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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Jun 29. 2021

2021년 상반기 마음에 남은 음악들

이설아, 해서웨이, 사공, 김일두, 이주영, 박기훈, 슬랜트, 보수동쿨러

제목 그대로 2021년 상반기 마음에 남은 음악들에 대해 적어둔다. 적어두질 않으면 다 까먹어버리는 사람이라서. 원래는 잊어버린 만큼 채우면 된다며 아까워하질 않았다. 이제는 채울 일이 적어지더라. 적어지는 게 아깝고 아쉽다. 아쉬움이 많아지는 게 싫진 않다.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서히 싫지도 좋지도 않게 흘려보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할 것이다.


'마음에 남은'이라고 써두곤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에 남는다는 것은 뭘까' 생각했다. 너무 가까운 친구들의 음악을 글까지 써가며 남기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인 것 같기도 해 많은 음악들을 생략했다. 남은 것들에 대해 썼다.


이설아 - 집28(from [더 궁금할 게 없는 세상에서])


설아 씨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따스함과 서늘함, 기쁨과 애처로움을 함께 묻어나기 때문이다. 촘촘한 결을 따라 많은 마음들이 오간다. 처음 좋아했던 노래는 '그냥 있자'였다. '있지'라는 노래도 있지. "이"라는 발음이 들어간다. '집28'에서도 "우리 이렇게 웃고", "지금 이대로 그냥"이란 식으로 "이"라는 발음이 운율을 주도하는 포인트가 있다. 돌아보면 좋아했던 설아 씨의 노래엔 "이"라는 발음이 음악적으로 좋은 흐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한숨 같기도, 경탄 같기도 한 소리다. 차분한 연주 중, 니나 시몬의 어떤 곡들을 떠올리게 하는 재지한 피아노가 아주 짧게 틀어주는 것도 환상적이다.


해서웨이 - 낙서(@네이버 온스테이지)


3인조가 만드는 사운드의 심플함을 좋아한다. 해서웨이는 근래 들은 3인조 중 가장 세련된 인디록 / 인디팝을 구사하고 있는 밴드. 첫인상은 세련되었지만 듣다 보면 전통적인 인디팝의 어법에 충실하다. '클래식'하다는 점 때문에 더 좋다.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좋은 밸런스가 계속 마음을 간질인다. (그리고 기타에서 참 맛있는 소리가 난다. 맛있는 소리가 나는 기타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올해 발매될 EP에는 더 멋진 곡들이 많다는 소식을 어딘가에서 줏어들었다.


사공 - 알면서도(single)


올해 2월 첫 정규 앨범을 냈고 봄에 연이어 싱글을 냈다. ('알면서도'는 봄에 낸 싱글.) 정규 앨범은 멋드러졌다. 고색창연함이 묻어나는 멜로트론과 '선샤인 팝'스러운 기타 사운드, 그리고 지적인 멜로디 라인이 흥건한 사이키델릭 무드를 연출한다. 앨범이 멋드러졌다면 '알면서도'는 건들건들한 인디팝이다.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취향으로, 건들건들한 인디팝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러 허술하게 옛 홍콩영화를 (비꼬아) 재현한 비디오도 완벽하다. 이것 또한 신선놀음의 일종 아닐까.


김일두 - 일곱박자 from [새계절]


'일곱박자'는 일두형의 옛 음반 [곱고 맑은 영혼]에 실려있던 노래다. 그 곡을 다시 불렀다. 두루흥업의 김종민이 피아노를 쳤다. (김종민 님은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옛날 가요들처럼 들리는 새로운 노래들도 좋은데, '일곱박자'가 너무 좋았다. 어디에선가 파도가 몰려오고, 다시 쓸려가는 그림이 그려진다. 살짝 로파이하게 믹스된 보컬이 애상적인 사이키델릭함을 만든다. 무슨 노래를 이렇게 했어요, 눈물나게. 만나면 그렇게 묻고 싶다.


이주영 - 눈이 내린다(feat. 이아립)(single)


"안녕 오랜만이야"라고 노래가 말을 건내는 순간 반해버렸다. 전혀 발라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발라드를 원래 싫어한다기 보다는 좋은 발라드를 만나기가 어려워서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인디 발라드'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건 지난 앨범의 '나도'도, 이번의 '눈이 내린다'도 아름다운 발라드. 멜로디와 가사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고일 것만 같다. (눈물이 고이는 건 좋은 일이다. 때로는 눈물 나올 계기가 필요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박기훈 - 라이너 노트 from [어설픈 응원가]


2021년에는 사적인, 공적인 이유로 목관에 관심이 많아졌고 덕분에 이것저것 찾고 듣고 보고 많이 했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연주자가 박기훈.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mangwon_for_garlic 인 탓에 처음에는 "안녕하세요, 망포갈 님"이라고 인사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정규 음반이다. 기훈 씨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만난 여러 음악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마음 속 갤러리에 깔끔하게 전시해둔 인상의 앨범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앨범의 스타트를 알리는 '라이너 노트'. 직관적인 맑음과 아름다움을 지닌 곡이다.


보수동쿨러 - 구름이(live)


싱어가 교체되기 전의 보수동쿨러를 들으면서는, 세련된 요새 록 음악―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옛 사이키델릭을 재현하고자 하는 요새 젊은이들이 하는 음악―같지만 어느 정도는 '가요'로 수렴되는 부분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가요 특유의 '천박함'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민지 님이 새롭게 밴드에 가입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센터'의 역할을 전담하는 멤버가 없어졌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심플한 사운드지만 보컬을 포함해, 모든 악기들이 자기의 자리에서 필요한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 부분들이 더 잘 들리게 되고 있다. (특히 기타로 연주하는 선율의 아름다움이 더욱 잘 들린다. 그런데 마지막 아웃트로에선 왠지 엑스재팬의 'Endless Rain'이 잠깐 스쳐지나가. 그게 더 좋았기에 적어둔다.)


슬랜트 [1집]


전체라봐야 20분도 채 안 되는 펑크록 앨범인 탓에 어떤 한 곡을 뽑는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한국 D.I.Y. 펑크록 씬을 이끌어가는 여러 주체들이 함꼐 모여 만든 밴드 슬랜트의 '1집'. 좋은 하드코어 펑크 앨범들이 그러하듯, 무슨 어마어마한 시도가 있다기 보다는 펑크록의 '본질'에 매우 충실하다. 이리저리 재볼 것 없이 매우 직선적인 소리들로 가득 차있다. 말로 야부리 터는 것 없이 그냥 이거다, 하고 콱 내질러버린다.


Benny Sings - Nobody's Fault from [Music]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영어로 된 노래(라고 애플뮤직이 알려주었다). 베니 싱스 좋다는 이야기를 나까지 더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여하간 밸런스는 언제나 기가 막히다. (이 정도면 거의 교과서 아닌지.) 뮤직비디오도 돈 안 들이고 찍은 느낌인 게 좋았다. (물론 아마 생각보단 상당히 들였을 것이지만.) 중간에 베니 싱스 춤추는 씬 보면서 '햐, 나도 마흔 넘어서 저렇게 막춤 춰도 안 이상해보여야 할텐데' 같은 쓸데 없는 걱정이나 하고 말야.


Floating Points, Pharoah Sanders &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Promises]


플로팅 포인츠의 지난 앨범([Crush]) 들으면서도 '와, 이게 되나?' 싶었는데 이번 작업은 약간 아득해지는 느낌이랄까. 약간 어처구니 없을 정도다. '어마어마해'라는 측면에선 올해 이 앨범을 능가하는 뭔가가 나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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