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의 옛 이야기와 포스트-유토피아 시대의 음악만세

중국의 매거진 <진화하는 귀(進化耳朵)>와의 인터뷰

by 단편선

중국의 매거진 <진화하는 귀(進化耳朵)>의 필진인 Duo Han(夺铎堕)과의 인터뷰다. 단편선 순간들의 앨범 [음악만세]의 리패키지 버전인 중국 특별판이 발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 2026년 2월,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다. Duo Han이 표준 중국어로 질문하고 내가(=단편선이) 한국어로 답헸다. 원고는 순간들의 멤버들도 함께 검토했고, 가장 마지막 질문에는 모두가 함께 답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에이전시인 Fake Dream Aerea; FDA가 큰 수고를 해주었다.


중국어 버전은 다음의 링크에서 체크할 수 있다. https://mp.weixin.qq.com/s/UDC-BQAnvnq8lMbmzDAizg


Duo Han도 인터뷰 본문에 앞서 붙인 서두에서 밝히고 있지만,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것은 내게는 유래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단편선 순간들은 물론, 내가 단편선으로서 해왔던 여러 일들에 관한 아주 긴 역사를 다뤄야만 했고, 그 중에서는 논쟁적인 의견들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운 나머지 솔직히 말하자면 '대충 뭉개고 넘어갈까?'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건 인터뷰어나 이를 읽게 될 리스너들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아 지금의 내 생각이나 판단을 가능한 성실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또, 중국의 리스너들이 한국의 인디씬에 (아무래도 한국인에 비해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맥락 또한 가능한 간결하면서도 세세하게 포함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사람의 버전으로 정리한 맥락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박 시 니 말이 맞음"으로 깔끔히 갈음하고자 한다.)


중국의 리스너들을 위한 인터뷰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앨범을 냈던 2012년과 현재는 10년이 훌쩍 넘는 차이가 있고, 현재 한국의 젊은 리스너들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와 내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고 자라오던 세계 역시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나 역사를 좇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고, 그런 이들에게 '경험해온 사람'으로서 응당 제공해야할 텍스트를 제공하고자 이 인터뷰를 한국어 버전으로도 공개한다.


이하 인터뷰 본문.


image.png 중국어 페이지의 인트로

서문:


먼저, 이 밴드의 이름은 단편선 순간들(Danpyunsun & The Moments Ensemble)이다.


한국 서울 출신의 전위적인 팝/록 밴드다. 이 글은 그 창립자 단편선(Danpyunsun)과의 인터뷰로, 주로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질문을 전개한다:

단편선의 음악 인생에서 개인사와 사회운동이 교차하는 지점

단편선 순간들의 앨범 [음악만세]

프로듀서로서 단편선이 바라보는 한국 음악 산업


인터뷰 기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단편선의 음악이 결코 단순하고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들의 작품을 듣고, 펜타포트 음악 페스티벌에서의 공연 영상을 찾아봤다. 이후 [음악만세 Extended·중국 특별판]이 공개되자, 나는 노트에 흩어져 적어뒀던 질문들을 정리했고, 그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주제들을 어떻게 정면으로 마주할지 기대하게 되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단편선은 "지금껏 해본 서면 인터뷰 중 가장 힘든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질문의 실마리를 풀어가며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가능한 한 온전하게 써 내려갔다. 나는 그의 음악과 글 모두에서 거대한 "명료함" 같은 것을 포착했다. 이런 순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 싶었다—이른바 창작자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명료함에 도달하거나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이 인터뷰는 약 만 자 분량의 글이 되었다. 중국에 아직 폭넓은 청중을 갖지 못한 밴드에게, 이것이 영리한 "자기 홍보 수단"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인디 음악, 음악인들의 자조직(自組織), 그리고 예술이 사회적 의제에 참여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Duo Han)


Part.1 시작점과 궤적——개인사와 사회사가 겹쳐지는 이미지


1. 《音乐万岁》像一段植物般的电影,整体的作品当然作为树木直立于土地,但根系和叶脉每时每刻都在朝不同方向生长。聆听过程加深了我对“音乐项目”和“乐队”的思考——在过去的采访中,你提到组建“瞬间们”是对传统摇滚乐队“成长叙事”的拒绝,并发现“成年人的友情”是一种更持久、能互相支撑的力量。这与早年参与“自立音乐生产组合”那种基于共同社会理想和直接行动的集体联结相比,在组织形式和情感内核上有什么根本的不同?


「음악 만세」는 마치 식물처럼 자라나는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앨범 전체는 나무처럼 땅 위에 곧게 서 있지만, 그 뿌리와 잎맥은 매 순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앨범을 듣는 과정에서 저는 ‘음악 프로젝트’와 ‘밴드’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단편선 순간들’을 결성한 것이 전통적인 록 밴드의 성장 서사를 거부하는 선택이었으며, 동시에 ‘어른의 우정’이야말로 더 오래 지속되고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 그렇다면 과거에 참여하셨던 ‘자립음악생산조합’처럼, 공동의 사회적 이상과 직접적인 실천을 바탕으로 한 집단적 연대와 비교했을 때, ‘단편선 순간들’이라는 집합체는 조직의 형태나 정서적 핵심 면에서 어떤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아마도 저(단편선)의 나이 아닐까요. (웃음)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시작할 때는 2010년이었고, 그때 저는 스물넷이었습니다. 단편선 순간들은 2024년, 제 나이 서른여덟에 시작되었고요.


그 외에도 다른 점이 많습니다. 단편선 순간들은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고, 공연을 하는 밴드입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 D.I.Y. 정신에 기반한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의 네트워크이자 협동조합이었습니다. 목적과 형태가 모두 다르니 1:1로 대응시키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조직에 대해 제가 느끼는 감정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국의 독자분들께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이 매우 생경할 텐데요. 한국에서도 약간의 화제가 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언더그라운드 씬 내부의 일이었던 탓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직은 아닙니다. 그래서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한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널리 회자되었는데요. 거리 공간의 상업화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이나 예술가들이 밀려나고, 임대료(rent)가 급격히 오르는 문제가 큰 이슈였습니다. 한국 인디씬의 주요 스팟 중 하나인 ‘홍대앞’은 예술가들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울의 큰 상권이기도 해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오래 사랑받아온 칼국수집 ‘두리반’이 강제 철거를 당했고, 두리반의 주인이 철거 이후 설치된 펜스를 뜯고 다시 들어가 농성을 시작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홍대앞의 예술가들을 포함해 많은 동네 사람들이 두리반을 돕겠다고 나섰고, 그 과정에서 ‘51+’라는 큰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수십 팀의 밴드가 참여하고, 수천 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https://youtu.be/oIQijpvIvHs?si=Fw8sLRw2bR7R52J2

두리반 농성과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다룬 다큐멘터리 <파티 51>의 예고편.


보통 음악가나 예술가들은 그렇게 대규모로 잘 모이는 편이 아닌데, 우리에게도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인 김에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음악가들의 자조적(self-help)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그것이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그 조직의 주요 활동가 중 한 사람이었고요.


우리는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많은 언더그라운드 공연을 만들고 축제를 열었고, D.I.Y. 음반 제작 등에 관한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한 소액 대출 사업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우리가 하던 일은 가치 있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너무 어렸고, 조직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능력도 경험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갈등을 좋은 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잘 몰랐고요. 여러 난점이 겹치면서 결국 조직은 와해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이상과 현실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더라도 지속할 수 없다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이라도 목적을 위해 감당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지금 밴드의 운영 방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자립음악생산조합의 활동가 중 한 사람이었던 장성건(from 밤섬해적단)의 조합에 관한 인터뷰.

2. 你的青少年时期(90年代末至21世纪初)恰逢韩国经历IMF金融危机、民主化深化、互联网兴起以及“弘大独立音乐场景”的黄金期。Crying Nut、No Brain、姐妹理发馆的音乐,以及《TTL》、《Na》这类亚文化杂志,是如何塑造了你对“音乐”与“反抗”的最初认知?那个时代的“独立精神”对当时的你而言意味着什么?


단편선 님의 청소년기였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는, 한국 사회가 IMF 금융위기와 민주화의 심화, 인터넷의 확산, 그리고 이른바 ‘홍대 인디 음악 신’의 전성기를 동시에 겪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Crying Nut, No Brain,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 그리고 「TTL」, 「Na」와 같은 서브컬처 잡지들은 단편선 님에게 ‘음악’과 ‘저항’에 대한 초기 인식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그 시기에 체감하셨던 ‘독립 정신’은 당시의 단편선 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고백하자면, 제게 그것은 하나의 ‘이상향’ 같은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제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죠.


저는 중국의 10대가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잘 모릅니다. 아마 사는 지역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요. 제가 10대를 보낸 곳은 과도하게 교육열이 높은 부촌이면서도, 외곽에는 가난한 가정도 많은 복합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지만 아주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고, 틈만 나면 오락실에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쏘다니곤 했습니다. 책을 읽거나 공상에 빠져 있는 시간도 길었고, 게임이나 만화 같은 서브컬처의 세계관에 깊이 몰입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채널에서 노브레인의 〈청춘 98〉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전에 보던 것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훨씬 거칠고 에너제틱했습니다. 무언가 머리를 ‘탁!’ 치는 느낌이었죠. 그 이후로 인터넷을 통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어느새 동네 음반 가게를 들락날락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살아가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왁자지껄하고, 남들과 다른 ‘이상함’이 오히려 ‘멋있음’이 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그 세계가 존재하는 곳, 즉 ‘홍대앞’으로 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몇 차례 학교를 자퇴하고 밴드를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번번이 설득에 실패했고,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치른 뒤에야 본격적으로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고, 이제 저는 ‘그런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비슷한 면은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낭만적이거나 ‘블링블링한’ 세계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생활인’의 감각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자유’, ‘평등’, ‘관용’의 정신은 여전히 홍대앞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그 감각을 바탕으로 사랑하고, 우정을 쌓고, 각자의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도 제 마음의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从退伍后参与“龙山惨案”现场活动、运营“自立音乐会”支持Duriban拆迁抗争,到创立“自立音乐生产组合”,这一系列将音乐与直接社会行动结合的经历,在多大程度上定义了你早期创作(如《百年》)的底色?如今的世界似乎人们越来越难以想象变革了,你认为音乐的力量在何处?


단편선 님은 제대 이후 용산참사 현장 활동에 참여하고, 홍대 두리반 철거 분쟁을 지원하기 위해 ‘자립음악회’를 운영하셨으며, 이후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설립하신 바 있습니다. 이처럼 음악을 직접적인 사회적 실천과 결합해 온 경험들은, 초기 작품들—예를 들어 「백년」과 같은 곡의 정서적 결이나 문제의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사회적 변화를 상상하는 일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시대 속에서, 단편선 님이 생각하시는 음악의 힘은 과연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칼국수집 두리반에 관해 조금 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와 음악가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농성을 시작한 두리반에서 이 이슈를 널리 알리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요일별 프로그램을 기획해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저와 젊은 음악가들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자립음악회>를 맡았습니다.


한국의 농성이나 집회 현장에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일은 흔합니다. 다만 한 가지 크게 달랐던 점은, 대개의 현장에서 ‘민중가요’가 불리는 것과 달리, 저희의 관심사는 급진적인 펑크록, 하드코어, 아방가르드, 인디록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립음악’이라는 슬로건을 처음 제안한 한받(Hahn Vad, a.k.a. 아마츄어증폭기, 야마가타 트윅스터) 역시 아방가르드한 인디 포크와 댄스 뮤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함께 모인 음악가들 또한 대체로 젊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극단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두리반의 주인 내외 중 한 분이 소설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덕분에 젊은 음악가들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보통의 현장에서는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음악을 선곡해달라’거나 ‘누구나 알 만한 곡을 연주해달라’는 식의 디렉션이 있지만, 두리반에서는 그런 간섭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 또한 관객의 일원으로서 굉음을 즐기곤 했습니다.)


두리반의 농성은 531일간 이어졌고, 우리는 매우 실험적인 공연들을 펼쳤습니다. 이후에도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운영하던 클럽 대공분실(DGBS), 자립본부 등의 공간에서 실험적인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압축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대개 음악가들은 음악가들끼리 만나게 되지만, 저는 그 시기를 통해 훨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인간 군상을 경험했고, 각기 다른 서사와 접했습니다. 음악 활동을 통해서는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장면들—예컨대 강제 철거를 위해 고용된 인력과 물리적으로 충돌해야 했던 상황—도 직접 겪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제 삶에 깊이 남아 있고, 제 삶의 일부가 음악이 되는 만큼 당연히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종종 ‘음악은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악이 직접적으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민중가요’를 만들지 않습니다. 민중가요는 특정한 집단을 고취하거나 결집시키는 목적을 지니는 경우가 많고, 저는 그것이 매우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하는 곡도 많습니다. 다만 그것을 만드는 일이 제 역할이라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대신 제가 생각하는 음악의 역할은,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잠시라도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어떤 아름다움에 대해, 시간의 흐름에 대해, 우리의 미적 감각과 사회적 감각에 대해 곱씹어보는 시간 말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자문하는 일과 닿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름다움’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자본이나 권력보다 인간성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급진적인 변화를 직접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저는 우리 일의 본질이 그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Part.2 「음악 만세」— 한 시대의 우화


4. 专辑被描述为“一个从被水淹没开始、最终步入火海的故事”。这个描述有着浓厚的神话色彩,它对你而言意味着什么?是与韩国社会某种集体情绪的对话吗?


라이너 노트에 따르면, 이 앨범은 “물에 잠기면서 시작해, 결국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끝나는 이야기”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서사는 강한 신화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이러한 서사가 단편선 님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것이 한국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집단적 정서나 감각과의 대화라고도 볼 수 있을지 듣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선은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이긴 한데요. (웃음) 제가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시점이 한창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시절인데요, 그때쯤 살고 있던 몹시 낡은 집에서 어느 날 큰 누수가 생겨, 상상할 수 있는 곳은 물론 상상하기 어려운(이를테면 집 천장의 전등 같은) 곳에서까지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던 일이 있었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 이 앨범의 믹싱을 하던 도중에는 살고 있던 집의 지하 주차장에서 가스가 폭발하는 등의 큰 사고가 있어 살던 집이 몇 개월 동안 폐쇄되곤 하는 일이 있었어요. 1차원적으로는 몹시 직접적인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문장입니다.


그러나 은유적으로는 ‘인간사’라는 것에 대해 담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비슷하겠지만, 저 역시 종종 슬픔이나 절망,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한 번 들어가면 헤어나오기 어렵죠.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크게 마음을 다잡고 바깥으로 나와야 합니다. 입고 있던 옷가지가 다 타버리더라도,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더라도 벗어나야 할 때는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그나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오래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집단적 정서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국은 늘 작은 나라였던 탓에 언제나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고, 그것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대부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불안감’이 많은 사회고 한편으로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한국은 비교적 부유한 축에 속하는 국가지만, 이곳의 구성원들은 ‘한 번 추락하면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다’는 불안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관객이나 리스너들이 제 노래에서 용기를 얻거나 힘을 받게 되는 것은 아마 그런 ‘불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그것과 단절하고(“어제와는 헤어지겠어요”) 그 이후로 넘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5. 不可否认的是,“万岁”一词在东亚近代史中承载着复杂沉重的政治与集体记忆。你提到专辑标题“音乐万岁”这句话是在个人面临破产、极度痛苦时写下的,它像一句“虚无”又“迫切”的咒语;同时歌曲中嵌入了劳工运动家金镇淑的演讲片段。你如何看待作品中历史幽灵、私人叙事与公共表达的并列和转化?


‘만세’라는 단어가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복잡하고도 무거운 정치적·집단적 기억을 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단편선 님께서는 앨범 제목인 「음악 만세」가 개인적으로는 파산 직전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써 내려간, 허무하면서도 동시에 절박한 하나의 주문과 같았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 동시에 앨범의 곡들에는 노동운동가 김진숙 님의 연설 음성이 삽입되며, 개인적 경험과 공적 역사, 사회적 발화가 교차하는 지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품 전반에 드리워진 이른바 ‘역사적 유령’—완전히 해결되지 않거나 잊히지 않은 역사적 사건과 트라우마, 오래된 관념들과 더불어, 사적인 서사와 공적인 표현이 병치되고 전환되는 방식을 단편선 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만세”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한국인에게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에 저항하는 사건으로서의) 3·1 독립운동입니다. 그것은 민중의 언어죠. 한편으로는 왕이나 황제를 경배하는 언어로서의 “만세”도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의 언어입니다. 성격은 완전히 다르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그 둘은 모두 지나간 과거의 언어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이 과거의 언어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는 “만세”를 외칠 만한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자본이나 기술, 국가가 요새만큼 강력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때가 드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형식주의적인 측면에서, “만세”의 대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고는 생각합니다.)


저는 “만세”라는 단어에서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특정한 ‘가치’를 강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힘을 봅니다. 어느 정도의 강도이냐 하면, 그것의 영생을 기도할 정도로.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식의 데카당스한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권력이건 뭐건, 모든 것은 그저 땅으로 돌아갈 뿐이니까요.


그래서 음악을 향하여 “만세”라고 외치는 행동은, 제게는 어쩐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을 한껏 쫓아보고자 하는, 무의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실은 인간사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다 그렇죠.


이 앨범에는 내밀한 자아와 역사적인 사건이나 흐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진동하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곳저곳에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완전히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강아지들이 자신의 냄새를 여기저기에 묻혀 두듯 말 그대로 묻혀 두었습니다. 알레고리라거나 맥거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에 관한 해석은 청자의 몫으로 남겨두고요. 그래서 ‘이것들의 의도는 사실 저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작법이라는 측면에서만 말씀드린다면 저는 이런 방식이 청자의 입장에서는 오픈월드적인 속성이 강한 게임이나 다층적인 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어떤 세계에 들어온 것같이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이 앨범이라는 세계 속에서 청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서사를 써 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물론 그건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고, 그런 강도로 음악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이지(easy)하게 들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합니다만, 어찌되었건 본질적으로는 위와 같은 마음에서 쓰인 음악들입니다.


6. 《音乐万岁》这张专辑的曲目,既忧郁又有对爱的憧憬,直面“正义、执念、虚伪、爱”,像一个细心的巫师,不厌其烦地从日常生活中捡拾事物的碎片,雨水不规则滴落的早晨,被风吹得起舞的窗帘,即将断气的鲸鱼。你歌词的灵感通常来自何处?


「음악 만세」의 수록곡들은 우울함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으며, 정의·집착·위선·사랑과 같은 감정과 개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마치 섬세한 주술사처럼, 빗방울이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아침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숨을 거두기 직전의 고래와 같은 일상의 파편들을 끈질기게 수집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가사의 영감은 보통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단편선 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영감의 원천에 관해서라면, 아무런 특별함이 없습니다. 모든 음악가가 그러하듯이, 좋은 모티브가 떠오를 때마다 성실하게 스케치해 두고, 감정이나 아이디어에 관해 그때그때 빼먹지 않고 메모해 두고,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에 관해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이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저는 영화나 연극 등 다른 예술 장르를 위한 작곡 작업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그런 작업에 들어가면 극의 흐름이나 무드에 맞추어 평소라면 도무지 쓰지 않을 법한 음악도 만들게 되고, 일단 자의로건 타의로건 ‘수량’이라는 측면에서 몹시 많은 음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열심히 썼지만 사용되지 않는 곡도 있고, 또 몹시 마음에 들어 제 자신의 작업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곡들도 있습니다. 그런 음악이나 파생된 모티브들이 제 음악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반해, 누군가—클라이언트 같은 사람이—시키지 않으면 매우 오랫동안 생각하며 곡을 쓰는 타입이라서 1년에 한 곡도 채 완성시키지 않을 때도 허다합니다. 물론 앨범을 발표하거나 해야 하는 ‘마감’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건 무조건 완성시키지만요.)


7. 你强调专辑关注的是具体的人与瞬间,想“一起分享紫菜卷,谈论彼此的吉凶祸福”。在韩国社会高度政治化、充满宏大议题(如世代矛盾、性别对立、经济压力)的背景下,转向这种“微小的真诚”,是否本身就是一种政治态度或伦理选择?


단편선 님께서는 이번 앨범이 구체적인 사람들과 순간에 주목하는 작업이며, “함께 김밥을 나누어 먹고 서로의 길흉화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한편으로 한국 사회는 세대 갈등, 성별 대립, 경제적 압박 등과 같은 거대한 정치적 의제들로 끊임없이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맥락 속에서, 거창한 담론이 아닌 ‘작고 구체적인 진정성’으로 시선을 돌리는 선택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자 윤리적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특정한 정치적 태도’나 지향으로 단정되는 데에는 주저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고 구체적인 진정성’이라는 키워드가 자칫 ‘탈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고, 저는 제가 “무엇을 지지한다”고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실재’하는 정치를 회피하거나 그에 대해 지나치게 염세적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나 사회, 그리고 음악(또는 예술)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 역할이나 추구해야 할 가치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전통적인 관점에서도, 정치는 권력의 배분이고 예술은 아름다움의 추구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정치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 측면도 있겠으나, 제가 바라보는 세계는 그렇게 하나(The One)로 환원될 수 있는 세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저는 반복적으로 ‘정치와 음악은 다르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실재’하는 투쟁의 현장을 오랫동안 경험하거나 관찰해 온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행동’이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해 쉽게 ‘정치’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게 됩니다. (‘실재’의 현장은 은유적인 접근이 통하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하고 비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현장에 나가, 그저 한 사람으로서—혹은 노래 부르는 사람으로서—참여합니다. 그럴 때 제 예술가로서의 자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는 이유는 남들과 동일하게 하나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래를 부른다 해도, 그것은 제 예술적 감각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기보다 함께 모인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고 서로를 어루만지기 위함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제 음악이 대단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음악이 무언가를 견딜 수 있게 도울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곡 〈음악만세〉에 수록된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퇴직 연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칩니다 /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고의 위기 앞에 선 대우버스 동지 여러분들 힘내십시오 /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


김진숙 연설 풀 비디오


앨범이 나온 이후, 이 연설의 샘플링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지만 동시에 줄곧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주된 비난은 ‘특정 정치 세력의 프로파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읽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며, 제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연설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국회나 미디어에서 보이는—정치의 모습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전망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연설은 인간의 삶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8. 你曾提及年少时受香港电影(如《英雄本色》)四字片名的影响,这启发了《音乐万岁》的命名。这种对特定东亚流行文化美学的敏感,是否也潜藏在你的音乐中?你是否有意识地在构建一种属于自己的、混杂的“亚洲现代性”创作谱系?


단편선 님께서는 젊은 시절, 《영웅본색》과 같은 네 글자 제목의 홍콩 영화들에서 받은 인상이 「음악 만세」라는 앨범명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러한 동아시아 대중문화 미학에 대한 감수성이 단편선 님의 음악 전반에도 스며들어 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요소들이 뒤섞인 하나의 ‘아시아적 근대성’의 창작 계보를 의식적으로 구축하고 계신지도 듣고 싶습니다.

제 유년기에는 매년 명절마다 소위 ‘홍콩영화’가 방영되곤 했습니다. 가장 자주 방영되던 것은 성룡의 액션과 코미디가 결합된 영화들이었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방불패>나 <강시선생> 같은 영화들의 민속적이면서도 오컬트한 비주얼을 떠올리면 지금도 으스스합니다.


성룡은 사실 666번째 레플리카 성룡이다


제가 청소년이 될 무렵에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가 수입되지 않았고, ‘해적판’ 등의 형식으로만 비공식적으로 유통되었지요. 어린 시절의 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멋지다 마사루> 같은 만화, JRPG 등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80~90년대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은 제 어린 시절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작곡과 관계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은 아니지만) 제 곡 중 <이상한 목>은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에 등장하는 어떤 풍경을 상상하며 쓴 곡이고, 최근의 음악 중 <당신과 나 남양주에서>는 음반 소개글에서 언급했듯 장국영, 왕조현 주연의 <천녀유혼>을 떠올리며 쓴 파트도 있습니다.


천녀유혼은 세계 최고의 영화이다


하지만 ‘동아시아’를 의식하고 이를 일관된 방향으로 추구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제 음악이 동아시아적인 색채감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의도’라기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테이스트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창작 계보’라는 것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그런 계보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어떤 계보에 속해 있으면 어딘가에 소개될 기회를 얻거나 사람들에게 더 쉽게 인지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웃음)


하지만 한국에서 제 음악은 소수자적인(minority) 위치에 있고, 저와 음악적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고받는, 유사한 장르나 무드로 묶일 만한 음악가도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굉장히 적극적인 리스너이기도 해서 여러 음악가들을 흠모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실은 몰래 조금씩 훔쳐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제 것을 훔쳐가는 데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굳이 저걸? 내가 왜? 이런 느낌일 수도요. (웃음)


그래서 아직은 ‘계통’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Part.3 음악의 관찰자이자 직조자 — 프로듀서로서의 단편선


9. 你通过獾工作室为千容成、噪音发光、线与圆等音乐人制作了获奖专辑,他们风格各异但都极具社会与历史关切。作为制作人,你似乎在有意地梳理和推动一种脉络:一种扎根韩国本土历史与情感、兼具艺术野心与社会意识的音乐。如何定义自己作为制作人的“眼光”或“使命”?为他人制作和为自己制作有什么明显的区别吗?


단편선 님께서는 오소리웍스를 통해 천용성, 소음발광, 선과 영 등 여러 음악인들의 앨범을 프로듀싱해 오셨고, 그중 일부 작품은 수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음악적 스타일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적·역사적 문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작업들을 종합해 보면, 단편선 님은 프로듀서로서 한국의 역사와 정서에 깊이 뿌리내리면서도 예술적 야심과 사회적 감수성을 함께 지닌 음악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 밀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스스로 생각하시는 프로듀서로서의 ‘안목’이나 ‘역할’, 혹은 ‘사명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을 프로듀싱할 때와, 자신의 음악을 만들 때 사이에는 어떤 가장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느끼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안목’이라고 하면 ‘누구와 함께 일할 수 있을지’를 파악하는 능력일 것이고, ‘역할’ 혹은 ‘사명감’이라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낼지’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직업인이고,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상대가 응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고, 제가 받은 만큼의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일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인디씬은—사실 어느 나라든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대부분 가난합니다. 그래서 제가 ‘충분하다’고 느낄 정도의 대가를 지불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기준은 이것이겠지요.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가. 그 일이 재미있는가. 혹은 훌륭한 가치가 담겨 있는가.


간단히 말해 저는 ‘좋은 이야기’를 가진 아티스트를 선호합니다. 여기서 ‘좋음’을 일관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멜로디 감각이나 가사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관이 드러나야 하며, 무엇보다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가 있다면, 저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도움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야기’가 없거나 빈약한 음악은 제게 큰 흥미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어딘가 이상하면 이상할수록 더 좋습니다. 이상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남들과 다르다’는 뜻이니까요. 물론 그저 이상하기만 하면 곤란하겠지만요.


‘이야기’가 명료하면, 제가 해야 할 일도 비교적 명확해집니다. 그것을 실재하는 장면과 풍경으로 연출해내면 되니까요. 물론 실제 작업은 편곡, 연주, 레코딩, 디자인, 비디오 제작 등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방대한 과정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야기’를 현실의 감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음악을 다루는 일은 제 음악을 만드는 일과는 상당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타인의 음악에 대해서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가 해야 할 역할을 정의할 수 있고, 그 음악의 매력적인 지점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대상이 제 자신이 되면, 그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저는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밴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 作为86年生人,你站在“386世代”后的运动遗产和更年轻的MZ世代之间。你目力所及的年轻一代音乐人关注的核心议题、表达愤怒与希望的方式,与你年轻时有何不同?


단편선 님은 1986년생으로, 이른바 ‘386세대’가 남긴 민주화 운동의 유산과 더 젊은 MZ세대 사이에 위치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단편선 님의 시선에서 볼 때, 오늘날의 젊은 음악인들이 주로 주목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나, 분노와 희망을 표현하는 방식은 단편선 님이 젊었을 때와 비교해 어떤 점에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젊은 음악인’이라고 통칭하기에는 너무 많은 음악가들이 존재하고, 각자의 표현 방식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쉽게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연주의 완성도’나 ‘프로덕션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제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에 비해 전반적인 질적 수준이 높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에는 1990년대의, 2000년대에는 2000년대의, 2010년대에는 2010년대의, 그리고 2020년대에는 2020년대의 미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음악을 듣기 시작한 1990년대 말은 펑크록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급격히 가속했던 이른바 ‘IMF 시대’와 맞물린 시기였는데, 당시의 펑크록은 굉장히 직설적이었고, 일부러라도 더 ‘방종’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지나면서 펑크록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오히려 더 극단적이고 멋진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만—한편으로는 인디팝이나 보다 내향적인 음악이 유행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최근의 한국 인디씬은 어느 정도 양분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전형적인 사운드를 정교하게 구현하는 웰메이드(well-made) 팀들이 크게 늘어난 한편,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 작가주의적 음악을 선보이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그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고, 저는 그 긴장과 경쟁의 감각이 ‘씬’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다이나믹함을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펑크록도 오랜만에 기운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최근 후보작이 공개된 2026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 리스트만 보아도, 펑크록의 약진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의 펑크록은 예전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아티스트들이 많아졌고, 클래식 펑크록이나 하드코어에 머물기보다는 개러지 록,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는 시도가 눈에 띕니다. 여전히 직설적인 면모도 있지만, 동시에 내향적인 속성도 함께 발견됩니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향우회, 피치트럭하이재커스, 로우하이로우, 칩 포스트 갱, 반(baan), 우희준 같은 이들의 음악을 참고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한 번에 말씀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쨌든 BCC를 구독하면 된다


11. 你曾身兼音乐人、制作人、IT企划、文化中心负责人、协同组合理事长等多重身份,深度参与了音乐生态的各个层面。你认为韩国独立音乐场景在过去十年面临的最大系统性挑战是什么?


단편선 님께서는 음악가를 비롯해 프로듀서, IT 기획자, 문화센터 센터장, 협동조합 이사장 등 여러 역할을 넘나들며 음악 생태계의 다양한 층위에 깊이 관여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보셨을 때, 지난 10여 년간 한국 인디 음악 씬이 마주해 온 가장 큰 구조적·시스템적 도전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근래의 상황을 보자면, 주요 페스티벌들은 매해 최다 관객 기록을 갱신하며 한껏 기세를 올리고 있는 모양새지만, 로컬 라이브클럽은 여전히 관객이 없습니다. 특정 밴드들이 몹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외 대부분의 밴드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 모두 인디씬에는 큰 관심이 없으며,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나 웹진은 예전에 비해 주목도가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유튜브 채널이나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매체의 특성상 심도 깊은 논의를 전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만의 이슈일까요. 저는 해외에 살아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음악시장의 규모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세계 어디를 가도 ‘인디 뮤지션 하기 좋은 나라’ 같은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는 음악계만 겪고 있는 문제인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의 인터뷰에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기후나 AI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가 모두 재편되고 있고, 음악계나 인디씬 역시 그 과정 속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회의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지지받고 있는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리 음악이 정말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선사시대 때부터 사회가 우리를 안 받아줬다


Part.4 기타


12. 你提到“短篇选”这个名字是来源于大学时话剧社的经历以对俄国文学的阅读,在平时的阅读里你会更偏好短篇小说吗?


단편선님은 ‘단편선’이라는 이름이 대학 시절 연극부 공연과 러시아 문학을 읽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평소에서도 단편소설을 더 선호하시는 편인가요?

거의 유일하게 가벼운 질문이라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질문들이 몹시 세세해서 답변하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애를 먹었거든요. (웃음)


장편과 단편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는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워낙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서, 오롯이 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하루에 다 읽기보다는, 며칠에 걸쳐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시간에 짬을 내 조금씩 읽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장편소설은 긴 호흡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조금씩 나누어 읽으면 그 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단편 위주로 읽게 되는 셈입니다.


사실은 시를 훨씬 더 많이 읽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과학이나 철학, 사회학 같은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쪽 책들도 자주 읽고 있습니다.


13. 另外也了解到你对法国理论/激进哲学颇为着迷,可以为我们分享你最近读到的好书吗?也想请瞬间们的各位都分享一张专辑给我们的读者。


또한 단편선 님께서 프랑스 이론이나 급진적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더불어 ‘단편선 순간들’의 다른 멤버분들께도, 독자들에게 꼭 한번 들려주고 싶은 앨범을 한장씩 추천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을 읽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 사이를 오가다 보면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오래전에 읽다 그만두었던 프랑스 철학자 브루노 라투르를 다시 읽고 있고, 생태주의에도 작은 관심이 생겨 팀 잉골드의 《조응》을 비롯해 여러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순서네요. 긴 인터뷰의 끝입니다.


단편선 : 김정미(Kim Jung Mi) [Now] (1973)

이보람 : Skúli Sverrisson, Óskar Guðjónsson [The Box Tree] (2012)

송현우 : D’Angelo [Voodoo] (2000)

박재준 : Bon Iver [Bon Iver] (2011)

박장미 : Angine de Poitrine [Vol.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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