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기보다, 길을 지우는 방법

문제를 푸는 대신, 먼저 실패를 상상해본다는 원칙

by 유현수

나는 찰리 멍거를 좋아한다. 투자자로서의 찰리 멍거도 좋아하지만, 사람으로서의 찰리 멍거를 더 좋아한다. 주식 투자를 시작하며 투자 철학을 공부하던 중 알게 된 그는, 나에게 투자 그 이상의 배움을 남겼다. 그가 남긴 가르침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뒤집어 생각해 보기'다.


찰리 멍거는 어려운 문제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문제를 푸는 질문 자체를 뒤집어 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반드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성공을 위해 반드시 피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윤곽 역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나는 컨설턴트로 일하며 매일 다양한 문제를 마주한다. 어떤 문제는 비교적 직관적인 반면, 여러 요소가 얽혀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도 적지 않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대할 때, 늘 뒤집어 생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여러 변수에 취약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혹은 회사의 재무·회계 경영 프로세스를 향후 5년간 망쳐놓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끊임없이 질문을 반대로 뒤집으며 사고의 윤곽을 그려 나가는 연습을 반복한다.


이 사고방식은 일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도 적용된다. 다이어트처럼 비교적 직관적인 목표부터, 더 복잡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며,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그려가는 방식이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대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한인 경영전략학회를 만든 경험이 있다. 기존의 대학 한인 커뮤니티가 채워주지 못하던 부분을, 이 학회를 통해 보완하고 싶었다. 당시 많은 동아리들은 '존속'에 과도한 무게를 두고 있었다. 다음 학기에도 어떻게든 동아리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은 임원 선출이나 신입 회원 모집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활동의 밀도는 점점 낮아졌다. 결국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가벼운 동아리로 변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학회는 달랐다. 한인 학생들의 경쟁력을 증진하고, 정보를 교류하며 함께 발전하는 커뮤니티. 다소 많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분명히 얻어가는 것이 있는 활동을 지향했다.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리의 목표는 거대한 조직이 아니라, 열정 있는 몇몇 학생들의 작은 실험실에 가까웠다.


설립을 준비하며 우리는 현실적인 고민들도 마주했다. 너무 빡센 이미지로 학생들이 모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창립 멤버들이 졸업한 뒤에도 학회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충분히 고민해 볼 만한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뒤집어 생각해 보니 답은 단순했다. 우리가 원하는 학회를 만들기에 실패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학회원들의 성장이 없고, 정보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저 '존재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면 된다. 그렇다면 그런 요소들을 동반하는 모든 활동은 반드시 피해야 할 대상이 된다.


존속을 위한 학회가 되지 않기 위해, 학회가 언젠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만든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회원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학교 수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커리큘럼을 준비하면 됐다. 정보 교류를 위해서는 졸업생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시도하면 됐다. 말로 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히 명확한 방향성이었다.


그 방향에 맞춰 우리는 차근차근 준비를 이어갔고, 2024년 가을, 우리의 작은 프로젝트는 마침내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학회는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동아리 중 하나가 되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초기에 세운 방향성을 놓치지 않은 채 조금씩 성숙해 가고 있다고 느낀다. 만약 현실적인 이유로 존속이 어려운 시점이 온다면, 답은 여전히 같다. 학회를 닫으면 된다. 우리의 목표는 처음부터 분명했고, 그에 맞는 선택 또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쉽지 않은 문제 앞에 서 있다면, 당신의 목표를 한 번 뒤집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을 반드시 피해야 하는지를 먼저 떠올려보는 것. 그러다 보면 의외로 많은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지워지고, 그 자리에 생각보다 단순한 길이 남는 경우가 많다.


뒤집어 생각하기는 정답을 더 빨리 찾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심과 착각을 덜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를 묻기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목표를 방해하던 요소들과, 스스로에게 씌워왔던 여러 겹의 가정을 마주하게 된다.


완벽한 계획은 없어도 괜찮다. 다만, 실패로 향하는 길만은 분명히 피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출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씩 걷어낸 끝에 남은 방향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정직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정직함이야말로, 복잡한 문제 앞에서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가장 단순한 원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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