때까지만 맡아달라 했다. 그러하겠다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룰사장님이 레아를 맡아 영업을 시작한 첫 날, 가게가 나갔다. 때문에 레아 X 한 잔의 룰루랄라는 2주 만에 종료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무언가를 주장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다만, 남영동의 조그만 가게 하나가 닫는 일에 불과하지만, 그 가게가 어떻게 열리고 다시 닫히게 되었는 지에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을 꾸려나간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도.


* 지난 8월, 트위터에 썼던 글을 아카이빙을 겸해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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