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다는 말의 이면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강함의 다른 이름

by 유현수

내 주변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 혹은 유학생 출신들이 많다. 인도네시아, 중국, 싱가포르 등. 이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참 많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문화와 언어의 장벽 앞에서 살아가 본 사람들끼리는 어느 나라에서 왔든 분명히 통하는 지점이 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유난히 분위기가 다른 이들이 있다. 특별히 유학을 일찍 시작한 것도, 영어에 대한 부담이 유난히 적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더 잘 적응하고 더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사람들.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이들을 두고 '강하다'라고 말한다. 외향적이고, 적응력이 좋으며, 어떤 환경에서도 기죽지 않는 모습. 그런 이미지는 많은 유학생들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그들의 '강함'이 단순히 성격이나 적응력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 역시 외롭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왔다는 걸 알게 된다. 의지할 곳이 없어 버거웠던 순간들,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시간들. 많은 유학생들이 겪는 장면들을 그들 또한 똑같이 겪었고, 어쩌면 지금도 겪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들은 그 시간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해 왔다. 수없이 밀려오는 어려움 속에서, 멈추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온 것이다.


대학에서 만났던 동기들과 후배들의 첫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마쳤기에 어느 정도 적응된 상태로 대학에 들어왔지만, 그렇지 않았던 친구들은 초반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보다도, 미국에서의 일상 자체가 버거워 보이던 시절.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미국인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부러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부러움이 되었다. 수많은 난관을 각자의 방식으로 넘어서며, 어느새 그것이 어려움이었는지도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강함'이라는 것은 대체로 크고 작은 실패와 예상치 못한 충격을 거치며 만들어진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여정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단단해진다. 그 변화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고, 너무 미세해서 스스로조차 눈치채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그들은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자신이 부러워하던 어떤 모습에, 이제는 자신만의 색을 덧입힌 채로.


그래서 강함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비교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을 찾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절대적으로 앞서 있지는 않다. 겉으로 보이는 적응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무게로 주어진다.


어떤 문을 찾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직 문을 찾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