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넘어가는 밤에는 왠지 잠이 오질 않았다. 짧게나마 병원에 다닐 일이 있어 술을 마시지 않은 탓일 게다. 책을 읽다 새벽이 깊었는데 여전히 말똥말똥해 주섬주섬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겨울을 걸었다. 주로 신정에 제사를 지내왔는데 지난해부터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새해에는 오랜만에 늦게 일어났다.
- 유독 나이 생각을 많이 한 한 해였다. 나 스스로 떠올릴 일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떠올리는 일이 많았다.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보다 노동자로 살아가게 되면서 그런 일이 많아진 것 같다. 나이 먹어서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것은 없다. 대신 나잇값 하면서 살아야지 생각했다. 나잇값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잇값도 못하는 인간이란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 나이 생각을 하다가 이런 걸 만들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anpyunsun/69
-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주었다. (수천이란 숫자가 큰지 작은지 감이 잘 오진 않는다. 다른 것들과 비교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가을부터 했고, 만드는데 도합 2달쯤 걸렸다. 출퇴근하는 길에 사부작사부작 만들었기 때문에. 40곡쯤 코멘트를 써갈 무렵에는 이걸 내가 왜 시작했나 싶었지만 어쨌건 매일 눈곱만큼씩 써서 완성했다. 길면 20년을 넘게 들어온 음악도 있는 탓인지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내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좋아하는 구절을 노트에 꾹꾹 필사해나가듯 플레이리스트를 적어나갔다. 공유해주시는 분들은 어떤 생각일까 어떤 마음일까가 궁금했다. 새로운, 혹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어쨌건 좋은 이야기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직 많은 게 아닐까, 믿어보기로 했다.
- 살면 살수록 팔 수 없는 게 많아진다. 또는 팔 수 있지만 팔기 싫은 게 많아진다. 그런 인간이 브랜딩이니 마케팅이니 아무 말이나 주워 담는 걸 보면 비위도 좋다 싶다.
- '40대부터 경제적 자유' 같은 말들이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어린 세대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는 것 같다. 30대에 자산을 최대한 쌓아 40대부터는 자산소득으로 생활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는 뭐 그런 얘기인 듯싶다. 주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주변의 동료, 친구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는 별도로, 나는 여전히 자산소득이 근로소득을 훨씬 상회하는 사회에 동의할 수 없으며, 경제적 자유라는 말에 걸맞을 정도의 자산을 쌓을 수 있는 이들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힙'이나 '트렌드'가 되는 건 이상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돈 모으는 게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오해할 것만 같지만.)
- 사회가 사회로서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 그러고 보니 나 자랑하고 싶은 거 하나 있다. 출퇴근길에 오며 가며 90퍼센트 이상 모바일 환경에서 오소리웍스 웹페이지 만들었다. 노션 없었으면 어떻게 모바일로 다 만들어! 노션 짱! 노션 너무 좋다. http://osoriworks.kr/
- 노션이 좋은 것은 부가기능이 정말 다양하지만 어쨌건 노트 어플리케이션 베이스고, 때문에 명확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도가 높으면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게 낫다. 같은 이유에서 구글 드라이브도 좋아한다.
- 2020년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 인간이 이리 일을 많이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헸다. 운이 좋다 해야 할지 아니면 꼬였다고 해야 할지, 나란 개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런저런 사업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올랐다. 직장에서의 일도 일이지만 개인으로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덕션 오소리웍스의 일도 밀려들었다. 그 외에도, 마포구의 문화예술정책과 관련된 일이라든지, 서포트하고 있는 콘텐츠 플랫폼의 일이라든지, 여하간 정말 눈 뜰 새도 없이 일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을 못 하거나 큰 빚을 지게 되는 상황에선 배부른 소리겠지만 개인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을 잘해서라기 보다는 거절을 잘 못 해서 일을 많이 하게 되는 케이스다.
- "공공성과 전체주의, 그리고 공리주의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족속들"에 대해 쓰다 지웠다. 나 역시 그런 족속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족속들에 대해, 2020년 내내 생각했다. 그런 족속들 때문에, 2020년 내내 고통받았다. 공공성이란 사회적 투쟁의 장이다. 투쟁 없는 공공성은 존재할 수 없거나, 하찮아진다.
- 누군가 내게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보면 2020년부터는 "음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 답하고 있다.
- 2019년 겨울에 작업해 2020년 1월에 천용성의 싱글, 2월에 밴드 그들이 기획한과 전복들의 싱글을 냈다. 2020년 초부터 작업해 7월과 8월에 각각 전유동의 싱글과 앨범을 냈다. 유동의 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준비해 10월에 후하의 데뷔 싱글을 냈다. (9월에는 부산의 소음발광의 첫 정규 앨범 발매를 서포트했다.) 그리고 11월에도 작업을 하나 했는데 아직 안 나왔고, 1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내년의 발매작 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말이 길어지니 한 번 끊는다) (이렇게 써보니 별로 많이 안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는 것을)
- 천용성의 '중학생'은 내가 지금껏 해온 작업들 중 손꼽힐 만한 곡인데 사람들이 별 관심 없어서 속상했다. https://youtu.be/u70qZgi2nqc
- 그들이 기획한은 완전한 휴업 중이다. 옛날 친구들끼리 즐기자고 만든 밴드인데 상황상 즐길 수가 없으니 휴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2021년에는 두세 번 정도 편한 공연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
- 전복들 생각하면 고창일 씨 사람 좋음과 예민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미소가 떠오른다. 2021년에 발매될 예정인 작업을 레코딩은 이미 해두었다. 레코딩 스튜디오 근처 호텔 1층 빵집에서 먹는 빵과 커피가 이상하게 아련하다. 아마추어리즘을 살리는 동시에 좋은 만듦새로 만드는 건 언제나 너무 어렵다. 나는 전복들이 늘 그 자리에 있는 밴드였으면 한다.
- 전유동은 더 많은 무대를 통해 사람들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올해는 상황상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런 아티스트나 밴드가 한 둘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비단 유동만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로서 오소리웍스는 천용성의 [김일성이 죽던 해]에 이어 두 번째 앨범을 내게 되었다. EP건 앨범이건 뻑적지근하게 작업을 하고 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들이 남는다. 유동은 살면서 만나온 아티스트 중 가장 정직한 사람이다. 그는 순리를 따를 것이다.
- 생각해보니 자랑할 거 하나 더 있다. 이거 내가 직접 찍었다! (돈이 없어서.)
- 후하 레코딩 할 때 한 번 폭발했다. 평생 금관악기를 편곡해 녹음할 일이 없었는데 서른다섯 살 돼서야 녹음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악기의 메커니즘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어떻게 디렉션을 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프리-프로덕션을 오래 가질 수 없던 상황이 있어 레코딩에 대한 준비에서도 허점들이 있었다. 너무 큰 자괴감이 들어 녹음을 잠깐 중단하고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왔다. 막상 완성된 음원은 너무 깔끔해, 그게 좀 웃겼다. 후하의 작업을 한 직후에 썼던 글은 바로 아래 링크에.
https://brunch.co.kr/@danpyunsun/68
- 좋은 연주자들을 많이 만난 2020년이었다. 2019년 만난 수민, 인집과 2020년 만난 재준, 현우, 다진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오래 작업한 이들만 썼지만 잠깐씩 만난 분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2021년에도 새로운 연주자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 같다. 그것이 가장 기대된다.
- 오소리웍스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직장 다니면서 혼자 운영하는 것은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오소리웍스로 버는 돈이 없으니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다. 한계가 있으면 인정하면 되지만 그러기엔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다른 욕심은 별로 없는데 음악 욕심만 너무 많아가지고.
- 원래 스트레스가 많지 않은 편이다. 해서 일은 너무 많지만 다행히 스트레스는 일에 비해 적거나 알아서 잘 푸는 편. 그래도 힘들 때는 선배가 얘기했던 말, "편선, 5년 정도만 고생해. 그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거야."를 떠올린다. 무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마 선배도 잘 모를 테지만, 별 것 아닌 말 같은데 이상하게 계속 기억이 났다. 그리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 그러나 나의 일상적인 헛소리를 들어주던 친구와 동료들이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운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순풍산부인과 같은 2020년 되었다.
- 오래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졌고 2년 만에 본가에 돌아왔다. 가족과 사는 것은 정겹고 괴로운 일이다. 별 일이 다 있었다. 별 일이 다 있어서 다행이었다. 서로를 응원하며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 이제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생겼다.
- 2020년 2월에 업로드했던 '2019년에 알게 된 것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https://brunch.co.kr/@danpyunsun/62
- 2020년의 인디팝은 김제형의 남겨진 감정.
- 2020년의 인디록은 다브다의 여름놀이.
- 2020년의 한국영화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2020년의 해외영화는 두 교황. (2019년 연말에 개봉했지만 내가 2020년에 보았으므로.)
- 그리고 2020년 가장 하이텐션의 순간은 연남에 뮤직페스타에서 다브다 공연할 때. 아직도 그때만 떠올리면 닭살이 돋는다. 아! 라이브 보고 싶다!
- 이제는 더 이상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는다. 잘못된 꿈도 꾸지 않는다.
- 2021년의 개인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없다. 서른여섯인 주제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도 모르면 어떡하지. 하지만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하고. 서른 해가 넘도록 몰랐던 것을 어떻게 갑자기 알게 되겠는가.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내 주변도 몰랐으면 좋겠다. 그래야 지금처럼 바보 같이 살아도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