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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Oct 24. 2020

적당히 열화된 채로 올라온 음원을 들을 때야 비로소

후하의 데뷔 싱글을 발표하며



진영을 먼저 알았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 우연히 만나 그 뒤로도 간간이 보았다. 도를 아십니까, 스럽긴 하지만 기운이 맑은 사람이었다. 음악은 나중에 들었다. 역시 소박하고 맑은 음악이었다. 용성과 유동, 창일 등에게 들려주고선, 오소리웍스에서 함께 일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모두 좋아했다. 그러나 당시엔 유동의 정규앨범을 한창 준비하던 때라 괜한 욕심부려 일을 그르치지 말자, 경거망동 하지 말자란 생각으로 마음을 접었다. 언젠가는 같이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간직한 채.

진영에게 연락이 왔다. 유동과의 작업이 후반부로 접어들 때였다. 새로 듀오를 시작했는데 함께 하고 싶다 했다. 데모가, 진영이 그간 해오던 음악과는 상당히 달랐으나, 매력적이었다. 한 번 만나자고 했다. 합정의 오뎅집(오뎅탕을 제외한 모든 메뉴가 맛있는 집이다)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지고는 처음 만났다.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말하기론, 지고는 내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고 그 자리에 나왔었다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보라매의 옥탑방에서 우리는 주로 모였다. ‘ㅎ’으로 시작하는 노래로 데뷔하는 것으로 협의했다. 발매일을 미리 잡아두었다. 슬슬 레코딩을 준비하려고 하는 시점이 되어 후하는 변덕을 부렸다. 생각해보니 ‘ㅎ’이 가을스러운 느낌이 아니라서 ‘Dance Dance Dance’와 ‘사랑의 주문’ 두 곡의 싱글을 내는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발매까지는 두 달 쯤 남은 시점이었던 탓에, 계획이 틀어지긴 하겠지만 작업할 시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곡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Dance Dance Dance’는 메인 프레이즈만 완성되어 있었고, ‘사랑의 주문’은 꼴은 갖추고 있었지만 어떤 파트는 매우 좋고 어떤 파트는 긴가민가 싶었다. 속도를 내서 빨리 다시 작업합시다! 그러곤 한 2-3주 정도? 지옥이 시작되었다. 없던 멜로디를 붙이고, 폐기하고, 다시 붙이고, 폐기하고, 구성을 갈아엎고 ,,, 발매일을 고려할 때, 모든 레코딩이 추석이 끝나기 전에는 완료되어 있어야 했다. 추석이 시작하기 직전에야 곡들의 최종 데모가 나왔다.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레코딩은 비교적 수월했으나 브라스 녹음에서 마가 떴다. 한 번도 브라스를 직접 녹음해본 적이 없어 금관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았다. 어느 정도의 사운드가 적당한지, 어떤 느낌의 연주가 좋은지 감이 오질 않았다. 연주자들이 잘 준비해오지 않았다면 녹음을 망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연주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또 아쉬웠던 것은, 내가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가 아닌 탓에 기타톤 메이킹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색채감 있는 톤들을 써보았으면 좋았을 걸 싶은 마음이 나중에서야 들었다. (그래서 오소리웍스로 약간이라도 헤비한 음악 작업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죄송하지만 거절한다.) 역시 경험치가 깡패다. 결국은 또 공부할 것 천지다.

(요새는 다음 작업에 써야해서 목관을 공부하고 있다.)

(2회차로 진행된 녹음 중에서, 마지막 날 한 밤 9-10시 쯤 되니까 뭔가 돌아버릴 것 같아서 잠깐 모든 작업을 모두 중지시키고 밖에 나가 담배를 죽죽 피웠다. 이번 작업 왜 이렇게 힘들지? 라고 생각한 순간 그간의 다른 작업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아 ,,, 다른 작업도 개 힘들었지 ,,, 하면서 현타 끝내고 다시 와서 녹음 시작함.)

무언가 호다다닥 해버린 뒤 정신을 차려보니 발매가 되어있다. 왠지 모르게 나는, 믹싱 마스터링 돈 시간 체력 왕창 쓴 주제에, 내가 쓰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적당히 열화된 채로 올라온 음원을 들을 때야 비로소 무언가 ‘상품’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원을 들으며, 왠지 나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게 아마 내가 일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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