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준, 나의 첫 번째 원칙
최근 〈흑백요리사 시즌2〉 결승에서 최강록 셰프는 울림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척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인생이 좀 있었습니다.”
예전 다른 요리 컴피티션에서 수많은 조림 요리로 우승을 거두며, 최강록 셰프에게는 자연스럽게 ‘조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는 그 수식어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구도, 공부도 많이 했다고 한다. 대중에게 보여진 자신의 모습, 대중이 부여한 수많은 수식어를 그는 증명하고 또 증명하기 위해 ‘척하며’ 살아왔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나 역시 꽤 오랫동안 ‘척’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나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믿었다. 단순히 강의에서 배우는 내용뿐만 아니라, 교내 프로그램, 워크숍, 동아리, 취업과 관련된 정보까지. 알면 알수록 다른 학생들보다 더 빠르게 앞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 나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해 보는 것. 굳이 내가 알 필요 없는 것들까지도 나는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렇게 검색을 반복하다 보면 잘 아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이해는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많은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가 지날수록 다른 친구들보다 아는 것이 많아졌고, 주변에서는 연신 “너는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냐”라며 신기해했다. 그때는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믿었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더 많은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학점을 유지하는 것’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던 나의 대학 시절은, 그렇게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적어도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년 6개월 동안 나는 치열했던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국방의 의무를 함께했다. 이들과도 학교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학교에 있을 때보다 그 비중은 훨씬 적었다. 대신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것이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 그리고 취향. 정답이 없고, 검색으로 채울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겹겹이 씌워 두었던 가면들을 발견했다. 어디서 듣고 온 누군가의 생각을, 마치 나의 것인 양 말하던 모습. 비판 없이 어떠한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아는 사람’처럼 포장하던 태도. 누군가에게 ‘척’하며 살아가기 위해, 나는 겉만 번지르르한 모래성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최강록 셰프가 결승에서 자신을 위해 만든 요리는 조림 요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쏟아온 시간과 노력에 대한 존중이었고, 그 시간들을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에 가까웠다. 엄청난 재료나 복잡한 조리법이 없어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요리가 '왜' 자신을 위한 요리인지.
세계적인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원칙』에서 ‘극단적으로 투명하라’고 말한다. 자신과 상황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이해할 때, 비로소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투명하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나 자신에게 오만한 ‘편견’을 덧씌운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는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인지 오류를 허용한다. 그런 오류들이 쌓여, 결국 우리는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척’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정말 투명하게 비추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겹의 가면으로 덮여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성장의 시간은, 더 잘 보이려 애쓰는 순간이 아니라 나를 숨기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